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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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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618회 작성일 22-07-30 18:17

본문

친구가 없다

윤복순

 

어쩌다 TV에서 자연인을 본다. 그때마다 나도 자연인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 그뿐이랴. 섬에 사는 친구도 있으면 좋겠고, 외국에 사는 친구도 있으면 좋겠다. 아무리 이리저리 연을 대봐도 없다. 만만한 게 남편이어서 당신은 자연인 친구도 없어?” 남편 탓을 한다.

그런 특수한 상황이 아닌 보통친구도 없다. 통화할, 찾아갈, 못 견디게 보고 싶은, 궁금한 친구도 없다. 참 멋없게 살고 있다.

친구 없음을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친구의 깜이 되지 못하니까 친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미있는 사람도 아니고, 만나면 즐겁고 또 만나고 싶은 사람도 아니다. 긍정의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위로받고 힐링되는 사람도 아니다. 누가 나와 친구하고 싶겠는가. 친구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남편이 포도밭 일을 하루 쉬겠단다. 지리산을 가고 싶은데 비가 예보돼 있다. 포도농사 시작하기 전에 가려다 못 갔다. 화엄사에서 연기암 금정암을 거쳐 다시 화엄사로 오는 치유의 숲길을 걷고 싶었다. 여름 녹음이 무성할 때 걷는 것이 더 치유의 숲이 될 것 같다며 에둘러 아껴둔 곳이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집에서 보내기는 싫다. 6월 쉬는 날엔 아들한테 갔다. 손자 손녀도 보고 바람도 쐴 겸 서울 나들이를 했다. 성북동을, 길상사를 구경하고 왔기에 이번엔 딸을 만나러 갈까도 생각했다. 딸은 애들이 다섯이나 되는데 비가 와서 나가지 못하면 집에서 북새통 떨 생각을 하니 그것도 아니다.

비 오는 날 걷는 것을 좋아한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좋고, 차분해지는 마음도 좋고, 사람들이 없는 것도 좋다. 특히 비를 맞고 있는 연잎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넓은 연잎에 빗물이 고이면 빗물이 빙글빙글 연잎을 움직여 물을 쏟아낸다. 나도 내 몫이 다 차면 알아서 비워냈을까.

친구가 없는 나는 쉬는 날인데 갈 곳이 없다. 남편이 계룡에 가자고 한다. 그곳은 그의 마지막 근무지이고 동기, 후배, 동료 등 퇴직 후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눌러앉은 몇이 살고 있다. 계룡에 갈 때는 완행기차를 탄다. 기차 탈 맛에 기분이 하늘로, 하늘로 올라간다.

차창 밖으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녹색 벼들이 끝도, 끝도 없이 펼쳐진다. 마음이 태평양 같이 넓어지고 입 꼬리가 올라간다. “좋다~ 좋다~ 참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1시간이 아쉬워 서울까지 쭉 갔으면 좋겠다. 녹색바다에 몸을 담근 상상을 하며 아마도 천당이 이럴 거라 짐작을 해봤다.

계룡역에 도착하니 동기가 큰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두계천을 걷자고 한다. 요즘은 지자체에서 얼마나 잘 가꾸어 놓았는지 어디를 가나 다 관광지다. 그의 가족은 무릎 수술을 했고 발가락이 겹쳐 많이 걷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두말없이 걷자고 나선다.

남자 둘은 그들의 속도로 걷고 그녀와 나는 최대한 느리게 걸었다. 논에 벼도 강둑의 풀과 꽃도 강물에 떨어지는 빗방울 무늬도 예쁘지 않은 것이 없다. 심지어 나까지 예쁘다. 그녀는 내가 아니었으면 집에서 그냥저냥 보냈을 텐데 빗속을 걷는 여인을 만들어줘서, 이런 분위기를 즐기게 해줘서, 나이를 잊었다며 참 좋다고 한다. 날이 궂어 그들이 귀찮아 할까봐 걱정을 했는데.

오후엔 후배도 왔다. 향적산 무상사에 갔다. 그곳에 치유의 숲길이 있다. 잘 정돈돼 있고 비가 와 계곡물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한결 분위기를 살린다. 알파음을 들으며 걷는 숲길은 치유의 숲길이 맞다. 지리산 대신 계룡산이지만 친구들이 있지 않은가. 내려올 때는 데크로 만든 스카이웨이 길을 걸었다. 내려다보는 숲은 더 풍요롭고 더 아름답다. 온 산은 녹색이고 산허리엔 구름이 걸려있고 마치 선계(仙界)에 있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약사문인방에 맥문동이 흰 꽃을 피웠다고 사진이 올라왔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 연보라색 꽃이 핀지 오래되어 색이 바래 그런 것 아닐까 내 마음대로 생각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소엽맥문동은 흰색과 연보라색 꽃이 핀다고 한다. 무상사 올라가는 길에서 흰 꽃 맥문동을 보았다.

오전 두계천을 걸을 땐 레드클로버를 보았다. 붉은 토끼풀은 여성들의 갱년기치료제로 쓰여 그 제품이 나와 있다. 유럽이 원산지라고 해서 외국에 나갈 때면 혹시라도 볼 수 있을까 관심을 가졌던 꽃이다. 오늘 두계천에서 처음 보았다. 비 오는 날의 추억하나를 추가하고 저녁까지 먹고 왔다.

월요일 약국 전화를 받으니 조금은 나이가 있는 조금은 촌스러운 목소리가 윤복순을 찾는다. 이름으로 나를 찾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초등학교 동창이란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기억도 별로 없고 특별한 추억거리도 없다. 어느 해 졸업 50주년이라고 해 동창회가 갔다. 조금 늦어서 식당 주인이 안내해 줬다. 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있어 잘 못 들어간 줄 알고 돌아 나왔다. 그 방이 맞다 했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동창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분위기가 낯설어 그 뒤로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전화한 동창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없다. 그녀는 내가 보고 싶었다고, 우리 엄마가 솜리(익산의 옛 이름)를 갔다 올 때면 자기네 집 앞으로 지나가곤 했다며 우리 엄마 안부까지 묻는다. 그때는 차가 없어 8Km가 넘는 길을 걸어 다녔었다.

그녀는 나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수소문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열정이 부럽다. 나는 친구를 찾기 위해 노력해 본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나를 친구하면 좋다고, 돋보이게 하기 위해 뭐를 해 본 적도 없다. 그 흔한 종교생활도 하지 않고, 동창회에도 나가지 않으니 어떻게 친구가 있겠는가. 참으로 밍밍하고 존재감 없이 살고 있다.

친구는 또 다른 나의 분신일 텐데 마음을 닫아 놓은 채 친구가 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친구가 없다고 한탄만 하고 있다.

 

2022.7.25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그러고 보니 저도 친구들에게 늘 피동적으로 응대했지 싶습니다. 그럼에도 와톨이로 배척하지 않고 이런저런 모임에 꾸준히 초대해 주는 여러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언제 제대로 한 번 해야 할까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가 지날수록 친구 숫자가 하나둘씩 줄어드네요. 대신에 저승으로 떠난 경우가 시나브로 늘어나고. 아직 80이 되려면 두해나 남아 있는데...... 그래저래 심란한 마음에 오늘 토요일부터 내일까지는 다양한 친구들에게 전화 한 통화라도 나눠봐야 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나이 들수록 친구가 소중하다지만 몸의 움직임이 덜해지면서 친구 찾아 다니기도 힘들어져요.
찾아오는 사람은 반갑게 맞이하지만 찾아다닐 수 없으니 외롭지요.
저도 가끔 만나고 싶은 친구나 후배, 선배를 생각하지만 행동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외롭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