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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삶이 버겁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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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888회 작성일 22-08-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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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버겁거든


사노라면 뜻하지 않은 외착(外錯)*에 직면할 개연성이 높다. 날씨를 종잡기 어려운 여름날 집을 나섰다가 갑자기 휘몰아치며 쏟아 붓는 소낙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황당무계한 경우가 그렇다. 또한 어렵사리 틈을 내 나섰던 나들이 길의 도린곁*에서 승용차 타이어가 펑크가 났음에도 갈아 끼우는 방법을 몰라 쩔쩔맸던 난처한 상황이 그렇다. 아울러 모든 게 뜻대로 풀릴 것 같은 일이 한 순간에 바뀌는 돈좌(頓挫)*에 빠지는 게 역시 그런 부류이다. 그럴 때 다짜고짜 서둘며 허둥댈 일이 아니다. 예로부터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일렀다. 왜냐하면 ‘마음이 급하면 일이 잘 되지 않는다’하여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고 이르지 않던가. 이런 맥락에서 삶이 어렵고 힘들 때 나의 참된 자화상은 어떤 꼴이 바람직할까.


자주 오가는 등산길에서 뇌졸중으로 움직임이 느리기 짝이 없는 이를 몇 차례 목도했다. 몸의 왼쪽이 거의 마비된 상태로 정상인의 눈에는 걷는지 서있는지 구별되지 않을 지경으로 무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만만한 포장길 대신 가파른 비탈과 깔딱 고개가 즐비한 등산로를 걷는데 정상인의 몇 배의 시간이 소요되지 싶어 무척 안쓰러웠다. 스쳐 지나며 언뜻 살펴보니  조금씩 천천히 걷다가 힘이 달리면 길옆 바위나 비탈진 땅위에 걸터앉아 자주 쉬었다. 그 나름 등산로에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이따금 찾는가 보다.


주위에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가 이런저런 생각이나 조언에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 불멸의 성공을 거둔 사례가 드물지 않다. 살면서 크고 작은 좌절을 겪으며 모든 걸 포기하고픈 충동과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공부나 시험에 실패해서, 사업이나 사회생활에 실패해서, 배신의 아픔 때문에, 연애에 실패해서” 따위의 아픔이 없는 세상에서 꽃길만 걸어온 이들은 그다지 흔치 않으리라.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각자의 아픔이나 좌절을 속으로 삭이고 숨기며 버거운 현실과 드잡이하고 우뚝 일어선 승리자가 오늘의 지구촌 지킴이인 현대인이지 싶다.


목에서 쓴 내가 날 정도로 힘든 일을 하거나 가파른 산비탈을 오를 때 숨을 몰아쉬기도 힘겨워 헉헉거릴 때 적당히 쉬는 게 으뜸의 대응이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서 체득하고 있다. 이 같이 단순한 진리의 깨우침도 수없이 되풀이 되었던 시행착오를 통해 쌓은 체험으로 얻는 알토란같은 지식이다. 결국 고난에 직면했을 경우에 섣불리 서둘거나 어쭙잖은 직진만이 정답이 아니기에 적당히 쉼이 더 멀고 더 높이 도약을 위한 슬기로운 대처이리라.


눈앞이 깜깜하고 도저히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면 대부분 망연자실해 모든 걸 포기하기 쉽다. 예로부터 ‘궁하면 변하라’는 뜻으로 궁즉변(窮卽變)이라 했고, ‘변하면 통한다’라는 변즉통(變卽通)이라 했으며, ‘변하면 오래간다’고 하여 통즉구(通卽久)라고 일렀다. 이는 어려울수록 신중하게 방법을 모색하면 해법을 찾아 튼실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음을 확신시켜주는 가르침이 틀림없다. 또한 어렵고 힘듦에 직면하더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생각을 거듭하면 ‘사물이나 현상을 고요히 관찰하면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다’는 의미로 정관자득(靜觀自得)이라고 이르지 않던가.


흔히들 ‘소나기가 쏟아지면 우산을 쓰라’고 조언한다.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나 버티기 힘들 때 무리하기보다는 일시적으로 비켜서서 그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봉착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 궁리하는 게 영철(英哲)한 대응 마음가짐이다. 왜냐하면 과거는 현재의 모태이고, 현재는 미래의 모태이기에 순리에 따른 생각을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견지에서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세상사 모두가 물이 흐르듯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각각을 따로 분리하는 단절의 시각이 아니라 혈관으로 피가 순환되듯이 자연의 법칙이나 이치가 이어진다는 이유에서 그 공통인자 속에서 최대공약수를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같은 일을 당하더라도 지난날에 집착해 원인과 해법을 도출하려는 과거 지향적인 접근과 미래에 방점을 두고 해법을 모색하는 두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과거란 뺄셈이 될 공산(公算)이 높아 과거와 현재에 집착할 경우 미래를 잃기 쉬울뿐더러 감성에 기대 흔들릴 위험이 매우 크다. 이에 비해 미래 지향적인 접근은 진취적인 개선의 의지를 바탕으로 하는 비전을 담는다. 따라서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경우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내일에 기대를 담는 도전적인 대거리가 합당하지 않을까.


힘겹고 감내키 어려운 난제일수록 먼 미래를 지향할 목표를 바로 직시하는 긴 안목이 필요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티끌 같은 이(利)에 판단 깜냥을 잃어 거짓이나 사리에 어긋나게 대처했다가는 그 잘못을 덮거나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어지는 또 다른 행동들 때문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예이다. 언필칭 우리사회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마구 내뱉은 거짓말 시리즈(series)의 자가당착(自家撞着)을 무리하게 덮으려 발버둥 치다가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모순에 함몰되는 목불인견의 안타까운 경우들이 그 본보기이다. 따라서 난제에 봉착해 급하고 여유가 없을수록 먼 내일을 보고 해결책이나 묘수를 찾는 지혜가 필요한 요즘이다. 언젠가 상품 광고 문안을 패러디(parody)해서 널리 회자되던 “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한다”라는 말이 불현듯 떠오름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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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착(外錯) : 착오가 생기어 서로 어그러짐.
* 도린곁 : 사람이 별로 가지 않는 외진 곳.
* 돈좌(頓挫) : 기세 따위가 갑자기 꺾임. 일이나 계획 따위가 갑자기 틀어짐.


문예감성, 2022년 여름호(통원 29호), 2022년 6월 15일
(2022년 3월 21일 월요일)


댓글목록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선생님 처서도 지났네요. 밤에는 창문을 닫아도 될 정도로 더위가 많이 숙졌습니다. 
예년에 비해 올여름은 많이 수월하게 넘어갔는 것 같아요.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늘 하는 조언이 있는데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지 마라'는 겁니다. 어려울수록 정도를 걸어라고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민한 데가 있습니다. 우선 잔꾀에 속아서 딋일은 생각않느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아, 선생님 마지막 줄에 불현 듯(불현듯) 붙이셔야 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