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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5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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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3건 조회 620회 작성일 22-06-0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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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농부

윤복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낮의 길이도 길어 야외활동 하기 좋다. 여행은 말해 뭐하리. 온 산야는 꽃이 피고 황량했던 자연은 녹색을 더해 가며 꽃보다 예쁜 신록잔치를 벌인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가족끼리 만날 날도 많다. 올해는 코로나19도 이겨내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없어져 더욱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농부에겐 그림의 떡이다. 일 년 중 제일 바쁜 때가 5월이다. 매주 일요일 마다 밭에 간다. 포도밭의 풀 뽑기 곁순 및 넝쿨 따기가 내 일이다. 물론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오지만 바쁜 농사철 부지깽이도 돕는다는데, 남편은 눈코 뜰 새 없는데 좋은 계절이라고 나 혼자 여행을 즐길 수는 없다. 의리가 있지 않은가.

바쁜 줄 알고 태양광발전 밭에도 풀이 숲을 이뤄 그림자를 만드니 그것도 깎아줘야 했다. 농번기 때는 우리만 바쁜 게 아니라 모든 농사가 다 바빠 일손 구하기도 쉽지 않다. 하는 수 없이 아들딸을 불렀다. 예초기까지 가지고 와 사위가 한 몫 했다. 사위는 키라도 크지 아들은 애기 같다. 다행히 추석 때 벌초해 본 경험으로 아들 사위가 예초기 두 대로 책임지고 깎아 줬다.

태양광은 농작물이 아니니 풀 약을 치면 어떨까 의견을 냈는데 남편 왈 풀이 없으면 많은 비가 올 시 흙이 쓸려 내려가고 한 여름에는 맨 땅의 복사열로 태양광 발전량이 떨어진다고 한다. 세상사는 쉬운 게 없다.

애들이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몸살 나지 않았니? 너희들 덕분에 큰 일 하나 끝냈다. 고맙고 재미있었다. 힘들겠지만 웃으면서 근무 잘하고. 힘들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딸이 몸은 좀 쑤시지만 몸살 나진 않았어요. 이번 주도 열심히 살아볼게요. 사위도 온몸이 쑤시지만 익숙합니다. 괜찮아요. 아들은 예초기 좀 메고 있었다고 안 아픈 곳이 없어요. 손이 덜덜 떨려 젓가락질도 어렵네요. 그 동안 매형 못 도와 드려 죄송해요, 며느리는 아버님 어머님 건강 조심하셔요. 답 글을 보내왔다.

포도는 순이 나올 때 포도송이를 달고 나온다. 잎과 넝쿨손은 하루가 다르게 크고 특히 넝쿨손이 더 잘 자란다. 따주고 뒤돌아서면 어느새 또 넝쿨손이 보인다. 포도 줄기가 마구잡이로 나기 때문에 양쪽으로 가닥을 잡아 묶어줘야 한다. 자라는 속도가 달라 3단까지 올려줘야 하는데 자라는 상태에 따라 올려야 하니 수백 번을 돌아다녀야 한다. 한 마디 한 마디 자랄 때마다 곁순 따기는 계속되고 포도 출하 전까지 이어진다.

아직은 포도 줄기가 여려서 고리에 끼기 어려운 것은 끈으로 묶어 자리를 잡아 주었다가 상황을 봐가면서 고리에 끼고 끈을 풀어준다. 그 일도 만만치 않다. 그 사이 포도 알이 자란다. 한 송이에 수십 아니 백 알도 넘게 달고 있다. 적당히 남겨두고 잘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도 잘고 햇빛을 골고루 받지 못해 당도도 떨어져 상품으로 가치가 없다.

이것을 나비 만들기라고 한다. 이때쯤 포도 꽃이 피고 수정을 해 줘야 한다. 씨 없는 포도를 만들기 위해 호르몬 처리를 하는데 두 번 해 준다. 한 번 하고 나비 날개 하나를 떼어낸다. 꽃 피는 것도 송이마다 달라 일률적으로 쭉 할 수가 없다. 온 밭을 돌아다니면서 꽃 핀 상태를 봐 가면서 해야 하니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을 뿐 아니라 빼먹는 것도 부지기수다.

두 번째 호르몬 처리가 대개 5월 말쯤 끝난다. 그 뒤로 알 솎기다. 호르몬 처리로 잠깐 손을 못 쓴 사이 넝쿨손과 곁순은 마구 자라 귀신머리가 된다. 호르몬 처리가 끝나면 포도 알도 하루가 다르게 커서 알 솎기를 서둘러야 한다. 알이 꽉 차면 가위가 들어가지 않아 솎아내기 힘들 뿐 아니라 알에 상처를 입혀 예쁜 포도송이가 될 수 없다. 일꾼도 두 배로 들어간다. 농사는 때가 있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나는 나비 만들기 호르몬 처리 알 솎기 등은 할 줄 몰라 곁순과 넝쿨손울 딴다. 줄기가 어릴 때는 할 만 한데 3단까지 올라가면 내 키가 작아 깨금발을 하고 고개를 뒤로 쳐들고 해야 하니 어깨와 목이 많이 아프다. 플라스틱 박스를 끌고 다니며 그 위에 올라가서 따 준다.

물론 일꾼을 더 얻으면 되겠지만 요즘은 밥을 굶으면 굶었지 땡볕에 나와 일 할 사람은 없다. 우리 밭에 일하러 오는 사람들도 다 칠십이 넘은 아주머니들이다. 그들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이 몸에 배고 어려운 시절을 살아봤고 농사일을 할 줄 알기에 하러 온다. 또 돈을 벌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고. 나도 옛날 사람이라 일하는 게 무섭지는 않다.

나는 일 욕심이 많아 새참도 먹지 않고 한다. 일을 하기로 맘먹었으면 흐지부지 하긴 싫다. 물론 일요일 하루만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주머니들은 매일 하니까 체력 안배를 해야겠지만. 점심을 먹고 나면 기진맥진이다. 관리사에서 종이박스를 깔고 누워 곯아떨어진다. 한두 시간 자고 나서 또 미친 듯이 일을 한다. 힘이 들면 각시풀 노래를 부른다. 각시방에 불을 켜라, 신랑방에 불을 켜라. 각시 코가 이쁘냐 음---- 신랑코가 이쁘냐 음~~~`~ 끙끙 앓는 소리를 포도가 들으면 안 좋을 것 같아서 노래를 부른다.

모든 농작물은 주인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포도 한 송이가 상품으로 될 때까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손이 가야 한다. 농사를 지어 보니 가격이 비싸다 조금 깎아 달라 이런 말이 쏙 들어갔다. 사 먹는 것이 제일 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다 약국에서 마진이 있는 약을 사갈 때면 쉽게 돈을 번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가끔 엉성해지고 바람이 들려는 마음을 일요일 더위 속에 일을 하며 다잡아 놓는다.

밭까지 2~30분 걸리는데 그 길에 아카시 이팝나무 등의 꽃이 지고 나니 금계국이 만발이다. 양쪽 논엔 모내기를 해서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계절의 여왕 5, 여행 한 번 못 가는 아쉬움을 포도 자라는 걸 보는 재미로 달래고 있다. 농부 다 됐다.

 

2022.5.30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신록의 계절 5월에 펼쳐지는 포도밭 일상을 함게 체험하는 마음으로 감상했습니다. 농사철이 되면 예나 지금이나 일손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일터인데 사람들이 힘든 일은 피하려 들고 농촌은 고령화되니 큰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친구 하나는 8순이 다 되어가는 부부가 어렵게 과수원을 관리하며 끙끙 앓더군요. 그레도 선생님 댁은 아들 내외와 딸 내외라도 이따금 부를 수 있으니 심적으로나마 여유가 있지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족애가 무척 부럽습니다.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평생을 시어른 곁에서 촌부로 살아온 저는 아무리 힘들어도 애들보고 오라가란 말 않해요. 오라가라 하시는 어른들에게 질려서요. ㅋ애들이 알아서 도와주면 고맙다하고 차비 명목으로 일당 쳐 줍니다. 시댁 농사까지 도맡아 하면서 넘 힘들었거든요. 이삼 년 전부터 농사 대폭 줄였어요. 처음에는 먹고 살 걱정이 되더군요. 모아둔 돈도 없고 애들에게 손 벌릴 형편도 아니고, 두 애 역시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두 어른까지 생존하시는데 농사 포기하고 뭘 먹고 사나 싶더이다.
 그러나 두 애들 뒷바라지 끝내고 큰 빚덩이 갚고 나니 후련하더군요. 빚 없으면 산다. 그 모토가 도움 되더군요. 국민연금과 노령연금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텃밭 농사 지어 먹을거리 해결하고 씀씀이 줄이면 살아지게 되는 곳이 농촌 삶이라 생각되더군요. 실비보험도 안 들어놔서 병원비가 걱정스럽긴 해요.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알솎기가 끝나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바람 좀 쐬러가고 싶은데 내일은 시아버지 제사네요.
방전되기 일보 전인데.
다음 주보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니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