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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사람 얼-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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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해드림출판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94회 작성일 19-11-2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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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사람 얼

함석헌


요(堯)는 천하를 얻어 임금이 된 다음, 세상에서 자기의 다스림을 어찌 아나 알아보려고, 한번은 시골로 나갔다. 밭에서 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농사꾼을 보고 슬쩍,

"당신은 우리 나라 임금을 아시오."

했다. 농부가 그 말을 듣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흙덩이만 까면서 하는 말이,

"아 내가 해 뜨면 나오구, 해 지면 들어가구, 내 손으로 우물 파 물 마시구, 밭 갈아 밥 먹구 사는데, 임금이구 뭐구 상관이 뭐야?"

했다. 요는 속으로 '내가 나 있는 줄 모르리만큼 했으니, 어지간히 하기는 했구나!'하면서도, 아무래도 마음이 시원치가 못했다. 어디까지나 백성을 위하자는 마음이요, 가르치자는 생각이므로 호강이나 세력을 부리자는 뜻은 없어, 집을 지어도 백성보다 나은 것이 겨우 흙으로 싼 세 층대에서 더한 것이 없음을 자기도 스스로 알지만 그래도 어쩐지 마음의 한구석에 불안이 있었다. 그래 사람을 영천 냇가에 보내어 거기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전에 도를 같이 닦던 시절의 친구인 소부(巢父)·허유(許由)에게 가서, 나와서 벼슬을 하고 같이 일을 하자고 권했다. 그랬더니 소부가 그 말을 듣고는,

"에이, 더러운 소리를 들었군."

하고, 그 영천수 흐르는 물에 귀를 씻었다. 허유가 송아지를 먹이면서 마침 송아지에게 물을 먹이려다가 그 모양을 보고,

"야, 그 물 더러워졌다. 그것 먹이면 내 송아지 더러워진다."

하고, 끌고 위로 올라갔다.


장자(莊子)가 초(楚)나라엘 갔다가 어느 냇가에서 낚시질을 했더니, 그 나라의 임금이 듣고 신하를 보내어 예물을 잔뜩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

"우리나라 임금이 선생님의 어지신 소문을 듣고 꼭 오시어 우리나라를 위해 일을 해주시기를 청합니다."

했다. 장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하는 말이,

"이애, 여기 제사 돼지가 있다. 그놈 살았을 때 진창 속에 뒹굴고 있지만, 제삿날이 오면 비단으로 입히고 정한 자리를 깔고 도마 위에 눕히고, 칼을 들어 잡는다. 그때 돼지가 되어 생각한다면, 그렇게 죽는 것이 좋겠느냐? 진창 속에서나마 살고 싶겠느냐? 또 너희 나라 사당 안에 거북껍질 있지? 그 놈은 살았을 때 바닷가 감탕 속에 꼬리를 들고 놀던 것인데, 한번 잡힌즉 죽어 그 껍질을 미래를 점치는 신령이라 하여 비단보로 싸서 장 안에 간직해 두게 되니, 거북이 되어 생각한다면 죽어서 그 영광을 받고 싶겠느냐? 감탕 속에 꼬리를 끌면서라도 살고 싶겠느냐?"

했다. 왔던 사신의 대답이,

"그야 물론, 진창 감탕 속에서 뒹굴고 꼬리를 끌면서라도 살고 싶겠지요."

"그렇다면, 가서 너희 임금 보고 나도 감탕 속에 꼬리를 치고 싶다고 해라. 천하(天下)니, 임금질이니, 그게 다 뭐라더냐?"


마케도니아의 한 절반은 야만의 자식인 알렉산더는, 천하를 정복할 적에 당시 문화의 동산인 헬라를 말발굽에 두루 짓밟았다. 오는 놈마다 말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는 들려오는 소문에 디오게네스란 유명한 어진 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젊은 아이의 영웅심·자만심에 으레 제가 나를 보러 오겠거니 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니 왔다. 약도 올랐고 호기심도 일어나고 하여, 그는 부하를 데리고 디오게네스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가 보니 한 늙은이가 몸에는 누더기를 입고, 머리는 언제 빗질을 했는지 메두사 머리의 뱀처럼 흐트러졌는데 바야흐로 나무통 옆에 앉아 볕을 쬐고 있었다. 이 나무통은 그의 소유물의 전부인데, 낮에는 어디나 가고 싶은 데로 그것을 굴려가지고 가고, 밤에는 그 안에 들어가 자는 것이었다. 디오게네스는 누가 왔거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젊은 영웅은 화가 났다.

"너 알렉산더를 모르나?"

제 이름만 들으면 나는 새도 떨어지고, 울던 아기도 그치는 줄만 알던 알렉산더는 마음 속에 '저 놈의 영감쟁이가 몰라 그렇지, 제가 정말 나인 줄 알면 야 질겁을 해 벌떡 일어설 테지'하는 기대를 가지고 한 소리였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놀라지도 코를 찡긋도 않고 기웃해 알렉산더를 물끄러미 보고 하는 말이,

"너 디오게네스를 모르나?"

그리고는, 목구멍에 침이 타 마르고 있는 젊은 정복자를 보고,

"비켜, 해 드는 데 그림자 켜."

했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가 한낱 선비로서 일어나 어지러워 가던 한(漢)나라를 다시 일으켰다. 전쟁이 다 끝나고 천하가 완전히 제 손아귀에 들어온 줄 알게 된 다음 마음에 좀 불안을 느꼈다. 이제 천하에 나를 칭찬 아니 할 놈이 없고 내게 복종 아니 할 놈이 없건만, 단 하나 한 사내만이 마음에 걸린다. 그것은 엄자릉(嚴子陵)이다. 그는 광무제의 동창 벗이었다. 한 가지 성현의 도를 닦는 시절에 서로 마음을 한걸음 내켜 디딘 줄을 아는 광무제는, 처음의 선비의 뜻을 버리고 권세의 길을 탐해 천자(天子)가 되기는 했지만 자릉이 자기를 속으로 인정해 주지 않을 줄을 알았다. 그 생각을 하면 앞에서 네 발로 기며 아첨하는 소위 만조백관이란 것들이 보기도 싫다. 그래, 사람을 부춘산(富春山)에 보내 냇가에서 낚시질하는 엄자릉을 데려오라 했다. 자릉이 따라왔다.

대신이요, 무어요 하는 물건들이 뜰 아래 두 줄로 벌려 서서 감히 우러러도 못 보는 데를 자릉이 성큼성큼 걸어 광무 앉은 곳으로 쑥 올라갔다.

"아, 문숙(文叔)이 이게 얼마 만인가?"

그 동안에 몇 해의 전쟁이요, 나라요, 정치요, 천자요, 그런 것은 당초에 코 끝에 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신하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광무도 도량이 넓다고는 하나, 짐승처럼 부려먹는 신하들 앞에서 제 위에 또 권위가 있다는 것을 허락해 보여 주는 것이 그리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릉을 신하 대접을 했다가는 당장에 무슨 벼락이 떨어질지 모르고, 물론 자릉이 그럴 리도 없겠지만 광무의 마음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스스로 무엇인지 모르는 기(氣)에 눌림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신하들 보고는,

"너희들은 물러가라. 내 친구를 오래간만에 만나 정을 좀 풀련다."

했다. 밤새 이야기를 하다 잤다. 천문을 보는 신하가 허둥지둥 들어와,

"큰일 났습니다. 객성(客星)이 태백(太白)을 범했으니, 무슨 일이 있사옵는지 모르겠습니다."



했다. 태백이란 지금 말로 금성(金星)인데, 옛 사람 생각에 그것은 임금을 표시한다 했다. 객성이란 다른 별이란 말이다. 임금은 절대 신성하여 범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엄자릉이 자면서 광무의 배 위에 다리를 턱 올려놓고 잤더라는 것이다. 그래, 후에 시인이 자릉의 그 기상을 대신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

만사무심일조간 (萬事無心一釣竿)

삼공불환차강산 (三公不換此江山)

평생오식유문숙 (平生誤識劉文叔)

야기허명만세간 (惹起虛名滿世間)


일만 일에 생각 없고, 다만 하나 낚싯대다.

삼공 벼슬 준다 한들 이 강산을 놓을쏘냐.

평생에 잘못 봤던 유문숙이 너 때문에

쓸데없는 이름 날려 온 세상에 퍼졌구나.

세상은 들사람이 있으므로 되어 간다


이것은 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대가 그리워서 하는 이야기들이다.

호랑이 담배 먹은 이야기를 왜 이 우주 시대라는 지금도 하며, 하면 왜 루니크 제2호가 달에 갔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더 상쾌함을 느낄까?

그것이 역사적으로 있었더냐 없었더냐가 문제가 아니다. 없다면 없을수록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전해 오게 되는데, 그 사실을 뛰어넘은 진실성이 있다. 사실, 사실은 사실의 전부가 아니다. 소위 사실이란 것은 현실(現實)을 가지고 말하는 것인데, 현실은 결코 참이 아니다. 현실이라지만 현(現)이야말로 실(實)은 아니다. 씨는 언제나 뵈지 않는 속에 있다.

Things are not what they seem!! 씨가 피어나온 것이 잎이요 꽃이지만 잎과 꽃이 그 씨가 품었던 전부는 아니다. 씨가 품은 것은 영원이요 무한이다. 그러므로 꽃마다 잎마다 열매를 내기 위하여서는 떨어져야 하고(현실은 없어지고), 그 씨는 또 더 많은, 더 새로운 씨를 위해 땅 속에 들어가야 한다.

사실이 중요하지만 사실(事實)은 사실(史實)이 되어야 하고, 사실(死實)에 이르러야 한다.

참에서 있음이 나오지만 '있는' 것이 참도 아니요 '있던' 것이 참도 아니다. '있을'것, '있어야 할' 것이 정말 참이다. 시(始)가 종(終)을 낳는 것이 아니라, 종(終)이 시(始)를 낳는다. 신화는 있던 일이 아니요, 있어야 할 일이다. 신화를 잃어버린 20세기 문명은 참혹한 병이다. 신화는 이상이다. 이상이므로 처음부터 있었을 것이다. 알파 안에 오메가가 있고, 오메가 안에 알파가 있다. 20세기 문명이라는 것은 알파도 오메가도 잃고 중간이다. 중간은 죽은 거요, 거짓이다. 이 사실에 붙는 문명은 죽은 문명이요, 거짓 문명이다.

호랑이는 담배를 먹었을 것이요, 사람과 서로 맞술을 마시고야 말 것이요, 지금도 어디서 마시고 있을 것이다. 호랑이가 담배를 먹었다면, 사람은 선악과를 먹었다. 먹고야 말 것이다. 선악과를 먹던 에덴동산 이야기를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이 선과 악을 참 아는 지혜를 얻고야 말 것을 뜻한다. 사람의 딸들이 하느님의 아들들과 결혼을 했을 것이요(창세기 6:4), 또 낳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모든 신화는 요컨데 하나다. 사람과 하느님과 만물이 서로 통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근본이요, 또 구경(究竟) 이상이다. 그 신화가 타락하여 전설이 되고, 전설이 타락해 사화(史話)가 되고 사화가 타락해 사건이 된다. 사건이 나면 죽는다. 문명은 사건의 공동묘지가 아닌가?

그러므로 소부·허유가 사실로 있었거나 없었거나, 자릉이 정말 광무제의 배를 눌렀거나 아니 눌렀거나, 디오게네스가 과연 알렉산더의 눈을 빨았거나 말았거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과는 별 문제로 이야기들은 참이다. 따지고 들어가면, 다른 것이 아니요, 두 편이 있단 말이다. 요·초왕·알렉산더·한 광무제 들로 대표되는 소위 '문명인'과 소부·허유·장자·디오게네스·엄자릉 들로 대표되는 '들사람'의 두 편이다. 그리고 이 세상이 보기에는 문명인의 세상 같지만, 사실은 들사람이 있으므로 되어 간다는 말이다. 그것을 주장한 것이 이들의 신화·전설이 끊이지 않고 전해 내려오는 이유이다.


화복의 마지막 결정권은 민중에게

중국 민족같이 실제적인 민족은 없다. 거기서 난 성인 공자는 주로 집과 나라와 사회를 어떻게 받들어 나갈 것인가 하는 실제 도덕을 가르쳤지, 우주의 근본이나 생명의 신비 같은 것을 그리 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가르침이 표준이 되어 임금을 하늘 아들이라 높였는데, 그 중국 역사에 어찌하여 내리내리 잊지 않고 세상을 초탈하는 인물을 늘 그 위에 앉히는 사상이 있을까? 또 헬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폴리스란 말이 정치를 뜻하듯이 그들은 정치적인 민족이요, 또 과학 발달이 그들에게서 나왔는데, 어찌 하여 디오게네스 같은 인물을 알렉산더보다 높이는 사상이 있을까? 그렇게 보면, 하필 중국이나 헬라만 아니라, 어떤 민족 어떤 나라의 역사에도 이 두 계급의 대립이 있고, 현실에서는 하나 틀림없이 다 임금을 높이고 신이라고까지 하면서도 그 뒷면의 정신의 세계에선 늘 그 위에 관 없는 왕을, 왕 위의 왕을 앉혀 놓는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양치는 소년 다윗은 골리앗을 조약돌로 때려 눕혔다. 그 다윗은 선지자 사무엘이 어린애처럼 가져다 왕 위에 놓았으며, 인도에서는 임금이 왕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를 하여 거지 같은 고행자 앞에 겸손한 제자가 되는 일이 수두룩했다. 맹자는 임금이 불러도,

"저는 벼슬 한 가지 높지만, 나는 나이로도 높고 덕으로도 높으니, 제가 어찌 나를 불러?"

하고, 아니 갔고, 천작(天爵)·인작(人爵)을 말했다. 뼈다귀가 빠질대로 다 빠지고 살이 썩을대로 다 썩은 우리 나라 이씨(李氏)네 오백 년에 있어서도 그래도 무슨 기백이 남은 것이 있다면, 상투 밑에서 고린내는 났을망정 한 줌 되는 산림학자에 있지 않았나? 정몽주를 때려 죽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선죽교에 피가 흐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성계·이방원을 만고의 죄인으로 규정짓는 민중의 판단이지, 왕 위에 또 왕이 있단 말이지 무언가? 두억시니 같은 수양(首陽)으로도 미친 녀석 같은 김시습을 어떻게나 모셔 보려 애를 쓴 것은 무언가? 칼보다도 더 무서운 칼이 있고, 곤룡포보다도 더 아름다운 옷이 있단 말이지.

개성에 가면 덕물산이란 조그만 산이 있어, 거기는 무당만 몇십 호가 굿을 해 먹고 살아가는데, 그거는 뭐냐 하면, 최영 장군의 영을 모신 곳이다. 지금은 물론 미신이지만, 당초의 그 유래를 찾으면 태종 때에 비가 아니 와서 사방 기우제를 지내다 못해 누구 말이 최 장군의 영이 노해 그런다 하여 그 묘에 제사를 지냈더니 곧 큰 비가 와서 그때부터 그리 됐다는 것이다. 이 태조와 최 장군의 원수로 대립되던 이상 태종의 마음으로 그 묘에 제사 지내는 것을 허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민중의 생명이 관계되는데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뭐냐? 목은 잘랐지만 도리어 졌단 말이 아닌가? 민중은 최장군을 더 존경한다는 말이 아닌가? 과학적으로 봐 비온 것이 우연이거나 영검이거나 그것은 별 문제로 민중의 마음이 최 장군을 위해 절대 받든 것만은 사실이 아닌가? 살고 죽는 화복의 마지막 결정권은 민중에 있다.

들사람 얼이 있었으면

또, 김시습이 미친 모양을 하고 다니며, 길가에서 오줌을 쌌다. 그것이 누구냐? 그가 길을 가다가는 주저앉아,

"이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소?"

하고, 통곡하던 바로 민중 그 자신이 아닌가? 오줌을 쌌다니, 어디다 싼 것인가? 세조의 정치에 대해, 바로 세조의 얼굴에 대고 싼 것이지 뭐냐? 칼을 뽑아 물을 잘라도 물은 오히려 흐른다고, 사람들의 모가지는 자를 수 있어도 민중의 오줌인 신화·전설·여론은 못 자를 것이다. 봐라! 두고 봐라! 한이 뼈에 사무쳤다니, 오줌 쌈을 받는 놈보다는 스스로 좀 넓고 큰 것이 있기 때문에 하는 거야. 소원이야 예수처럼 죽으면서도 죽이는 놈 위해 복빌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만한 얼의 실력은 없으니 오줌이라도 싸는 것이다. 매월당 오줌 한번 구경하려나? 서거정이 그와 친구였다. 찾아온 김시습을 보고, 그림 한 폭을 내놓으며, 거기다 뭐라 글을 하나 써 달라 했다. 그림은 강태공이 문왕을 만나기 전 위천(渭川)에서 낚시질하는 것을 그린 것이었다. 시습은 붓을 들어 곧 단숨에 내리갈겼다.


풍우소소불조기 (風雨蕭蕭拂釣幾)

위천어조식망기 (渭川魚鳥識忘幾)

여하로작응양장 (如何老作鷹揚將)

공사아제아채미 (空使夷齊餓采薇)


비바람 들이치는 위천 물가 낚싯터에

저 고기 새 너를 배워 세상 일 꽤 잊었더니

어쩌다 늙으막엔 난다 긴다 장수되어

쓸데없이 백이 숙제 굶어 죽게 했단 말인가.


거정이 이것을 보더니, '이거 나를 죄 주는 소리로구나'했다. 옳은 말이다. 본래 벼슬이라도 해 먹는 자들에게는 맞지도 않는 그림이었다. '내가 진리의 왕이다'라고는 못할망정, 매월당이 오줌 쌌던 세종로·종로에 대고 대낮에 오줌을 한번 갈기고 싶은 일이다.

그만한 '들사람 얼'이 있었으면!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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