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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연기암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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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442회 작성일 23-01-2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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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암에 다녀왔다

윤복순

 

딸에게 걱정거리가 생겼다.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신에게 자연에게 세상에 부탁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마음을 비우든 세상의 이치에 의지를 하든,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 하든 지리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지난주에 가려했는데 구례에서 올라오는 기차가 오후 3시 이후 것은 다 매진이다. 새벽차를 타도 3시 전에 구례구역까지 돌아오기는 역부족이다. 토요일, 남편이 운동 삼아 익산역까지 걸어가 왕복 차표를 사겠단다. 날씨가 흐리더니 비까지 왔다. 일요일도 오전엔 비가 오고 오후부터 갠다는 예보다. 기온도 뚝 떨어진다고 한다. 칠십 줄인 우리가 이런 날씨에 가도 될까. 남편은 차표를 사러 가고 빗방울은 더 굵어졌다.

어느 해 임실 섬진강자락으로 봄바람을 쐬러 갔다가 강풍주의보까지 내린 꽃샘추위로 얼어 죽을 뻔 했던 일이 있어 괜한 짓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늙기는 늙었나 보다. 이렇게 자신이 없다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지.’ 하던 배짱은 다 어디로 갔을까.

꼭 완주가 아니어도 좋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낭패면 낭패대로 의미가 있고 배움이 있고 즐거움도 있다는 것을 나이를 먹으니 안다. 일요일 비가 오든 춥든 또 뭔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편해졌다.

일요일 새벽 6시 반, 밖은 깜깜하고 내의까지 입었지만 아랫도리에 바람이 들어온다. 기차안도 썰렁하다. 익산역에서 출발하는 완행열차로 달랑 두 칸 달고 가는 꼬마열차다. 완행열차를 즐기는 것은 천천히 달리니 풍멍 때리기 좋다. 기차 안에서 바깥 구경하는 것이 어지간한 광광지보다 낫다. 새벽열차는 해 뜨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혼자서 말을 하고 풍경들에 손을 흔들어주고 박수를 쳐주다보니 어느새 구례구역이다.

구례구역에서 화엄사까지는 택시를 탔다. 9시 조금 넘은 시간 우리 밖에 없다. 그야말로 절간이다. 화엄사를 지리산을 독차지해 좋은 게 아니라 휑하고 날씨는 흐리고 춥고 어깨가 움츠려든다. 사람들이 많고 시끌시끌하고 훈기가 돌아야지 우리만 있다면 영 사는 재미없겠다는 생각이 자꾸자꾸 들었다.

연기암부터 들러 화엄사로 내려올 참이다. 산길로 들어섰다. 산바람이 추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안옥하다. 산들이 막아줘서 그런 것 같다. 비가 올 거라는 예보도 틀려 해는 안 나지만 비올 것 같진 않다. 미리 겁먹고 안 왔더라면 후회될 뻔 했다. 실패도 성공 못지않은 자산이라는 것을 살아오면서 깨닫는다.

얼마가지 않았는데 공사 중 표시가 있고 계단으로 올라가게 길이 있다. 지난일요일 내장산에서 실록교가 나와 내장산과 조선왕조실록과 무슨 연관이 있어 실록교일까 의문이 생겼다. 멈추어 읽어보니 조선시대 4대 사고 중 유일하게 전주사고만 임진왜란 때 무사했다. 그 실록을 정읍의 유지들이 내장산 용왕암 은적암 등에 보관해 무사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내장산은 여러 번 갔지만 이 내용은 지난주에 처음 알았다. 실록길을 걷기로 했다. 그 길이 완전 계단길이다. 조선왕조실록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면서 암자 가는 데크계단길로 복원된 것 같다. 서너 번을 쉬며 올랐다. 암자는 없고 터만 있다. 옆에 용왕굴이 있는데 그곳에 숨겨 놓지 않았을까. 은적암 가는 길이 또 계단이다. 왕복 천 계단도 넘게 오르내린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유식함을 얻고 이야기꺼리도 생겼다.

무릎 다 망가진 줄 알았는데 소염진통겔을 바르고 잤더니 아침운동 가는데 지장이 없었다. 지난주에 자신감을 얻어 계단을 오르니 임도와 만난다. 금정암이 바로 옆에 있어 가보았다. 암자라기보다 본사()같이 크고 웅장하다. 조금 가니 또 절이 나온다. 오래된 곳으로 수수하다. 이런 절들을 구경시켜주려고 공사 중인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임도가 아닌 산길로 올라온다. 노고단 오르는 등산로다. 이 길은 대학 1학년 봄 소풍 때 처음 와봤다. 그리고 ‘10월 유신때 왔었는데 남편이 나에게 반한 것도 이 길에서다. 늦가을 계곡물에 손을 넣었다 손이 시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쏙 빠졌다. 손 시리다고 호들갑 떨지 않고 몰래 눈물 훔치는 모습이 남자의 보호본능을 자극했었나 보다. 결혼 후 지리산은 힘들 때 좋을 때 삶이 이완되어 갈 때 새로운 계획이 필요할 때 등등 자주 찾는 편이다.

연기암에는 마니차가 있다. 마니차는 티베트여행에서 처음 보았다. 한 번 돌리면 불경을 한 권 읽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때 옴마니 반메훔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웅얼거리며 돌렸었다. “모든 죄가 사라지고 공덕이 쌓이는 것이란다. 국내 최대라는데 혼자 돌리기는 힘이 든다.

남편과 둘이서 세 번 돌렸다. 여느 때 같으면 감사합니다, 라고 했을 텐데 어느새 딸 걱정을 하고 있다. 딸이 이사하면서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전세를 놨다. 세입자가 나가겠다고 하고 요새 집값은 뚝뚝 떨어지고 거래마저 끊기고 전세 들어온다는 사람도 없어 전세금 내줄 돈이 없다. 한두 푼도 아니고 수억 원이 어디서 금방 나오겠는가.

국내최대 문수보살도 있다. 그 밑 약수터에 부처님 손이 있다. 그 손에 이마를 대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쓰여 있다. 불자도 아닌 내가 거기서도 세 번 이마를 대며 똑같이 기도 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내려오는데 조그만 공터에 작은 돌멩이를 쌓아 만든 돌탑들이 있다. 누군가도 소원을 빌며 하나씩 올려놓았으리라. 나도 돌 세 개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참으로 진심이었다.

올라갈 때 가지 않은 길로 해서 화엄사로 내려왔다. 화엄사는 절도 크고 대웅전의 부처님들도 커서 놀래진다. 적멸보궁 사사자3층석탑에 갔다. 사사자삼층석탑은 이층 기단 위에 삼층 석탑을 올렸다. 네 마리 사자가 기둥이고 그 안에 승려형상이 있어 같이 받치고 있다. 이 스님은 연기조사의 어머니이고, 석탑 앞에 있는 석등에도 스님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인데 어머니에게 차 공양을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딸의 절박한 마음으로 탑돌이를 세 번 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마니차에 부처님의 손에 적멸보궁 탑에 진심을 다해 얘기했더니, 지리산이 부처님이 섬진강이 온 몸과 마음에 들어와 환희로 가득 찼다. 딸의 집 문제가 잘 해결될 것 같아 가슴이 벅차다. 날씨도 좋아져 해가 났다.

 

2022.12.4

 

댓글목록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내일이 설날이네요.
설 잘 쇠세요.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밝아오는 계묘년과 함께 따님의 문제도 잘 해결되시기를 빌겠습니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지난날 화엄사는 몇 차례 찾았던 적이 있지만, 연기암은 처음 듣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저도 꼭 한 번 가봐야겠다고 담집했습니다. 좋은 곳을 안내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