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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른 아침에 만나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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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3건 조회 664회 작성일 22-09-17 16:20

본문

이른 아침에 만나는 기쁨

윤복순

 

하늘

새벽 6시에 산책을 나간다. 아파트를 벗어나면 논둑길이다. 그곳에 서서 하늘을 본다. 매일매일 다른 하늘의 모습에 감사하려 한다. 오랜만에 맑다. 하늘도 조금 높아졌다. 옅은 회색과 흰 구름이 파란 하늘과 어쩌면 이리도 잘 어울릴까. 금석지교 지란지교 송백지교 죽마고우 관포지교 등등 어떤 친구를 갖다놔도 이보다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다.

걷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온 하늘을 올려다본다. 흰 구름이 마치 파도 같다. 어느 해 포르투칼을 여행할 때 대서양의 끝 로까곶에서 바람 힐링을 하고 호텔로 들어가던 길에 보았던 그 파도다. 토네이도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버스를 세우고 일행들이 전부 내려 구경을 했다.

그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비행기가 지나면서 하얀 줄을 그려 놓는다. ‘비행기 타고 싶다.’ 나도 모르게 그 소리가 나왔다.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무인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무정한 비행기는 쌩 지나가고 나만 서 있다. 코로나193년 동안 비행기 한번 못 탔다. 그 전까진 매년 두 번씩 해외여행을 다녔는데.

하늘엔 날마다 다른 그림이 걸린다. 내 마음대로 제목을 달아보는 재미가 좋다. 내일은 어떤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

 

황새

비가 내려도 새벽 운동은 나간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좋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도랑에 많은 물이 흐르게 한다. 도랑가에 황새 두루미 왜가리 백로 비슷비슷한 새들 20여 마리가 일렬횡대로 서 있다. 매일 한 두 마리씩은 보지만 이렇게 많은 새를 볼 수 있는 것은 도랑물이 불어난 때다. 오늘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장병들의 사열을 받는 사단장이라도 된 양 보무도 당당하게 둑방을 걸으려 했다. 나를 환영해 주러 나온 그 애들한테 근엄한 모습은 안 돼, 미스코리아 마냥 온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우아하게 손을 흔들며 한 마리에 한 번씩 안녕, 안녕 이십 번을 할 셈으로, 안녕 한 번 하고나니 다 날아가고 말았다.

도랑에 물이 불어나니 먹을 것이 많아졌나 보다. 아침식사 하러 나온 그 녀석들의 식사만 방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애들이 나를 보고 ! 사람이다.” 호들갑을 떨며 내 주위로 몰려들지 않듯 나도 마음으로만 좋아해야겠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또 그렇게 쭉 있다. 매일 한두 마리라도 너희들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아침마다 기대가 된다고,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고 말해 주고 싶은데 그 애들은 내가 싫은가 나만 보면 달아난다. 내가 그 애들에 경이로움이 없어질 때쯤 그 애들도 나에 대한 경계심을 풀까. 비가 오지 않으면 곧 하천은 바닥을 보일 테고 그러면 이렇게 많이 동시에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알고 있는 새들이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다른 사람은 한 번도 못 봤을 관경을 나는 여러 번 보았으니 행운이다. 내일은 몇 마리나 만날 수 있을까.

 

나팔꽃

논둑길에 나팔꽃이 지천이다. 옅은 분홍색 중에 군계일학 꽃자주색이 말 그대로 고혹적인 자태를 뽐낸다. 걸음을 멈추고 눈을 맞춘다. ‘넌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해 이리 예쁘냐.’ 많은 종족을 번식하라고 몇 년 전부터 매일 박수를 쳐 주었는데 꼭 그 자리 한 무더기뿐이다.

나팔꽃 집단에 유홍초도 무리를 이뤘다. 귀여워 매일 손을 흔들어 주는데 그 보다 더 작은 흰색 꽃도 있다. 돌연변이가 생겼을까, 흰색도 유홍초일까,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남색 나팔꽃이 나도 여기 있어요.” 어깨를 들이민다. 저도 새벽 두세 시부터 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해 아침에 활짝 피었노라고, 오후가 되면 고깔처럼 시들어 간다고 어서 봐달라고 야단이다.

나팔꽃은 오존이나 이산화황에 민감하게 반응해 들깨, 가죽나무와 함께 대기오염의 정도를 알아보는 식물이다. 날마다 이 녀석들의 상태를 유심히 살핀다. 아직까진 이상 없다. 나팔꽃이든 유홍초든 메꽃이든 그들의 나팔로 오늘도 선물이다, 며 산책길에 팡파르를 날마다 울려준다.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이미,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다//바람은 밤새도록/사랑을 보내고/새벽을 열었던 자리다//때 이른 초저녁 달빛이/모성으로 다가서면/하릴없이/그렇게 바람이 머물다간 자리다// (졸시 나팔꽃 사랑)

 

솔버섯

장마가 끝나고도 비가 째금째금 내린다. 잦은 비로 버섯들이 많이 났다. 내가 아는 야생 버섯은 솔버섯과 피버섯 뿐이다. 용케도 솔버섯이 무더기무더기 있다. 따 담을 그릇이 없어 지금까지 내내 나에게 기쁨을 준 연잎 하나를 꺾어 담기로 했다. 미안하다고 하니 연잎이 자기 일생은 거의 끝났다고 한다.

딸을 임신했을 때 입덧이 아주 심했다. 추석에 친정에 갔을 때 어머니가 끊여준 솔버섯국으로 겨우 속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친정은 고라실로 야산으로 둘러싸여 버섯이 많았다. 처서 지나서 심은 배추를 솎아 시래기를 만든 것으로 버섯된장국을 끊이면 맛이 좋았다. 국에서 소나무향이 났다. 솔버섯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딸이 아프다. 십 여일 전 딸에게 전화가 왔다. 일요일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고. 평소 딸은 건강한 편이어서 장난처럼 받았다. 온 가족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는데 차안에서 배가 많이 아파 당번병원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 대학병원응급실로 갔단다. 이런저런 검사 후 난소에 7.5Cm 혹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다행히 양성이다.

딸이 애를 다섯이나 낳고 직장생활도 열심히 해 매년 연구발표를 하고, 교육부장관상도 1등급으로 2등급으로 두 번이나 받았다. 방학 때면 연수교육 강사로도 활동한다. 나는 우리 딸 최고.’라며 추켜세우기만 했지 스트레스 어지간히 받으라고, 좀 쉬엄쉬엄하라고 말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직장생활도 가정생활도 잘 해 슈퍼우먼 인줄 알았더니 속으로 골병이 들었던 모양이다.

혹이 너무 커서 빨리 수술을 해야 했는데 운 좋게 수술 날도 바로 잡혔다. 아는 병이니 걱정할 것 없다. 저학년 쌍둥이들은 할머니 댁으로 가고 사위가 휴가를 냈다. 수술 잘 끝나고 일반병실로 옮겼다는 사위 전화도 받았다. 저녁에 딸에게 전화를 하니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수술부위 보다 어깨가 아프다고 한다. 한 달 병가를 냈는데 이번 참에 몸 좀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퇴원하면 버섯국을 끊여줘야겠다. 내가 입덧으로 비실비실할 때 어머니의 솔버섯국으로 기운을 잡았듯 딸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때맞춰 솔버섯을 땄다. 어머니가 우리 딸 몸보신해주라고 보내 주신 것으로 믿고 싶다.

 

2022.9.8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따님 하루 속히 완쾌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학교로 돌아 가시기를 기원 드리겠습니다. 아마도 지난 87년 쯤 이었을 것입니다. 저희집 아이들 엄마가 난소에 혹이 생겨서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수술했는데... 다행이 물혹이라서 아무 탈이 없었습니다.

요즘 새벽 걷기를 하시는군요. 저는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산의 정상에 갔다가 돌아오는 운동을 요즘 계속하고 있답니다. 산에 올라가고 내려 오는 대략 3시간 동안 손전등은 필수지요. 깜깜해서........ 그렇게 운동을 해도 치아문제에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네요.  다음달 치과에서치아 8개를 임플란트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 비용이 천만원을 훌쩍 넘는다니 아깝다고 생각 되기도 하네요. 그렇다고 치아 없이 살 수도 없는 느릇이고.... 건강하세요.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솔 버섯이 어떤 건가요? 산에 살면서도 저는 싸리버섯과 송이버섯만 알아요. 다른 버섯도 많지만 독버섯일까봐 겁나서 못 따요.
추석에 부모님 뵈러 산에 갔다가 싸리버섯을 땄어요. 애호박과 국을 끓였는데 맛있더군요.
따님의 쾌유를 빕니다.^^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요즘은 새벽에 안개가 가득해 하늘 구경을 못 해요.
해 뜨는 것도 못 보고. 
그냥 걷기만 합니다.

딸은 회복이 빨라 다 나았어요.
7일 부터 출근을 한대요.
모두가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