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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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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래여 댓글 4건 조회 619회 작성일 22-10-1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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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가 아니라 비주류라는 것

 박래여


 

 가정학습 기간에 집에 왔던 아들이 제 터전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쉽기만 하다. 아들도 어미 혼자 두고 떠나기가 어려운지 자꾸만 옆구리를 찌른다. ‘엄마, 나 없어도 밥 굶지 마. 이틀만 있으면 아버지 오시니까 그동안 조용히 계셔. 괜히 돌아다니다가 다치지 말고.’ 아침부터 아들은 바쁘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집안 대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보리(우리 집 개 이름)밥과 물도 챙긴다. 오전에 운동도 다녀왔다.

 

 점심을 먹고 아들은 떠났다. 집안이 텅 빈 것 같다. 허전해서 아래위층을 오락가락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OBS 경인TV 기자란다. 나에 대해서 잘 안다. 혹 엄마의 봄날이란 프로를 아느냐고 묻는다. 농어촌에서 평생을 촌부로 살아온 여성농업인으로서 퇴행성관절염과 척추협착 등, 농부 증을 앓는 어머니를 찾아서 취재를 하고 수술을 하도록 도움을 준단다. 어떤 병원과 연계해서 수술 후 완치를 돕는 프로그램이란다. 어떻게 나를 찾았느냐고 물었더니 농민신문과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었단다. 취재에 응해주면 좋겠다기에 일단 가족과 의논 후에 결정하겠다고 했다.


 딸에게 전화를 했더니 첫 마디에 엄마, 그건 엄마를 광고해서 팔아먹겠다는 거잖아. 무릎 수술하고 싶으면 내가 돈 댈게. 엄마를 작가로 소개하는 프로라면 찬성이지만 저거들 편리한 대로 이용하는 거잖아.’ 젊어서 내 작품 때문에 방송을 탄 적이 몇 번 있다. MBC 전원생활 체험 수기에 대상을 받으면서 여기저기 방송 매체에서 취재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다. KBS 라디오 최유라 코너에도 초대받아 생방송을 했었고 라디오 드라마로 나가기도 했었다. 6시 내 고향에도 소개 됐었다. 더구나 농민신문에 생활 수기며 신춘문예가 당선되면서 나도 모르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언론매체를 탄다는 것이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가족 모두 전국적으로 얼굴이 팔리면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취재 요청도 많았다. 가장 큰 피해자는 농부였다. 농부가 가장 힘들어했다. 사람들 입질에 오르내린다는 것이 부담스러워지면서 모든 취재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내게도 스타기질이 있는 것일까. 아직도 나를 내보이고 싶은 욕구가 강한 것은 아닐까.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능일지 모른다. 그때 농부가 했던 충고는 당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꼭꼭 숨겨두고 싶다. 얼굴 내밀고 나서지 마라.’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생각나게 했다.


 촌부의 자리매김은 수시로 통증을 유발했지만 내겐 농부와 두 아이의 사랑이 가장 소중했다. 튀고 싶은 나를 죽이는 연습을 끊임없이 했다. ‘글을 쓰자. 글로써 내 속에 든 응어리를 풀어내다보면 뭐가 돼도 되겠지.’ 나는 끊임없이 썼다. 힘들면 힘들다고, 화나면 화난다고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근래 들어 두 아이가 내게 어쩌다 우리 엄마가 욕쟁이 할매가 됐을까?’하며 놀렸다. 정치꾼들 탁상 공론하는 것을 보면 저절로 욕이 나왔다. 어쩌면 내 속에 든 욕구불만을 현 정치에 빗대 터뜨리는 것인지 모른다.


 그사이 자취방에 도착한 아들이 전화를 했다. 아들에게 이런 취재요청이 왔다고 했더니 첫마디에 딸과 같은 반응이다. ‘엄마, 무릎 수술하고 싶으면 제가 수술비 댈게요. 조용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겁니다. 아버지도 물어보나마나 우리랑 같은 대답일 겁니다.’한다. 취재기자에게 거절 문자를 날렸다.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저보다 더 힘들게 사는 여성 농업인도 많으니 그런 분을 찾아 도움 주세요. 고맙습니다.’ 후련하다.


 그리고 그 기자가 고마웠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내 글을 통해 나를 알게 되었고 나에 대해 찾아봤다는 말이 고마워서 첫마디에 거절을 못했었다. 아니, 공짜로 무릎 인공관절 해 준다는 말에 혹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두 애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농부는 처음부터 반대할 게 뻔했지만. 역시 우리 가족은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라는 것을 인정한다.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일요일 아침 "엄마의 봄닐"이라는 프로그램을 시간 날 때마다 봅니다. 그 내용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을 희화화시켜 묘사하지 않고 진솔하게 표현하며 개인의 특이한 이력도 소개해 좋은 느낌이던데...... 물론 방송국의 관점과 편집 의도에 따라 왜곡될 소지를 배제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참신한 소재를 찾아 여러 자료를 뒤졌을 기자도 고맙고.... 엄마가 무슨 예능 프로그램 선전 도구처럼 취급되는 게 싫어 반대하는 따님과 아드님 생각도나무랄데 없이  반듯하네요. 우리집 아이들 엄마도 겨우 고희(古稀)의 중반인데 무릎과 척추 협착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정형외과를 가까운 이웃 집 마실 가듯이 찾고 또 찾는 모습이 무척 안타깝답니다. 절뚝이며.....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지난해가 가장 힘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날 수도 없고 겨우 일어나 싱크대 앞에 서면 금세 주저앉았어요. 다리에 힘이 빠져 못 걸었어요.ㅋ
하여 문우가 추천하는 부산동의대 동의 의료원 한방병원에 입원을 했었어요. 그 병원은 양방 한방 다 봐요.
양방에서는 척추에 심 네댓개 박고 콘크리트 주입 대수술을 해야 한다더군요. 다리에 마비가 오면 수술은 불가피하다더군요.
수술 싫다고 방법이 없느냐니까 한방쪽을 권하더군요. 그 병원에 입원해 한달 보름을 집중 치료를 했어요.
한약과 약침과 뜸과 추나요법을 했지요.
퇴원할 때 절뚝거리지도 않고 뛰어나왔어요. 집에 오니 일이 산더미라 몸관리 할 생각은 안하고 일부터 했었어요. 수영장 가서 신나게 수영도 하고요. ㅋ 며칠 만에 도로아미 타불 되어 농부에게 욕을 진탕 먹었어요. 다시 일주일마다 한번 씩 외래로 두어 달 다녔어요. 의사가 농부에게 추나요법을 가르쳐주며 집에서 꾸준히 하라더군요. 아침마다 5분 정도 해 주는데 올해는 여행도 다니고 걷는 것도 수월해요. 대신 무리하지 않아요. 물론 수영도 꾸준히 하고. 약은 안 먹어요.^^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선생님 건강 잘 챙기세요. 

저도 항상 비주류로 살아요.  존재감 없이 혼자서 즐기면서요. 그게 편하고 자유롭네요.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선생님, 고맙습니다.
낯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요.
나이 들수록 남 앞에 나서는 것이 쑥스럽고 부끄러워집니다.
조용히 편하게 남은 나날 알차게 속을 채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