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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어머, 내 머리 쥐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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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623회 작성일 22-10-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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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내 머리 쥐나겠네.

윤복순

 

받아 놓은 날은 금방 닥친다고 했던가. 전국 여약사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날 칸타빌레 전라북도 약사 합창단과 대한 약사회 합창단 합동공연이 있다. 올해는 코로나194년 만에 열려 무조건 참석하기로 했다. 얼마 뒤 합창공연이 있음을 알려 왔고 이왕 참석하니 합창도 하기로 했다.

대회는 부산에서 열린다. 2주 전 합창연습시간이 있었다. “내 나라 내 겨레” “푸니쿨리 푸니쿨라” “돌아와요 부산항에세 곡이다. 잘 알려진 곡이라서 따라 부를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악보를 받아본 순간 앞이 캄캄했다. ‘내 나라 내 겨레는 원곡으로 부르는 게 아니고 합창곡으로 편곡을 했는데 소프라노 고음부분은 올라가지가 않는다. ‘푸니쿨리 푸니쿨라는 이태리어로 부른단다. 이태리어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외계인어 같다. 보고 읽는 것도 어려워 어디에서 어떻게 끊어 읽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읽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노래를... 선생님을 따라 서너 번 읽었다. 어디까지가 한 단어인지 몰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꼴이 된다. 겨우 맨 첫줄만 띄어 읽을 수 있다.

어느 해 이탈리아 여행 때다. 인솔자가 세계적으로 잘 생긴 남성은 이태리 남성이라고 했다. 잠깐 30분 정도 기차를 탔다. 패키지여행이 버스투어가 대부분인데 기차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때 기차 안에서 잘생긴 남자가 혼자 앉아 있거든 옆에 가서 이야기 해 보라고 했다. 운 좋게 젊은 남자 옆에 앉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여행 왔다고, 한국을 아느냐고 물었는데 아무런 대꾸가 없다. 결국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했다. 이태리어 인사말 정도라도 알았으면 대화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다음을 위해 가이드에게 쉽게 쓰는 몇 마디라도 배웠어야 하는데, 이태리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한다는 말에 다시 시도해 볼 생각도 안했었다.

이태리어는 하나도 아는 말이 없으니 동영상을 틀어 놓고 몇 번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는 단어가 없다. 후렴 부분은 빠르지 않고 반복되어 그 부분만 겨우 따라 부른다. 한국어로 토를 달아놓았는데도 혀가 꼬여 따라 부를 수가 없다. 이건 립싱크도 안 된다. 가사를 알아야 그에 맞춰 입을 벌릴 텐데 남들은 하는데 나만 모양을 하고 있으면 바로 탈로가 날 것이다.

10여 년 전 합창단 창단 때, 아직 홍보가 되지 않아 단원이 열 명도 안 되니 익산에서 몇 명이라도 와야 한다고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며, 후배가 같이 가자고 해 따라간 게 단원이 되었다. “이리여고에는 음악시간이 없냐?” 는 말을 듣는 내가 어떻게 합창을 할 것인가.

지휘자 선생님은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어차피 잘 하는 사람 몇 명이 끌어가니까 나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다. 첫날 발성 연습을 했는데 바로 아님을 알았다. 못한다고 했어야 했는데 안 해본 것을 하니 호기심이 생기고 잠시 허영심이 일었나보다. 잘하는 사람 예 일곱 명이 부르는 게 합창일까? 못하지만 숫자를 채워 20명이상 부르는 게 더 합창답다고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했다. 명분이 생겼으니 더 이상 기죽지 않기로 했다.

못하면 잘 하는 사람보다 노력을 몇 배로 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전주에서 하다 보니, 일요일에 하다 보니, 빠지는 날이 많았다. 겨우 가사를 외워 무대에 오른 적도 있다. 소울까지는 아니더라도 느낌이 몸에서 우러나와야 하는데.

지난주에 전주에서 연습이 있었다. 대한약사회 지휘자선생님이 내려온다고 했다. 참석하지 못했다. 혼자서도 연습이 되지 않고 게으름이 피워졌다. 알듯알듯해야 열심히 하게 되는데 영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 피하고 포기하고 싶어지는 것 같다.

어릴 때 게으름을 피우면 어머니는 거미가 지 똥구멍만 믿는다더니 너는 무얼 믿고 그러냐.” 며 미리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평상시에는 놀기만 하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때면 몇 시에 깨워 달라고 하곤, 깨워주면 공부하다 책상에 엎어져 자기도 잘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는 한 달이 금방가고 일 년도 금방 가 시간이 아까워 나름 빠듯하게 살려고 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2시간 정도 산책 겸 운동을 한다. 집에 돌아와 아침 먹고 화장실 가고 샤워하고 출근하려면 꽤 바쁘다. 출근하면 때때로 피로가 몰려와 신문보다 잠시 졸 때도 있다. 이렇게 오전시간이 가는데 누구라도 놀러와 점심이라도 같이 하면 2~3시까지 신문도 못 본다.

다음엔 법화경 필사를 A4 용지 두 장 한다. 그리곤 일본어 책을 큰소리로 읽는다. 집중력이 떨어져 오래 할 수 없다. 금방 외웠던 문장도 책만 덮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책을 본다. 다음은 캘리그라피 연습을 한다.

한일여성친선협회 10월 모임에 꼭 참석하라고 연락이 왔다. 차가 없고 전주에서 모이니 잘 참석하지 못한다. 11월 초에 3년 만에 일본에서 가나다라클럽 회원들이 전주에 온다. 거기에 맞춰 행사를 하는데 이번 모임에 준비사항 최종 점검을 해야 하니 꼭 오라는 것이다.

전통문화교류 시간에 우리민요 각시풀이 타령과 일본 노래 후후사토(故鄕)를 같이 부른다. 그 노래도 익히지 못했다. 악보는 진작 받았는데. 민요라서 어렵고 일본어 노래라서 어렵다. 전주에 사는 회원들은 매달 만나 연습을 했는데 나만 못했다. 이 달에 참석하려고 하니 노래 연습 좀 하고 가야할 것 같다.

일본어는 독학일망정 그래도 몇 년 해서 금방 읽혀지고 뜻이 바로바로 떠 오를 줄 알았는데 어림없다. 다행히 노래가 빠르지 않다.

지난 5월 날씨가 한없이 좋은 날 후배가 원대수목원으로 점심시간에 소풍을 가자고 했다. 그때 두 남자를 소개 받았다. 그중 한 남자가 나를 어머니라 부른다. 그들은 고등학교 국어선생으로 만나면 자연스럽게 문학얘기를 나눈다.

대전에서 박용래시인 시 낭송회가 있다며 후배가 참석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대화방에 올려놓았다. 후배가 나간다면 대상은 맡아 놨는데 공교롭게 여약사 대회 날이다. 우리끼리 시 낭송회를 하자는 의견들이 올라온다.

카톡방에 날씨가 너무 좋아 밥을 사고 싶다고 올렸다.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로 잡혔다. 밥은 간단히 먹고 은목서가 핀 수목원에서 시 낭송회를 겸해 차담회를 하자고 한다. 부랴부랴 박용래 선생 시 3편을 찾아 적었다. 외워서 낭송은 못할망정 뜻이라도, 시가 쓰여 진 배경이라도 알아야 맛을 내지 않겠는가. 이태리어 노래 일본어 노래 시 낭송. 어머, 내 머리 쥐나겠네.

 

2022.10.7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다양한 활동을 하며 바삐 사시는 모습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여러 일 하시려니 부하가 걸리게 마련이 아닐까요. 이는 행복한 고민이고 투정이 아닐까 싶어 솔직히 부럽습니다. 남의 나라 말인 이태리어 얘기 100% 공감합니다. 지난 80년대 초반으로 우리나라가 정식으로 국교를 맺지 않은 소련의 모스크바에 가서 3주징 정도 머물렀던 경험이 있습니다.  소련어의 알파벳도 모르는 채 갔는데 믿었던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고...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모스크바 시내 대부분에서 영어는 아무데도 쓸데 없는 외계외 같았습니다. 특정 계층을 제외하고... 어쨋던 전혀 모르는 이태리어 생각만해도 끔찍하셨겠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성취감 매우 크셨으리라는 생각에 빙그레 웃음이 번집니다.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아직 청춘처럼 사시는 것 같아요.^^
저는 마음이 팔십 댄데.ㅋ
집에 있는 것이 가장 편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