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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가 살아난 이야기-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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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해드림출판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78회 작성일 19-11-2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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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가 살아난 이야기

한용운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 그것도 벌써 20년 전 일이니 기억조차 안개같이 몽롱하다. 조선 천지에 큰 바람과 큰 비가 지나가고 일한(日韓)이 병합되던 그 이듬해이니 아마 1911년 가을인가 보다. 몹시 덥던 더위도 사라지고, 온 우주에는 가을 기운이 새로울 때였다. 금풍(金風)은 나뭇잎을 흔들고, 벌레는 창 밑에 울어 멀리 있는 정인의 생각이 간절할 때이다.

이때에 나는 대삿갓을 쓰고 바랑을 지고 짧은 지팡이 하나를 벗 삼아서 표연히 만주 길을 떠났었다. 조선의 시세가 변한 이후로 조선 사람이 사랑하는 조국에서 살기를 즐기지 않고, 그 무슨 뜻을 품고, 오라는 이도 없고 오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는 만주를 향하여 남부여대(男負女戴)로 막막한 만주 벌판으로 건너서는 사람이 많았다. 그 중에는 고국에서 먹고 살 수 없어 가는 사람도 있었고, 또 그 무슨 뜻을 품고 간 사람도 많았다.

나는 그때에도 불교도이었으니까 한 승려의 행색으로 우리 동포가 가서 사는 만주를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우리 동포를 만나보고 서러운 사정도 서로 이야기하고 막막한 앞길도 의논하여 보리라 하였다. 그곳에서 조선 사람을 만나는 대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이역(異域)생활을 묻기도 하고 고국 사정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곳 동지와 협력하여 목자(牧者)를 잃은 양의 떼같이 동서로 표박하는 동포의 지접할 기관, 보호할 방침도 상의하였다.

근일에는 그곳에 가보지 못하였으나 그때의 그곳은 무슨 이상한 불안과 감격과 희망 속에 싸여 있었다. 낮에는 장산에 올라 풀뿌리를 캐고 조를 뿌리어 가을에 길이 넘는 조를 베어 들여 산 밑에 있는 게딱지같은 오막살이에 거두어들여서 조밥을 배불리 먹고, 관솔불 켜고 천하 대사를 통론하며 한편으로 화승총(火繩銃)에 조련을 하는 때이었다. 그리고 조선 내지에서 들어온 사람을 처음에는 불안으로, 그 다음에는 의심으로, 필경에 의심이 심하면 생명을 빼앗는 일까지 종종 있던 때이다. 내가 죽다가 살아난 일도 이러한 주위 공기로 인하여 당한 듯하다. 그때는 물론 어찌하여 그런 일을 당하였는지 모르고, 지금까지 의문에 있지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내가 조선서 온 이상한 정탐이라는 혐의를 받아서 그리 된 듯하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만주에서도 무섭게 두메[山間]인 어떤 산촌에서 자고 오는데 나를 배행한다고 2, 3인의 청년이 따라섰다. 그들은 모두 나이 20 내외의 장년인 조선 청년들이며, 모습이나 기타 성명은 모두 잊었다. 길이 차차 산골로 들어 ‘굴라재’라는 고개를 넘는데, 나무는 하늘을 찌를 듯이 들어서 백주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길이라고는 풀 사이라 나무꾼들이 다니던 길같이 보일락 말락 하였다. 이러자 해는 흐리고 수풀 속은 별안간 황혼 때가 된 것같이 캄캄하였다.



이때다! 뒤에서 따라오던 청년 한 명이 별안간 총을 놓았다. 아니, 그때 나는 총을 놓았는지 무엇을 놓았는지 몰랐다. 다만 ‘땅’ 소리가 나자 귓가가 선뜻하였다. 두 번째 ‘땅’ 소리가 나며 또 총을 맞으매 그제야 아픈 생각이 난다. 뒤미처 총 한 방을 또 놓는데 이때 나는 그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잘못을 호령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말로 목청껏 질러 꾸짖었다. 그러나 어찌 한 일이냐? 성대(聲帶)가 끊어졌는지 혀가 굳었는지 내 맘으로는 할 말을 모두 하였는데 하나도 말은 되지 아니하였다. 아니, 모기 소리 같은 말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피는 댓줄기같이 뻗치었다. 그제야 몹시 아픈 줄을 느끼었다. 몹시 아프다. 몸 반쪽을 떼어 가는 것같이 아프다! 아! 그러나 이 몹시 아픈 것이 별안간 사라진다. 그리고 지극히 편안하여진다. 생(生)에서 사(死)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다만 온몸이 지극히 편안한 것 같더니 그 편안한 것까지 감각을 못하게 되니, 나는 이때에 죽었던 것이다. 아니,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죽는 것과 꼭 같은 기절을 하였던 것이다.

평생에 있던 신앙은 이때에 환체(幻體)를 나타낸다.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 아름답다! 기쁘다! 눈앞이 눈이 부시게 환하여지며 절세의 미인! 이 세상에서는 얻어 볼 수 없는 어여쁜 여자, 섬섬옥수에 꽃을 쥐고, 드러누운 나에게 미소를 던진다. 극히 정답고 달콤한 미소였다. 그러나, 나는 이때 생각에 총을 맞고 누운 사람에게 미소를 던짐이 분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상이 설레었다. 그는 문득 꽃을 내게로 던진다! 그러면서 “네 생명이 경각에 있는데 어찌 이대로 가만히 있느냐?” 하였다.

나는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려 눈을 딱 떠보니 사면은 여전히 어둡고 눈을 내둘리며 피는 도랑이 되게 흐르고, 총 놓은 청년들은 나의 짐을 조사하고, 한 명은 큰 돌을 움직움직하고 있으니 가져다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듯한 나의 복장에 안기려 함인 듯하다. 나는 새 정신을 차리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대로 오던 길로 되짚어 가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나의 피 흘린 자국을 보고 따라올 때에 내가 쫓기는 길로 간 흔적이 있으면 그들이 더 힘써 따라올 것이요, 도로 뒤로 물러간 것을 보면 안심하고 빨리 쫓기를 아니하겠기에 그들을 안심시키고 빠져가자는 한 계책이었다.

한참 도로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어떻게 넘었던지 그 산을 넘어서니 그 아래는 청인(淸人)의 촌이 있었다. 그리고 조선으로 치면 이장 같은 그곳 동장의 집에서 계(契)를 하느라고 사람이 많이 모이어 있었다. 나의 피 흘리고 온 것을 보고 부대 조각으로 싸매 주었다. 이때에 나에게 총 놓은 청년들은 그대로 나를 쫓아왔었다. 나는 그들을 보고 “총을 놓을 터이면 다시 놓으라”고 대들었으나 그들은 어쩐 일인지 총을 놓지 않고 그대로 달아나 버리었다.

나는 그 집에서 대강 피를 수습하고 그 아래 조선 사람들 사는 촌에 와서 달포를 두고 치료하였다. 총알에 뼈가 모두 으스러져서 살을 짜개고 으스러진 뼈를 주워내고 긁어내고 하는데 뼈 긁는 소리가 바각바각하였다. 그러나 뼛속에 박힌 탄환은 아직도 꺼내지 못한 것이 몇 개 있으며, 신경이 끊어져서 지금도 날만 추우면 고개가 휘휘 돌린다. 지금이라도 그 청년들을 내가 다시 만나면, 내게 무슨 까닭으로 총을 놓았는지 조용히 물어보고 싶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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