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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비지 사러 갔다 두부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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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669회 작성일 22-08-2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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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 사러 갔다 두부 사 왔다

윤복순

 

약사문인회 회장이 유화 전시회를 한다. 구례는 익산에서 가까워 가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다. 마침 후배에게 연락이 왔고 날도 잡혔다. 마음이 바빠졌다. 화가로 거듭난 그녀에게 뭔가 힘이 될 만한 것을 해 주고 싶었다. “빛나는 당신의 내일을 응원합니다.” 한 달 전 시작한 캘리그라피를 저녁마다 열심히 써 보지만 한참 모자라 포기 했다.

그녀는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약대에 갔고, 60이 넘은 나이에 다시 그림을 시작했다. SNS에 유화 시작했다고 글을 올렸다. 아마도 모든 아는 사람에게 공표를 해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도 꿋꿋하게 이겨낼 자신과의 약속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그때 여러 사람들이 힘내라, 응원한다, 며 지리산 사진들을 보내주었단다. 마음에 와 닿지 않아 미뤄두고 다른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구례 홍수 사진을 받았는데 지붕에 올라간 소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울컥하며 그려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고 한다.

그 사람이 구례의 수해현장, 복구해 가는 사진을 꾸준히 보내줘 그걸 그리며 친분이 쌓였다. 그는 시인이며 사진작가다. 올해 섬진강 수해 2주년 행사, 다시 구례! 안전한 구례!” 행사를 구례에 사는 시민단체 주관으로 한다고 연락이 왔고 그녀의 그림이 전시되게 되었다.

그녀는 늦게 시작한 만큼 열심히 한다고 했다. 2~3년 동안 100여점을 그렸고 구례 관련은 21점이라고 한다. 그녀는 구례에 가본 적도 없는데 구례를 그린 화가가 된 것이다. 인연이란 참 묘하다. 모르는 사람의 사진 한 장으로 구례와 인연이 되었고 전시회까지 하게 되니 말이다. 노력은 헛되지 않아 서울 강남구 미술대전에 입선도 했다. 금상첨화다.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서울 익산 나주 산청에서 약사 문인들이 구례에 모였다. 사진과 그림 전시가 군 문화회관에서 열렸다. 2년 전 장마 때 섬진강 유역 홍수가 TV화면을 가득 채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수해를 극복해 가는 과정의 그림도 가슴 뭉클하다.

어쩌다 약문 단톡방에 그녀가 그린 그림을 올려 주었는데 호기심이 생기고 관심이 갔다. 팔 하나 그리는데 한 나절이 걸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대단한 노력과 고뇌의 작업임을 미루어 짐작했다. 관리약사 까지 하면서 그 많은 작품을 했다는 것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수해로 떠내려가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먹은 소가 빈집 2층에서 옥상에서 내려오는 낙숫물을 목을 쭈~욱 빼고 받아먹는 그림, 우리가 절망에 빠졌을 때 하늘이 노랗다고 하는데 온통 노란빛인 그림, 복구하는 데 자기 코가 석자나 빠졌는데도 남을 위해 머리에 뭔가를 이고 활기차게 걸어가는 뒷모습의 그림, 삶에 대한 외경심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섬진강가에서 구례의 특색인 참게매운탕과 재첩회로 점심을 했다. 그 식당도 홍수 때 많은 피해를 봤다고 한다. 경치 좋고 맛있는 집을 예약해 두었다는데 하동 가까이 까지 갔고 즉흥으로 박경리 문학관의 문학기행이 오후 일정이 되었다.

구례에서 하동까지 섬진강을 따라가는 길은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10위 안에 들 것이다. 어느 해 일요일마다 옥정호(섬진강 상류의 댐)에서부터 광양까지 구역을 나눠, 기차 타고 시내버스 타고 택시를 타면서 섬진강종주 때 이 길을 걸었다.

또 딸네 식구들과 토지문학기행을 가는데 네비게이션에서는 자꾸 원주만 나왔다. 당황해 구례 토지면만 생각나서 갔는데 관광안내도에도 문학관은 없다. 섬진강 어류생태관을 관람하면서 서희가 생각났다. 직원에게 서희네 집을 물으니 제가 어떻게 서희네 집까지 알겠어요?” 해서 웃지도 못하고 바로 깨갱했다. 손녀가 서희는 누구예요? 왜 그 집에 가요? 이것저것 묻는 바람에 최참판댁이 생각나 다녀올 수 있었다. 오늘은 여러 약문들과 함께하니 각자 다녀왔던 추억들을 얘기하며 간다.

최참판댁 마루에 서서 평사리 들녘을 바라보는 맛은 참 좋다. 풍경소리 들으며 강바람 들바람 산바람을 맞았다. 분위기에 맞춰 김 약사의 남편이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에서 검다black이 아니고 dark라고, 땅도 그냥은 누런지 모르는데 한물이 져서 흘러가는 물을 보면 황토물이라서 누렇다, 라고 설명해 주었다. 천지의 오묘함이 쪼끔 이해되었다.

그 집의 주련에 대한 해석도 들을 수 있었다. 문화해설사인지 관리인이지 모르겠지만, 그 분의 설명에 의하면 정여창선생이 세자(연산군)의 스승으로 있으면서 애로사항을 친구에게 보냈고, 다음은 모르고 악양루에 있는 것과 같다고 들은 것 같다. 공부 못하는 나는 여기까지가 한계다.

박경리선생은 24세에 남편을 잃고 오로지 글쓰기에만 전념하신 것 같다. 문학전시관에는 토지를 재해석한 예술작품과 선생의 삶과 문학을 엿볼 수 있는 유품들이 있다. 선생의 손자가 그린 그림도 있다. 회장이 할머니가 유명하니까 손주 그림까지 이곳에 있다며 당신 손자 생각하는 마음을 내비친다. 할머니 노릇 잘 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들의 시간이란 선생의 시가 마음에 와 닿았다.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딛쳐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본들 徒勞無益/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내 나이쯤 되셨을 때 쓴 시인 것 같다.

문학관을 나와 스타웨이, 하동이란 카페에 들렀다. 입장료가 있어 의아했는데 받을 만 하다. 섬진강이 한 눈에 보이고 하늘에 구름까지, 카페의 테라스에서 맞는 섬진강바람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되었다. 주객이 전도돼 이곳이 오늘의 하이라이트 같다.

그림 전시회에 갔다가 문학기행에 카페 힐링까지, 매 시간 참 행복한 하루였다. 비지 사러 갔다 두부 사온다고 했던가. 회장 응원하러 갔다 내가 더 위로받고 왔다.

 

2022.8.7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즐겁고 보람된 나늘이 길 행복하고 뿌듯하셨겠습니다. 늘 무언가를 찾아 길을 나서는 결단과 용기가 무척 부럽습니다. 매일 다람쥐 쳇 바퀴 돌듯 늘 집에 머무는 처지라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회장님 작품 두 점을 구례에서 사겠다고 연락이 왔다네요.
정말 축하할 일이죠?
내 일처럼 기분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