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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줏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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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0건 조회 883회 작성일 22-10-22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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줏대가 없다


줏대는 “자기의 처지나 생각을 꿋꿋이 지키고 내세우는 기질이나 기품”을 뜻한다. 이 같은 기질이나 기품을 지니지 못한 사람을 일컬어 “줏대가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심지(心地)가 박약하거나 바르지 못해 처한 주변의 상황에 휘말려 대책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뚜렷한 자기주장과 철학을 바탕으로 매사에 강직함을 달리 표현하는 말이 “줏대”이지 싶다.


줏대는 귀천이나 배움을 비롯해 지닌 권력 또는 재물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종이나 천민을 “간도 쓸개도 없이” 아첨을 일삼으며 필요에 따라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한다”고 개탄하며 전체를 도매금으로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때로는 그들이 절체절명의 모진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비루하게 아첨하며 고단한 삶을 꾸리기도 했으리라. 그들과는 신분상으로 다른 처지가 분명한 귀족이나 고관대작들도 지나칠 정도로 더 많은 권력이나 재물을 얻거나 거머쥐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탐욕의 화신처럼 날뛰던 경우를 물리도록 목격해왔다.


처세술 경구(警句)들을 골라서 엮어 펴낸 채근담(菜根譚)에 이런 구절이 있다. “비단옷을 입고 옥 같이 흰쌀밥을 먹는 사람 중에 종처럼 굽신거리는 것을 달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袞衣玉食者/ 甘婢膝奴顔)”.  이 글귀에서 어떤 의미를 유추할 수 있을까. 여기서 함축하는 바는 그 옛날 중국에서 양반이나 부자가 더 가지거나 얻을 탐욕에서 줏대 없이 행동하며 비루한 모습을 보였던 경우가 비일비재했음을 웅변한다. 그런가 하면 당(唐)나라의 시인 육구몽(陸龜蒙)은 “강호산인가(江湖散人歌)”에서 세태를 이렇게 장탄식하고 있다. “남자 종의 비굴한 얼굴과 여종의 무릎 꿇는 태도는 그야말로 거지 근성이거늘(奴顔婢膝眞乞丐), 도리어 정직한 사람을 미쳤다고 여긴다(反以正直爲狂癡)”. 이 탄식 역시 그 당시 사회적 정의가 매우 비뚤어진 실상의 단면을 어림짐작해 볼 수 있는 증적이 분명하다.


많이 배우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이가 고위직을 꿰차 부러울 게 없음에도 언행엔 줏대가 없어 천박하고 비루해 보이는 용렬한 위인들이 흔하다. 그런 부류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눈치 살피기 바쁘며 더 높은 곳을 향해 찬양 일색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읊어대는데 날이 새고 저물어 서글프고 측은지심에 우울하기만 하다. 보신과 사사로운 이권 챙기기에 모두걸기를 일삼는 정상배(政商輩)나 모리배를 그런 부류로 갈래지을 수 있지 싶다. 그런가 하면 어제 오늘 사회 첫발을 내디딘 햇병아리 처지에 파리가 발을 비비는 재주를 뺨 칠 정도로 손바닥을 잘 비벼대며 줏대 없이 살랑살랑 알랑거리는 경우엔 어이가 없고 말문이 막혀 아예 외면하기 마련이다.


줏대가 없는 이들은 거의가 이 눈치 저 눈치를 두루두루 보는 기회주의자가 많아 대체적으로 우유부단하고 부화뇌동하는 경향을 띈다. 게다가 확실한 자기 주관이나 철학의 부재로 인해 귀가 얇아 종국에는 대세라는 명분을 들먹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쓰디쓴 폐해를 안겨주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또한 그들은  자기보다 강한 상대에겐 한없이 약할 뿐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기는 천부적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한다. 그들에 비해 변변하게 배운 것이 없는데다가 가난하며 쥐꼬리만 한 권력도 거머쥐지 못한 채 애옥살이를 하는 필부(匹夫)가 이따금 우리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뚜렷하게 내세울 바가 없음에도 자기가 옳다고 여기면 모든 걸 잃을 위험에 처해도 굴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줏대 있는 강골(强骨)들이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며 귀감이 되는 경우가 숱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예로부터 전해오는 충고이다. 원래 양반이란 한 겨울 밖을 전전하다가 추위를 견디지 못해 얼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 피운 모닥불은 곁가지처럼 빌붙어서 쬐지 않는 법이라는 뜻에서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고 양반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을 천명했다. 또한 봄의 전령사인 매화 예찬의 단면이다.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을 팔지 않는다”고 하여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고 일렀다. 비록 살기 힘들고 팍팍한 세상일지라도 “줏대 있는 삶”을 저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겠다. 왜냐하면 “줏대 없는 삶”을 살아왔던 흠결을 매섭게 꼬집는 후세 사람들이 냉소를 퍼부으며 손가락질하면서 맘껏 조롱하는 민망한 치부(恥部)는 저승의 영혼도 결코 탐탁지 않아 기를 쓰고 내치려 안달할 테니까.


한국수필, 2022년 10월호, Vol.332, 2022년 10월 1일
(2022년 7월 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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