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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 울기 좋은 곳/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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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해드림출판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24회 작성일 19-12-0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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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울음 울기에 좋은 계절
백발성성한 억새가 서로 등을 비비며 울듯이
그렇게 울기 좋은 계절
그리고 가을은 눈물 흘리기 좋은 계절
신열 앓은 대지가
새벽마다 울어, 울어
풀숲에 이슬을 달아놓듯이
그렇게 눈물 흘리기 좋은 계절
 

자연의 섭리도 이러한데 어찌 희로애락의 감성을 지닌 사람이 울고 싶지 않을 때가 있을까. 나도 사람인지라 때로 울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서푼어치도 안 된 알량한 체면 때문에 더러는 울고 있으면 청승맞아 보일 것 같아서, 스스로 더욱 비참해 질 것 같아서 억지로 울음을 참아낸다. 아니, 그보다는 고조된 감정이 더욱 격화될 게 뻔해 억지로 자제한다. 이즈음 나의 심사가 이러하다.
울고 싶을 때 울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흔히 남자의 눈물은 헤퍼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왜 남자라고 울 일이 없을 것인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울어야 하고, 만에 하나 자식을 앞세우는 참척(慘慽)의 경우라도 생긴다면 울지 않는 부모가 없을 것이다.
 

일찍이 연암(燕巖) 선생은 중국 사신 길에 올랐을 때, 드넓은 요동 땅을 지나면서 이곳이야말로 통곡하기 좋은 곳이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울적한 마음이 어떤 조건에 이르게 되면 울음이 자연발생적으로 터져 나오지 않던가.
수일 전에 인기리에 방영된 황진이란 드라마에서도 그런 대화가 나오고 있었다. 화담 선생이 자기를 찾아온 황진이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라고 물으니 그녀는 울 곳을 찾아왔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걸 보면서 새삼스레 우는 일도 에 못지않게 장소가 필요함을 알았다.
아무튼 내가 보기에 연암 선생이 광야에서 울고 싶은 충동을 느낀 건, 우국(憂國)의 마음이지 싶고, 황진이가 울 자리를 찾아온 건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정인(情人)의 곁에서 거칠 것 없이 울고 싶어서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저러한 사연으로 찾게 되는 울 자리. 그런 장소라면 우리 집도 한 사람쯤 족히 울만 한 장소가 있다. 식구가 단출하다 보니 집안이 늘 텅 비어 있는데, 서재며 거실이며 하다못해 화장실까지도 방해받지 않고 울기에 안성맞춤이다.
한데, 나는 그렇게까지 절실함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제는 정작 울컥하고 눈물을 쏟을 뻔 한 일을 겪고 말았다. 투병 중인 아내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갑자기 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거부를 했기 때문이다.
당황하여 물으니 밤중에 소피보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납덩이에 가위 눌린 듯 답답해지더니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소피야 자신이 보는 것이지만, 부축은 내가 해야 하니 그것은 곧 나를 배려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심히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 아내의 건강은 매우 위중하다. 혼자서 앉고 눕고 하는 일상의 상주좌와(常住坐臥)는 물론, 혼자서 식사도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중풍으로 쓰러진 후유증 때문인데, 전에는 그런대로 거동할 수 있었으나 재발이 된 뒤부터는 그것마저도 못하게 되어 버렸다.
병원에서 퇴원 후는 병간호 일을 하는 아줌마의 보조를 받았다. 그런데 그 일도 3D업종에 속하다 보니 한두 달 하다가 그만두기 일쑤였다. 해서 이제는 내가 혼자서 직접 돌보고 있다.
거기다 물리치료까지 겸하니 하루해가 언제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간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일과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다. 틈틈이 시름을 달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지만 잠시도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갇혀 지내는 신세이다. 이런 처지이다 보니 외출은 꿈도 꾸기 어려워 대인관계가 당연히 소원해진다
 

아내는 지금 벼랑 끝에 위태로이 서 있는 나무와도 같다. 감기만 들어도 거센 바람에 넘어질 듯한 모습을 보여서 애를 태우게 한다. 몸 상태가 그야말로 뿌리 한 가닥 간신히 둥치를 지탱하는 형상인 것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내게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주려고 아파도 안 아픈 척 용을 쓰고 참아내고 있다. 그런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무시로 찾아오는 불안과 허탈감과 자괴감을 묵묵히 견디어 내고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그런 때문인지 최근 들어서 나는 급속히 신체의 변화를 겪고 있다. 그중에서도 뚜렷한 증상은 날로 심해지는 변비와 고갈되어 가는 삭막한 마음이다. 하지만, 변비는 좋다는 약을 찾아 먹으면 될 것이나, 날로 황폐해 가는 감정 변화는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걱정이다.
 

특히 글을 써야 하는 처지에서는  감정 조절이 관건인데, 평상심 유지가 어려우니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다. 거기다 무시로 울컥울컥 펌프 물이 넘치듯이 감정이 격해오니 심란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하여 요즘 나는 서재에서나 화장실에 들어 망연히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잦다. 울 채비를 마련하려는 예비동작이라고나 할까.(2007년 작품)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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