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출판사

언품(言品)을 되새김 > 자유창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고객센터
상담시간 : 오전 09:00 ~ 오후: 05:3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02.2612-5552
FAX:02.2688.5568

b3fd9ab59d168c7d4b7f2025f8741ecc_1583557247_0788.jpg 

수필 언품(言品)을 되새김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803회 작성일 22-06-14 07:36

본문

언품(言品)을 되새김


말(言)의 품격을 되새긴다. 사상이나 생각을 혀(舌)를 통해 소리로 나타내면 말이 되고, 손을 빌어 문자로 풀어내면 글이다. 따라서 말과 글은 그를 부리는 사람의 철학이나 인품의 진면목을 더덜이 없이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관점에서 가슴깊이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 내면세계의 또 다른 모습이며 적나라한 자화상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칫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치명적인 화(禍)를 초래할 위험천만한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진솔함과 절제된 마음을 담은 미려(美麗)하고 정갈한 말이나 글은 개인을 변화시키거나 세상을 바꾸는 물길을 돌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대의나 숭고한 이상을 담은 한 마디 말이나 심금을 울리는 절절한 글은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위대한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명암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피하기 어려운 화의 단초가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간과하다가 파멸이나 패가망신에 이르기도 한다.


“역사를 뒤 바꿀 수 있는 말실수로 세 치 혀(舌) 때문에 발생한 치명적인 화”를 설화(舌禍), “발표한 글이 법률적 혹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야기 시켜 제재(制裁) 받는 사건”을 필화(筆禍)라고 한다. 이들 둘은 말과 글로 표현되는 것이 다를 따름이다. 그러나 그 근원은 각자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다는 맥락에서 결국 뿌리는 같고 갈래만 다를 뿐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이들의 양면성을 꿰뚫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는 뜻에서 “사람의 입이 화의 근원이라는 뜻(입은 잘 놀리면 복문이 되지만, 잘못 놀리면 화의 문이 된다)”으로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이라는 경구(警句)로 일갈 했으리라. 선현들의 참뜻이 곧이곧대로 올곧게 전해지는 말이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든가 “말은 마음의 소리”라는 뜻의 언위심성(言爲心聲)이 보편적인 상식으로 통용되며 공감을 불러일으킨 게 아닐까 싶다.


예로부터 말을 잘못한 설화나 함부로 내갈겨쓴 되지 못한 글 때문에 발생한 필화로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거나 심지어는 멸문지화를 당했던 예는 헤아릴 수 없다.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鄭道傳)이 ‘제1차 왕자의 난’에 내뱉은 말실수로 태종인 이방원에게 당했던 죽임, 한편 세조 때 남이(南怡) 장군이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고 지었던 북정가(北征歌) 내용 중에 “미평국(未平國)”을 반대파였던 유자광(柳子光)이 “미득국(未得國)”으로 변조해 밀고함으로써 역적으로 몰려 통한의 죽음을 당한 필화, 또한 암울했던 유신독재 시절 김지하 시인이 “오적(五賊)”을 사상계에 발표했다가 감옥살이를 했던 경우는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생생한 필화의 본보기 같은 예이다.


일찍이 설화를 경계하라고 일깨웠던 몇 가지이다. 먼저 전당서(全唐書) 설시편(舌詩篇)에서 ‘입(口)은 화를 부르는 문이다’라는 뜻의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이라고 이르고 있다. 한편 불교경전인 법구경(法句經)에서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함부로 입을 놀리거나 상대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지말라........”라고 조언하고 있다. 아울러 명심보감의 언어편(言語篇)에서 전한(前漢) 때 사람 엄준(嚴遵) 즉 군평(君平)이 이르기를 “입과 혀는 화와 근심의 근본이며,  몸을 망하게 하는 도끼와 같은 것이니 말을 삼가야 할지니라(口舌者 禍患之門 滅身之斧也)”라고 천명하고 있다.


자신의 인품이나 사상과 철학을 비롯한 가치관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솔한 참모습이기 때문에 말과 글은 신중하게 여겨야 할 대상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 사회의 지도자라고 거들먹거리는 인사나 정치꾼들이 배설하듯이 마구 내뱉은 말에 대한 말갈망, 시궁창에 오물 쏟아 내듯이 되는대로 갈겨썼던 글에 대한 갈망을 제대로 못해 허둥대는 추한 모습은 꼴불견으로 측은지심이 들어 안쓰러운 경우가 숱하게 많다. 그런 부류들을 상전처럼 모셔야 하는 현실이 떫고 싫어 다른 행성으로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드물지 않다.


명백한 증거가 남지 않는 옛날 같으면 양심에 반할지라도 시비 거리가 된 말을 했거나 글을 썼던 적이 없다고 부정하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하기야 오늘날에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우기는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한 이들이 허다하다. 그런 이들은 후안무치하게 잡아떼다가 각종 미디어나 SNS에 남겨진 빼도 박도 못할 동영상에 덜미가 잡히면 왜곡 되었다거나 악마의 편집을 했다며 뻔뻔하게 허튼소리를 해댄다. 그렇게 표리부동한 민낯이 고이 드러남에도 기를 쓰면서 회피하려 드는 책상물림이나 엉터리 지도층 인사들과 같은 세상에 산다는 게 서글프고 참담하기도 하다. 이제는 내남없이 자기 행동이나 말과 글에 대해 품격이 넘쳐나는 사회로 승화를 위해 숙고하고 숙고하는 문화가 튼실하게 뿌리내렸으면 좋으련만 과연 바람처럼 변할까. 진정한 말의 품격인 언품이나 격조 높은 성품에서 우러난 글이 변죽만 울려도 고고한 빛을 발해 공명(共鳴)을 일으킨다는 견지에서 간원하는 바람이다. 그런 고결한 품격의 세상에 산다면 나의 격(格)도 덩달아 고매해 질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탐욕 또한 버려야 할 헛된 몽상일 터인데.


수필과 비평, 2022년 6월호(통권 248호), 2022년 6월 1일
(2022년 3월 7일 월요일)


 

댓글목록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선생님, 공감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SNS에 팔만대장경을 남겨 표리부동한  처사에 치도곤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말의 신중함보다 적어도 표리부동은 하지 말아야 사람인 게지요.  제가 제일 경계하고 경멸하는 사람도 표리부동한 사람입니다.
선생님, 잘 계시는지요? 장마철이라 기분도 눅눅해지지 않게  잘 지내야 하는데요.  선생님께서도 늘 건강 잘 보살피시길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