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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금파에서-김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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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해드림출판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03회 작성일 19-11-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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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금파(百里金波)에서


김상용



고개를 넘어, 산허리를 돌아 내렸다. 산 밑이 바로 들, 들은 그저 논 뿐의 연속이다. 두렁풀을 말끔히 깎았다. 논배미마다 수북수북 담긴 벼가 연하여 백리금파를 이루었다.

여기저기 논들을 돌아다니는 더벅머리 떼가 있다. ‘우여, 우여’ 소리를 친다. 혹 ‘꽝꽝’ 석유통을 두드리기도 한다. 참새들을 쫓는 것이다.

참새들은 자리를 못 붙여 한다. 우선 내 옆에 있는 더벅머리 떼가 ‘우여’ 소리를 쳤다. 참새 떼가 와르르 날아갔다. 천 마리는 될 것 같다. 날아간 참새들은 원을 그리며 저편 논배미에 앉아 본다. 저편 애놈들은 날아 앉은 새 떼를 보았다. 깨어져라 하고 석유통을 두들긴다. 일제히,

“우여!”

소리를 친다. 이 아우성을 질타할 만한 담력(膽力)이 참새의 작은 심장에 있을 수가 없다. 참새들은 앉기가 무섭게 다시 피곤한 나래를 쳐야 한다. 어디를 가도 ‘우여 우여’가 있다. ‘꽝꽝’이 있다. 참새들은 쌀알 하나 넘겨보지 못하고 흑사병(黑死病) 같은 ‘우여, 우여’, ‘꽝꽝’ 속을 헤매는 비운아(悲運兒)들이다. 사실 애놈들도 고달플 것이다.

나와 내 당나귀는 이 광경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

나는 나귀 등에서 짐을 내려놓고 그 속에서 오뚝이 하나를 냈다.

“얘들아, 너들 이리 와 이것 좀 봐라.”

하고, 나는 ‘오뚝이’를 내 들고 애놈들을 불렀다.

애놈들이 모여들었다.

“얘들아, 이놈의 대가리를 요렇게 꼭 누르고 있으면 요 모양으로 누운 채 있단 말이다. 그렇지만 한 번 이놈을 쑥 놓기만 하면 요것 봐라, 요렇게 발딱 일어선단 말이야.”

나는 두서너 번 오뚝이를 눕혔다 일으켰다 하였다.

“이것을 너들에게 줄 테다. 한데 씨름들을 해라. 씨름에 이긴 사람에게 이것을 상으로 주마.”

애놈들은 날래 수줍음을 버리지 못한다. 어찌어찌 두 놈을 붙여 놓았다. 한 놈이 ‘아낭기’에 걸려 떨어졌다. 관중은 그 동안에 열이 올랐다. 허리띠를 고쳐 매고 자원하는 놈이 있다. 사오 승부(勝負)가 끝났다. 아직 하지 못한 애놈들은 주먹을 쥐고 제 차례 오기를 기다렸다. 승부를 좋아하는 저급한 정열은 인류의 맹장(盲腸)같은 운명이다.

결국 마지막 한 놈이 이겼다. 나는 씨름의 폐회(閉會)를 선언하고 우승자에게 오뚝이를 주었다. 참새들은 그 동안에 배가 불렀을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천석꾼이의 벼 두 되를 횡령(橫領)하고 재산의 7전(錢) 가량을 손(損)하였다. 천 마리의 참새들은 오늘 밤 오래간만에 배부른 꿈을 꿀 것이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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