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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말에서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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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620회 작성일 22-10-0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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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서 꽃이 핀다.

윤복순

 

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등 상대방을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하는 법을 배워왔다. 평생 천 냥 빚을 갚을 말을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이다. 내 또래의 아주머니가 혈압 약을 처방받아 왔다. 한 달도 참 빠르다. 알고 지내는 사이이니 명절은 잘 보냈는지, 애들은 다녀갔는지,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느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때 가끔 유산균을 사가는 아줌마가 왔다. 그녀가 혈압 약을 받은 아주머니에게 너무 인상이 좋고 예뻐서 곁에 앉아만 있어도 저절로 행복해질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는 빵 터졌다. 솔직히 우리는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 인상도 아니다. 그냥 보통이다. 그녀는 또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예쁜지 모르고 살아간다.” 말한다. 보통사람들 중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녀의 말 한 마디로 우리는 칠십 줄이라는 나이도 잊은 체 큰 소리로 웃었다. 소리 내어 웃을 일도 없는 요즘인데.

자기 딸이 교사인데 앞으로는 교장 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란다. 학생 수가 줄면서 학교가 많이 폐교되기 때문에 이모부가 교장 되던 시절과는 다르다면서. 그녀는 딸에게 걱정 마, 너는 돼.” “?” “OOO 딸이니까.” 그녀의 이름을 댄다. 또 빵 터졌다. 우리는 요즘 말로 아빠 찬스 엄마 찬스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 자신감을 갖고 살자고 한다.

나는 따님은 충분히 교장이 될 거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또 자녀는 부모가 믿는 만큼 된다고 했다. 부모가 믿어주니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감으로 일을 하니 얼마나 능률이 오르겠는가. 그녀의 말로 오후가 풍성해졌다.

 

몇 해 전 내가 살던 아파트를 산 아주머니가 오랜만에 약국에 왔다. 그녀는 나보다 열 살 쯤 많다. 아들에게 그 집을 주고 당신은 서울에서 산다. 가끔씩 아들네 집에 내려오면 약국에 꼭 들른다. 그녀와 난 성은 다르지만 이름이 같아 이 집은 복순이네 집이네.” 해서 웃었었다.

그녀가 오랜만에 온다며 샤인머스캇 포도를 사가지고 왔다. 우리 집이 포도집인데 무슨 포도를 사가지고 오냐고 해 웃었다. 나는 그 포도를 받고 우리 포도를 그녀에게 주었다. 오랜만이니 또 이야기가 길어진다.

젊은 남자가 해열제를 사러왔다. 딸이 열이 많다며 아무개 해열제는 있는데 교차 복용할 수 있는 해열제를 찾는다. 그녀가 이쁘고 잘 생긴 아빠라서 딸도 이쁠 것 같다며 당신도 아버지가 많이 이뻐해 줬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기 기술자였고 일본에도 갔었다고 한다. 그 당시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버지가 일본에서 신발과 머리핀을 사 오셨단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다며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 한다. 그에게 딸네미도 커서 아빠와의 추억이 많도록 예쁘게 잘 키우라고 한다.

그가 우리 약국 다음 골목에 미장원을 낸다며 어머니 월요일 개업을 하니 꼭 놀러 오세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둔다. 원래는 파마 손님에게 드리는 선물인데 어머니한테는 그냥 드리고 싶다며 꼭 오시라고 몇 번이나 부탁을 한다. 진심이 묻어있다.

그녀가 뭐라고? 개업한다고? 가만 있어봐.” 비타민드링크 2박스 40병을 그에게 개업하려면 피곤하니까 먹으라며 사 준다. 그가 어머니 왜 이러세요.” 어떻게 염치없어서 받느냐는 표정으로 서 있다. 그녀는 어서 가지고 가라고 손사래를 친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그녀가 참 크게 보였다. 그녀는 나에게 매상도 올려주고 젊은이에게는 힘도 실어주었으니 됐다며 기분 좋다고 한다. 훈훈한 하루였다.

 

오후 시간에는 일본어 책을 큰소리로 읽는다. 이때 나보다 젊은 아저씨가 약을 사러 왔다. 일본어 공부 하냐며 다시 읽어보라고 한다. 독학을 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조언을 들어본 적이 없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읽었다. 내가 읽으면 그가 바로 해석을 해 주었다. 그날 일본어 얘기는 오래 하지 못했다.

두어 달쯤 시간이 지났을까. 한 남자가 약국에 왔고 그가 자기가 왜 왔는지 알아 맞추어 보라고 했다. ‘별 사람 다 봤네.’ 하는 마음으로 누구일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쉬 알아보지 못하니 객관식으로 내겠다며 영어로 1번 비싼 약을 사러, 2번 약사를 좋아해서, 3번 술에 취해서.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큰소리로 2번 나를 좋아해서, 라고 대답했다.

그때서야 저번에 일본어 같이 했던 사람이라고 자기를 밝힌다. 나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다. 오늘도 일본어 책 다시 읽어 보라고 한다. 한 단원을 다 읽고 나니, “어느 학원에 다니세요?” “독학 하는데요.” 그런 줄 알았단다. 전체적으로 발음이 세고 장음도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번에 이런 말을 해주지 못해서 다시 왔다고 한다.

책을 당신 발음으로 읽어주고 장음이나, 첫 음이 센 음이면 순하게 읽고 중간이나 마지막에는 원래 음 그대로 읽으라고 알려준다. 참으로 일본어를 사랑하는 사람 같다. 첫 번째는 우연이었지만 이번에는 맘먹고 오지 않았는가.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세상엔 말이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말에는 그 사람의 인격이 있다. 나는 언제 한 번이라도 품격이 느껴지는 말을 한 적이 있을까. 하루에도 수많은 말을 하고 산다. 내 말 중에도 꽃이 핀 말이 있을까.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소소한 일상에서 이웃끼리 정을 주고 받는 아름다운 정경에 제 마음까지 푸근하고 따뜻해 지네요. 그런 인간 관계가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아름다운 선연들이 어우러지는 곳에 저도 이웃이었다면 더할 수 없이 좋겠다는 부러움에 흔적을 남깁니다. 즐겁고 보람된 가을 맞으세요.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선생님은 이미 품격이 느껴지는 말씀을 하실 겁니다.^^
네, 살아갈 수록 고마운 사람이 많아서 이 세상이 유지되는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