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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난(知友難) / 박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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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해드림출판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27회 작성일 19-11-2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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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난(知友難) / 박종화


내 벗 가운데 청안자(靑眼子)·홍염객(紅髥客)·적협군(赤頰君)의 세 벗이 있으니 모두 다 10년, 20년 되는 옛날 친구라. 청군도 내가 좋아하는 좋은 친구요 홍군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지기로 대접하는 믿음직한 벗이요, 적군도 나를 끔찍히 위해 주는 막역의 벗이러라.

그러나 이 세 벗이 다 나를 알고 내가 이 세 벗을 존경하되 청군은 홍군을 모르고 홍군은 적군을 모르고 적군은 청군을 모르더라. 청군의 성격은 호방한 듯 맨 데가 없어 꾸밈이 없으니 흔히 사람에게 허탄하다, 미친 사람이란 소리를 들어 오해받기 쉬운 사람이요, 홍군의 천품은 단정하고 맑아 삼가하고 신칙하는 얌전한 사람이라 남과 첫번 사귀매 지체할 것 없이 허락함을 받는 옥과 같은 선비요, 적군의 자질은 평범하나 진솔하고 어리석은 듯하나 근면하고 부드럽기 태화탕(太和湯)인 듯하되 한번 그렇지 않은 것을 본 뒤에는 결연히 팔뚝을 걷어붙이는 의분이 넉넉히 청·홍 두 사람은 능가하는 사람이더라.

나는 한평생 이 세 벗 얻음이 여간 마음에 즐거운 배 아니라 때때로 나날이 제각기 세 벗을 향하여 그 장점을 들이 심히 해 사귀기를 공동하여 기리고 칭찬하여 부추겼더라.

어느 날 주객 네 사람이 자리를 베풀어 담소하니 다른 이 아니요, 나와 청·홍·적 세 사람이라. 내가 내 지기를 함빡 모아 서로서로의 지기를 만들리 함이러라.

그러나 자리가 바야흐로 탈속하여 갈 때 청군은 그의 그 성격 그대로 눈앞에 사람이 없는 양 호방한 웃음을 터뜨리며 반미치광이 노릇을 하니 얌전한 근칙(謹飭)의 선비인 홍군은 찌푸러 웃으며 더욱 자리를 가다듬어 외면해 앉았고 우직하고 진솔하고 협기 가득한 적군은 성난 사람처럼 한 마디 말이 없다가 하도 청군이 방약무인하니 나중에는 번쩍 팔뚝을 걷어붙이었더라.

이쯤 되니 모임은 한갓 수라장이요, 내 의사는 그대로 수포로 돌아갔더라. 그러나 적군에게 주먹을 맞은 청군은 언제 어느 바람이 불었느냐는 둥 여전히 회해하고 파탈하니 짐짓 청군의 행동은 여유가 너그러워 믿음직스럽다.

이튿날 얌전한 옥과 같은 친구 홍염객 일부러 나를 찾아 이르되,


「청군은 허황하고 미친 사람이라 군자 가히 가까이할 인물이 못되느니라.」


내 대답하되,


「그렇다면 적군은 어떻다 생각하느뇨?」


홍염객 다시 대답하되,


「우직하여 군자의 지기로 허할 수는 없으나 가히 아래에 부려 위급할 때 호술로 쓸 인물이니라.」


이윽고 묵묵히 내 대답이 없으니 홍염객은 돌아가고 적협군이 일부러 전후해 나를 찾아 이르되,


「자네 미친놈 청군을 사귀지 말으소. 반드시 자네를 이롭지 못하게 할 사람이니라.」


내 또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자네 보기에 홍염객은 어떠하던고?」


「얌전한 체하나 간특하니라. 써 군자의 참된 친구 못되리라.」


내 또 묵연히 있으매 적협군이 무료히 돌아가다.


몇 날 뒤에 청안군이 시시덕거리고 미친 체 파안일소하고 나를 찾기에,


「지난 날 뺨 맞은 맛이 어떠하뇨?」

「좋더라. 적군은 짐짓 사람이러라. 선비의 협기, 마땅히 이만해야 족하니라.」

「홍염객은 어떻다 생각하느뇨?」

「또한 좋더라. 근졸한 선비의 행동 마땅히 이러해야 옳으니라. 모두 다 자네의 지기러라.」


내 빙긋이 웃으며 무연히 손바닥을 어루만지다가 청안군의 등을 치면서 이른 말이,


「과연 내 평생의 지기라.」 하다.


다음 날 나는 청군을 허락하지 않는 적군과 홍군을 모으고 적·홍 양군을 옳게 이야기한 청군의 말을 옮긴 뒤에,


「사람은 단 한 번에 알 수 없으니 내 청군을 사귄 지 이미 20년일세. 1년을 사귀어 보니 미친놈이요, 다섯 해를 사귀어 보니 허황한 놈이요, 10년을 사귀어 보니 문기(文氣) 있는 놈이요, 20년을 사귀어 보니 정말 떨어질래야 떠날 수 없는 나를 아는 사람이네.」


홍염객, 적협군은 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낭연히 웃으며 돌아가더라.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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