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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가파른 비탈의 600개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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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938회 작성일 22-11-1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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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비탈의 600개 계단


마산의 ‘청량산 해양 전망대’에 다가가는 600개의 계단인  덱 로드(deck road) 얘기다. 이 길은 급경사 산비탈의 계단으로 입구로 들어서면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갈 수 없는 외길이다. 왜냐하면 중간에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갈 수 없도록 철저하게 막혔을 뿐 아니라 길을 벗어난다 해도 사방이 험한 바위너설이라서 도저히 걸을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명물로 자리매김 될 개연성이 다분한 곳으로 최근(2022년 1월 23일) 마산의 남쪽 청량산(靑凉山) 정상에 새로 지은 ‘청량산 해양 전망대’의 접근로(接近路)로 개설한 계단 길이다. 경사가 30~45도 안팎으로 크고 작은 돌들이 켜켜이 쌓인 위험스런 돌밭에 지그재그(zigzag)로 개설했다.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 번에 치고 오를 수 없는 470m의 고약하고 험준한 계단이다. 그래서 몇 차례 쉬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오르내릴 수밖에 달리 묘책이 없다. 내 경우는 쉬엄쉬엄 숨을 돌리며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광을 조망하며 느릿느릿 걸었던 관계로 얼추 20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남마산 밤밭고개 언저리 육각정 부근에서부터 청량산 자락 5~6부 능선으로 구불구불 개설된 임도(林道)를 따라 가다가 3.2km 지점에 이를 때 오른쪽 가파른 30~45도 경사의 비탈에 어마어마한 바위너설이 나타난다. 이상하게도 다른 곳과 달리 바위가 켜켜이 쌓여 나무나 풀이 전혀 자라지 못해 위태위태하게 모습을 드러내 두려움에 잔뜩 주눅이 들기로 했다. 굴러 내릴 것 같은 돌을 조심스레 다룬 뒤에 주변의 바위 색깔을 빼닮은 합성목재(wood-plastic composites)를 사용해 지그재그의 덱 로드를 개설했다. 게다가 전 구간이 철(鐵) 골조(骨組) 위에 덱을 설치한 까닭에 지표면 위에 살짝 떠 있는 모양새이다. 한편 입구에 들어서면 길이 끝날 때까지 땅바닥을 밟을 도리가 없다. 중간에 다른 곳으로 빠질 사이길이 전혀 없는 오로지 외나무다리 같은 외길이다.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 따르면 정상의 전망대까지 거리는 470m이고 중간에 3개의 쉼터가 있다는 귀띔이다. 여기에 들어서는 순간 시커멓고 가파른 돌밭에 어울리지 않게 얼기설기 뚫은 길이 마치 다른 행성 모습 같이 엄청 낯설다. 게다가 가파른 지형에 따라 이리저리 구불구불하거나 잠시 숨을 고르라고 배려해 만든 평탄한 구간을 비롯해 가파른 계단까지 합하면 대략 50여 구간으로 나눠진 게 질리고 정나미 떨어졌다. 그런데 정상 가까이 갔을 때 급경사의 계단이 1백 개가 넘게 계속되는 경우(364번~469번 계단)는 현기증이 절로 나 아찔하기까지 했다. 특히 오를 때는 숨이 차서 중간에 몇 차례 숨을 몰아쉬며 헉헉댔고, 내려올 때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주저앉아 진정을 했던 진풍경을 벌이기도 했다. 아래쪽 임도에서 위쪽으로 걷다보면 10개의 계단마다 ‘계단의 숫자’를 표기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마지막 계단에 ‘598’이라고 적여 있어 거기가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계단을 지나 길 바닥에 카펫(carpet)처럼 깔린 수입산(輸入産) 깔개를 밟고 40m쯤 발길을 옮겨 전망대 입구로 들어서려는데 거기에 ‘600’이라는 계단 숫자가 적혀 있었다. 어제는 다른 길로 정상에 갔다가 하산 길은 그 길로 내려왔고 오늘은 반대로 정상에 다가가는 데 그 길을 택했다.


정상에 세워진 ‘청량산 해양 전망대’는 높이 2m 남짓한 거대한 원통형의 철 구조물을 헬리콥터로 운반하여 층층이 쌓으며 용접해 만든 12m 높이의 원(圓)기둥에 나선형의 계단을 만들어 꼭대기 전망 광장으로 올라가서 마산만 일원을 조감토록 만든 시설이다. 어제는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었다. 전망대 위에 올라가면서 난간의 손잡이를 잡으니 강한 바람에 흔들려 언짢았다. 또한 꼭대기에 서있는데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아 두려움이 밀려왔다. 물론 고소공포증이 있어 그런 맘이 더욱 심했지 싶다. 오늘은 바람이 없어 전망대 꼭대기에 올라갔어도 어제 같은 섬뜩함을 느낄 수 없었다.


전망대에서 조감하는 마산 일원의 자태와 풍광은 안온하고 설레며 포근했다. 배산임수의 마산 정경에 눈 호강을 실컷 했다.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과 팔용산, 왼쪽으로부터 월영동과 월포동 해안가를 비롯해 신포동과 남성동, 산호동과 양덕동, 수출자유지역, 두산중공업, 마산 내만, 돝섬, 가포신항, 마창대교, 귀산동, 진해 등이 멀리 혹은 가까이에서 아른거려 무척 정겨웠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도 마산 외만(外灣)의 모습은 정상의 웃자라 큰 키의 나무와 기존의 육각정에 시야가 막혀 제대로 보이지 않아 무척 아쉬웠다. 겨울인 지금도 저럴진대 봄부터 가을까지는 무성한 활엽수 때문에 더욱 시야가 차단되리라. 이런 맥락에서 새로 지어진 해양 전망대 위치의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어떤 연유였을까. 새로 지은 전망대에서 직선으로 50m쯤 떨어졌고 10~20m 높은 위치에 오래 전 시에서 지은 엇비슷한 기능을 하는 육각정이 있다. 그 자리가 전체를 두루 조망할 수 있다는 견지에서 새로 지은 자리보다 명당이다. 따라서 차라리 육각정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 지었으면 좋을 터인데. 왜 같은 장소에 유사한 목적을 겨냥해 두 개를 지었는지 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중복이라는 관점에서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함이 진정 좀팽이 같은 옹졸함에 기인할까.


우리 주위에 합성목재로 만든 덱 로드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급경사의 황량한 돌밭에 한 번 들어서면 출구에 다다를 때까지 다른 길이 전혀 없는 외길은 거의 없다. 또한 보통의 경우 걷다가 중간 중간에 땅 바닥을 밟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길은 입구에 들어서면 시종일관 땅 바닥은 구경도 못하고 덱(deck)만을 밟고 걷는다는 점이 또 다른 특징이리라. 이 같은 이유에서 어지러울 정도로 가파른 산비탈에 쏟아져 내릴 듯이 위험천만한 바위너설에 수도 없이 구불구불하면서도 몹시 가파른 470m의 600계단으로 만든 게 마냥 신기하다. 이 같은 특징 때문에 새로운 명물로 자리매김 되어 뭇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입소문으로 널리 알려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주위 환경이 버려진 불모지 같아 오지 탐험이나 군대의 삭막한 유격장을 방불케 할 뿐 아니라 으스스하며 여기저기 바위틈에서 도깨비나 귀신이 불쑥불쑥 튀어 나올 것 같은 괴괴 적적하고 오묘한 분위기가 더더욱 마음을 사로잡아 되레 그런 확신을 굳히고 있다.


마산사랑, 창동을 걷다, 마산문협사화집 제9집, 2022년 10월 19일
(2022년 1월 28일 금요일)

댓글목록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선생님, 청량산에도 전망대가 생겼나봅니다.  힘들게 올라가서 탁트인  동서남북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필요하기도 할 거예요. 저는 이번 가을 여행하면서 전망대를 실컷 감상했습니다. 해남 땅끝마을 전망대. 완도 전망대. 장흥 정남진 전망대 등 지자체마다 뒤질세라 전망대를 세워놨더군요.
엘리베이터로  올라가 꼭대기 전망대 라운지엔 어김없이 근사한 카페가 있었습니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라떼 한 잔을 마시는 그 순간은 세상 시름 다 잊고 완벽한 행복을 누리곤 했지요.
한달여 여행하면서 지나온 시간들이  벌써부터 너무 그리워집니다.
선생님, 가을도 이제 막바지네요.  떠나는 가을은 늘 아쉽습니다.
선생님 건강 잘 챙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