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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술에 대한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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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815회 작성일 22-08-0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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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대한 여담


세상에 술처럼 다양한 모습과 천(千)의 얼굴을 가진 기호식품이 또 있을까. 게다가 일반적인 기호식품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특정한 상황에 한정해서 어울리는데 비해 술은 상황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경우에 찹쌀궁합을 자랑한다. 그 오묘한 세계와 만남이다.


술은 마시고 나타내는 행태나 사람의 꼴을 곱지 않은 시각의 호칭 몇 가지이다. 흔히들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을 주호(酒豪), 술꾼, 음호(飮豪), 주선(酒仙)이라고 한다. 한편 ‘술을 늘 대중없이 많이 마시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 모주망태이다. 또한 ‘술에 몹시 취해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 또는 그런 사람’을 고주망태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술을 아주 많이 마시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술푸대, 술고래, 고래. 모주망태, 술꾼이다. 이 외에 ‘한량없이 많은 술. 또는 그만한 술을 마신 상태나 그만한 주량’을 억병이나 억백이라고 호칭한다. 그리고 ‘술이나 잠에 몹시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몸을 못 가누는 모양’을 곤드레만드레 혹은 곤드레라고 얘기한다.


지구촌에 존재하는 술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일 게다. 하지만 이들을 크게 갈래지을 때 양조주(막걸리, 약주, 청주, 맥주, 포도주), 증류주(위스키, 보드카. 럼, 브랜디, 데킬라), 혼성주(진, 인삼주, 매실주, 오가피주, 각종 칵테일 주)로 가름할 수 있다. 그런데 술의 성격에 따라 ‘축하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함께 마시는 술’을 축하주 또는 축주(祝酒)라고 하며, ‘벌로 먹이는 술’이 벌주, 벌술, 벌배, 벌작(罰爵)이다. 그런가 하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주는 술’이 하사주(下賜酒)이다. 또한 ‘매우 독한 술 또는 독약을 탄 술’을 독주(毒酒) 혹은 독배(毒杯)라고 한다. 한편 술을 혼자 마시는가 혹은 누군가와 함께 마시는가에 따라 이렇게 구분하고 있다. 요즘 신조어인 “혼술”처럼 ‘따라 주거나 권하는 상대가 없이 혼자서 술을 마심’을 독배(獨杯)나 독작(獨酌) 혹은 자작(自酌)이라고 하고, ‘마주 대하고 술을 마심’을 대작(對酌)이나 대음(對飮)이라고 한다. 또한 폭음(暴飮)은 ‘술을 한꺼번에 많이 마심’을 뜻하고, 폭주(暴酒)는 ‘가리지 않고 아무것이나 마구 마심’을 의미한다. 아울러 제조 방법에 따라 섞어서 마시는 폭탄주(爆彈酒)도 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술에 대한 예찬이나 경계했던 예는 부지기수이리라. 고대 중국에서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주인(酒人)”이라 부르며 삼등구품(三等九品)으로 그 품격을 갈래졌다. 먼저 상등(上等), 중등(中等), 하등(下等)의 삼등(三等)으로 나뉜다. 그리고 삼등을 각각 3가지로 구분해서 구품으로 나눴다. 결국 가장 상위인 상등은 주성(酒聖), 주선(酒仙), 주현(酒賢) 등 셋으로 세분하고 있다. 한편 가운데인 중등을 다시 주치(酒痴), 주광(酒狂), 주황(酒荒)등 셋으로, 가장 아래인 하등을 주도(酒徒), 주풍(酒瘋), 주적(酒賊) 등으로 세분하여 구품(九品)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청록파(靑鹿派) 시인이었던 조지훈은 바둑처럼 ‘술을 격을 구분해 급(級)과 단(段)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초급부터 9급(학주(學酒), 반주(飯酒), 수주(睡酒), 색주(色酒), 상주(商酒), 은주(隱酒), 민주(憫酒), 외주(畏), 불주(不酒))까지로 구분했다. 그리고 단은 초단부터 구단(애주(愛酒), 기주(嗜酒), 탐주(耽酒), 폭주(暴酒), 장주(長酒), 석주(昔酒), 악주(樂酒), 관주(觀酒), 폐주(廢酒))로 나누어 해학이 넘쳐나는 해설을 달아 뭇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과연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할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에 대한 예찬은 수없이 등장하고 있다. 조선조 선조 때  예조판서를 지낸 송강 정철이 읊조렸던 장진주사(將進酒辭)가 그 하나의 예이리라. 그렇다고 무절제하고 무진장 마시도록 방치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옛날 중국의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생전에 옆에 두고 과욕을 경계하려 사용했던 “의기(儀器)”나 조선시대 도공(陶工) 우명옥(禹明玉)이 만들었던 “계영배(戒盈杯)”가 함축하듯이 절주를 권하는 문화가 지배했다. 그런 문화의 영향일까.

 

우리 사회에서는 술을 마시는데 이렇게 일러 왔다. 원래 짝수(偶數)를 기피하는 관습 때문에 술을 마셨다하면 홀수로 마시는 게 기본 법도였다. 예전부터 술자리에서 함께 한 사람 모두에게 한 잔씩 돌아가는 것을 순배(巡杯)라고 했다. 술자리에서 동참한 이들에게 골고루 한 순배가 돌고 두 순배를 거쳐 세 분배가 돌면 “훈훈하다”고 했단다. 그리고  이어서 네 순배가 돌고 다섯 분배가 돌고나면 “기분이 좋다”고 여겼단다. 그리고 여섯 순배를 거쳐 일곱 순배(결국 7잔)를 마시고 나면 “넉넉하다”면서 더 이상 마시지 말라는 금도가 지배했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술을 권하는 예절엔 어떤 원칙이 통용되었을까. 술자리에 함께한 이에게 최소한 세 차례를 정중하게 권하는 게  도리라는 얘기이다. 첫 순배 즉 첫 잔을 상대방에게 권하는 행위를 예청(禮請)이라고 하며 그 청을 사양하는 것을 예사(禮辭)라고 한다. 그렇게  첫 순배에서 마시지 않겠다고 내쳤더라도 두 번째 순배(두 번째 잔)가 돌아갈 때도 상대방에게 정중하게 술을 들라고 청하는 것을 고청(固請)이라고 하고, 그 두 번째 잔도 거부하는 것을 고사(固辭)라고 한다. 한편 세 번째 순배(세 번째 잔)가 돌 때도 앞서 두 번째 순배까지 사양한 사람에게 다시 술을 들라고 청하는 것을 강청(强請)이라 하고, 세 번째 순배까지 사양하는 것을 종사(終辭)라고 한다. 이처럼 세 번째 순배까지 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내쳤던 경우는 그 다음 순배부터는 권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도 결례가  되거나 주도에 어긋나는 게 아니라는 귀띔이다.


적당히 마시면 보약 같아 나무랄 데 없는 게 술이다. 하지만 무슨 원수라도 지은 것처럼 게걸스럽게 과음하고  취해서 ‘술먹은 개’같은 언행이나 주취폭력(酒醉暴力) 따위를 저질러 놓고 심신미약(心身微弱)을 들먹이며 법적 책임을 벗어나려 이죽거리는 책상물림이나 언필칭 사회지도자 나부랭이들의 한심한 꼴은 언제나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출까. 적당히 마시는 술은 사람 사이의 유대를 돈독하게 만들어 주고 가슴을 뜨겁게 한다. 오래 전 달기(妲己)라는 영화에서 나왔던 대화 한 토막이다. 술을 나눌 때 첫째 잔은 “인사(人事) 잔”이고, 둘째 잔은 “사랑의 잔”이며, 셋째 잔은 “고백의 잔”이라던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돈다.


한올문학, 2022년 05•06, Vol. 149•150, 2022년 6월 25일
(2022년 4월 3일 일요일)



 

댓글목록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교수님 작품을 읽자니, 술은 하나의 학문이요, 철학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도 술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역사가 많은지라
차분하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