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출판사

허전했던 아내의 생일 > 자유창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고객센터
상담시간 : 오전 09:00 ~ 오후: 05:3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02.2612-5552
FAX:02.2688.5568

b3fd9ab59d168c7d4b7f2025f8741ecc_1583557247_0788.jpg 

수필 허전했던 아내의 생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911회 작성일 22-07-26 11:26

본문

허전했던 아내의 생일


아내의 일흔세 번째 생일(음력 5월 23일)이다. 알량한 내 머리로 기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이제까지 거의 잊고 지나쳤던 전과에서 조금이라도 가볍고 싶어서 서재와 거실을 비롯해서 식탁 등 세 군데에 놓여있던 탁상달력(desk calender)에 꼼꼼하게 적바림해 둔 덕이다. 그런데도 음식을 장만할 수 없어 손 놓고 멍하니 지켜보다가 축하는 고사하고 미역국도 없이 어정쩡하게 보내 무척 아쉽다. 게다가 그 흔한 축하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생일축가를 부르지도 않은 채 모든 걸 생략했다. 그럼에도 아침식사를 식구 모두가 걸렀고 저녁은 대용식으로 때워 하루 종일 부엌일에서 해방되어 행복했다는 아내의 말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당최 헷갈린다.


원래는 간단히 생일상을 마련하고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며 축가라도 부르려 했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당사자가 모두 준비해야 하는 관계로 넌지시 아내의 의향을 떠봤다. 나이가 듦 때문일까. 만사가 귀찮고 번거로우니 모든 걸 과감하게 생략하고 생일날만이라도 부엌일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그럴법하다는 이유에서 그것도 한 가지 대안이라고 여겨져 솔깃했다. 게다가 아내의 생일날이 중학교 2학년인 손주가 학교에서 실시하는 1학기 2차고사의 마지막 날이라서 공연히 중뿔나게 설쳤다가는 애꿎은 덤터기를 옴팡 뒤집어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외면할 수 없어 잠자코 아내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스물일곱의 끝자락인 동짓달에 혼인했으니 벌써 마흔여섯 해를 함께한 세월이었다. 서울에서 신혼 둥지를 틀고 두 아이를 얻었다가 내 일터를 핑계로 마산으로 옮겨온 지 마흔한 해째이다. 서울에서 자라며 학업을 마치고 그대로 뿌리 내리기를 바랐던 아내였다. 그런 소박한 소망도 허용되지 않아 이주함으로써 결국 아내는 마산댁으로 살았다. 돌이켜 보니 친구와 부모 형제 곁을 떠나 머나먼 남녘에서 타향살이를 시킨 게 미안하지만 중언부언하지 않으련다.


영겁의 세월에 비하면 우리 부부가 함께 해온 세월은 촌음이나 찰나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그처럼 짧기만 했던 지난날 결단코 꽃길이나 순풍에 돛을 달고 순항하던 꿈같은 달콤함만 누렸던 게 아니었다. 부덕한 나를 만난 연(緣) 때문에 당하는 모진 시련이었을까. 가정을 살뜰히 꾸리며 두 아들을 낳아 길렀을 뿐 아니라 여섯 남매 중에 외아들인 집에 들어와서 시부모도 잘 모셨었다. 아울러 시누이들과 피를 나눈 형제 이상으로 지냈음에도 결코 가볍지 않은 사고나 병마의 고초를 당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게다가 초로에 접어들며 생후 달포 남짓한 손주를 양육하기 시작해 현재 열다섯 해째에 이르는 희생은 현재 진행형이다.


삶을 동행하며 또 다른 관점에서 고마움이다. 부자나 고관대작의 후예가 아니기에 신혼시절부터 여태까지 별로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터무니없이 영재(贏財)*를 탐하거나 현실을 탓하지도 않았다. 빠듯한 수입을 열심히 이리저리 쪼개고 여퉜다. 몸에 밴 알뜰함 덕에 신혼 3년차에 신 개발지였던 서울의 강남인 도곡동에 작은 아파트도 자력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자기의 전공을 미련 없이 접은 채 살림에 전념하며 지금에 이르도록 이끈 주인공이 바로 아내이다. 그런 현명함이나 희생 또한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고마움이다.

 

매년 아내의 생일엔 자매 중에서 다섯째와 여섯째 여동생이 각각 약간의 촌지를 내 통장으로 보내온다. 아직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올해도 마찬가지이리라. 적은 액수이지만 인출해서 아내에게 고스란히 건넬 참이다. 게다가 올해엔 아내의 동생 아들딸이 각각 휴대전화로 케이크와 화과자(和菓子 : わかし)를 보냈다는 메시지를 받았는데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나도 미안한 마음에 몇 푼 되지 않지만 현금 봉투를 마련해 며칠 전에 슬며시 전했다. 이렇게 아내의 생일을 마무리했음에도 마음은 마냥 허허롭고 쓸쓸해 지동지서하고 있다.


어울리지 않게 어린 손주가 족발을 엄청 즐겨 매주 금요일마다 시키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한데, 오늘은 우연하게 아내의 생일과 손주가 학교의 시험이 끝나는 날이 겹치는 금요일이라서 평소처럼 저녁식사에 맞춰 족발을 시켰다. 여기에다가 이웃에서 선물로 준 햇감자와 제자가 지역 특산물을 주문해 보내준 단호박을 쪄놓았던 것을 곁들이는 것으로 식사에 대신했다. 손주와 아내 그리고 내가 맛있게 저녁으로 먹었으니 불만은 없었다. 그럴지라도 생일날 만찬으로 기껏해야 족발과 감자와 단호박 따위로 해결한 게 마음에 걸릴 뿐 아니라 융통성 없는 단면을 온새미로 드러낸 것 같아 찜찜하기 짝이 없다.


=======


* 영재(贏財) : 남의 재산, 남의 돈


사색의 숲속을 거닐다, 한국수필가연대 80인 대표수필선, 제26집, 2022년 6월 15일
(2021년 7월 2일(음력 5월 23일) 금요일)

댓글목록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어! 사모님 생신이 울 시모 생신과 같아요.^^
시집 오니 시어머님은 당신 생신을 잊고 사시더군요.
백부님 생신과 맞물려 농주 담가 전주 뜨고 손두부 해서 시아버님은 백부님 생신 챙겨드리러 가시더군요.
왜 어머님 생신에 아버님은 큰아버님 생신 차려드리러 가느냐고 했더니
'여자가 생일 같은 게 있나?'하시며 쓸쓸히 웃으시더군요.
그 다음부터 생신상 거하게 차려 드렸지요.ㅋ
정작 저도 제 생일 잊고 살았어요. 지금은 아이들이 챙겨줍니다.
남편 사라이 최고겠지요.^^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교수님 생신 때 축하 인사 한 번 못 드린 거 같아
송구스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