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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사악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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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651회 작성일 22-10-0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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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함이 없다


“사무사(思無邪)”라는 경구(警句가 등산로 옹벽에 새겨져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지난 언젠가 얼렁뚱땅 익혔던 글귀이다. 그런데 며칠 전 등산로 입구의 이끼가 덕지덕지 낀 시멘트 옹벽에 달필로 새겨진 것을 보면서 그 뜻을 새삼스레 되뇌어봤다. 여태까지 ‘삶에서 생각에 간사함이 없고 마음이 반듯하며 그릇됨이 없이 순정(純正)한 마음을 지니고 행동했던 적’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지 모르겠다. 녹록지 않은 세파의 격랑을 헤쳐 나간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면서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었는지 맹성이 필요하지 싶다.


원래 “사무사”는 공자가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에서 다음과 같이 이른 말에서 비롯되었다. “시 삼백편(三百篇)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무사’ 즉 사악(邪惡)함이 없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고 일갈했다. 이 말은 시를 “사무사”라고 정의한 천명인 셈이다. 왜 그렇게 판단했을까. 그가 교육적 목적을 겨냥해 ‘시경’을 편찬해 내면서 거기에 담긴 뜻을 단 한마디 말인 “사무사”로 함축하고픈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한편 이는 “사특(邪慝)함이 없을 뿐 아니라 그릇됨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단정을 했을까 그 연유의 유추이다. 원래 “시(詩)”는 “정서나 사상 따위를 운율을 지닌 함축적 언어로 표현한 문학의 한 갈래”이다. 결국 살아가면서 느끼는 다양한 정서나 생각을 순수하게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노래한 것이 시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진솔한 표현의 산물인 시에는 사악이 포함되지 않고 순정하다고 일갈하지 않을까 싶다.


시경(詩經)은 유교의 오경(五經)* 중의 하나로서 공자가 은(殷)나라 시대부터 춘추(春秋) 시대까지 전해오는 수많은 시 중에서 305편을 골라서 편찬해낸 시가집(詩歌集)이다. 전체 작품을 풍(風), 아(雅), 송(頌)의 3부로 나누어 편집했다. 여기서 ‘풍’은 여러 나라의 다양한 지역에서 수집한 160개의 민요, ‘아’는 연회석(宴會席)의 노래로 소아(小雅 : 74편)와 대아(大雅 : 31편)를 합해 105편, ‘송’은 왕조나 조상의 제사를 모실 때 노래로서 40편 등의 ‘풍아송(風雅訟)’으로 구성되었다. 이들 모두는 고대의 무명 민중이나 지식인 노래들이다.


시경의 편찬자로서 자부심은 대단했던 것 같다. 그가 일렀던 시경을 읽으면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유익하다고 이렇게 읊조리고 있다.


“공자 왈 제자들아 어찌하여 시를 배우지 않느냐(子曰 小子何莫學夫詩)
시는 감동을 일으키게 하고(詩 可以興)
위정자의 잘잘못을 관찰 할 수 있고(可以觀)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고(可以群)
화를 내지 않고도 남을 원망할 수 있게 하며(可以怨)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길 수 있고(邇之事父)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으며(遠之事君)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多識於鳥獸草木之名).”


본디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바르고 그릇됨이 없다’와 일맥상통할 게다. 이를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세상만사를 왜곡 없이 바로보고 편견이나 더덜이 없이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이리라. 자기의 주관에 따라 편협하게 단정하거나 선입견이나 부정적인 시각이 불식되어야 함을 간과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라는 철학을 담은 게 바로 “사무사”가 함축하는 대의(大意)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생각이 아집이나 번뇌에 이르면 일체의 대상을 바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본성까지도 있는 그대로 직관이 불가능하다는 다는 이유에서이다.


자주 찾는 등산로의 이끼 낀 시멘트 옹벽에 누군가가 가뭄에 콩 나듯이 새긴 글귀이다. 맨 먼저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 다음엔 “물은 흐르고 꽃이 피네”라는 “유수화개(流水花開)”, 그 다음엔 “다만 알지 못함을 아는가”라는 “단지불회(但知不會)”를 화두 던지듯 띄엄띄엄 휘갈겨 남기더니, 최근에는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사무사”를 새겨놨다. 글씨체로 볼 때 분명 같은 사람의 소행으로 상당한 경지에 이른 은둔거사가 분명한데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파서 허접한 낙서장 같은 시멘트 옹벽에 귀한 글귀를 화두 던져주듯이 하나씩 남기는지 그 숨겨진 의도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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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경(五經) :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예기(禮記), 춘추(春秋)


시와 늪, 2022년 여름호, 통권 56호, 2022년 7월 20일
(2022년 4월 26일 화요일)
 

댓글목록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선생님처럼 새겨 보고 가는 길손을 위해 쓴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