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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계구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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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4-04-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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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구우후


우연히 인터넷에서 고사성어 ‘계구우후(鷄口牛後)’를 검색하다가 혼란에 빠졌다. 이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서 한(韓)나라 선혜왕(宣惠王)과 소진(蘇秦)의 대화중에서 나온 격언이다. 이는 ‘영위계구(寧爲鷄口) 물위우후(勿爲牛後)’의 줄임말이다. 여기서 문제의 발단은 뒷부분인 ‘물위우후(勿爲牛後)’ 중에서 ‘후(後)’의 해석이었다. 한학(漢學)에 대한 지식이 짧고 얇아 발생한 해프닝이었으면 좋으련만 내 깜냥에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에 올린 글을 샅샅이 살펴보니 ‘영위계구(寧爲鷄口)’의 해석에는 모두가 “닭의 부리가 될지라도”라는 범주로 해석해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한데 뒷부분에 나오는 ‘물위우후(勿爲牛後)’의 해석에서 거의 모든 글에서 “소의 꼬리가 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검색했던 수많은 글 중에 단 한 군데*에서는 여타의 다른 경우와 다르게 “소의 항문은 되지 말라”로 해석해 놓았었다. 두 해석에서 차이점은 대부분은 한자 ‘뒤 후(後)자’를 ‘꼬리(尾)’로 해석했는데 비해서 단 한 군데에서는 ‘항문(肛門)’으로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잘 모르는 입장에서 볼 때 같은 ‘후(後)자’를 ‘꼬리’와 ‘항문’으로 다르게 옮김은 어느 하나가 잘 못 되었지 싶어 여기저기 자료 및 옥편(玉篇)을 열심히 뒤져봐도 속 시원한 답을 찾지 못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앞부분의 ‘영위계구(寧爲鷄口)’에서 ‘부리(口)가 먹이를 먹는 긍정적인 기능’과 격을 맞추려면 뒷부분의 ‘물위우후(勿爲牛後)’에서 ‘후(後)는 비록 클지라도 하찮은 배설 기능을 담당’하는 ‘항문’으로 해석함이 타당하지 싶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설명에서처럼 ‘후(後)’가 ‘꼬리’를 뜻한다면 그 글자 대신에 한자 ‘꼬리 미(尾)자’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왜냐하면 사자성어 ‘용두사미(龍頭蛇尾)’에서 ‘뱀의 꼬리’를 지칭할 때 ‘꼬리 미(尾)자’를 쓴 것처럼 말이다.


‘후(後)’를 ‘꼬리’가 아닌 ‘항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 근거는 어디에 연유했을까. 고대 중국 사기(史記)의 대표적인 주석서(注釋書)로 배인(裵駰)의 사기집해(史記集解), 사마정(司馬貞)의 사기색은(史記索隱), 장수절(張守節)의 사기정의(史記正義) 등의 사기삼가주(史記三家注)가 있다. 그런데 이중에서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 “닭의 부리는 비록 작을지라도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소의 항문은 비록 클지라도 똥(糞)을 배설한다”고 이르고 있다는 전언이다. 또한 최근에 우리 글로 번역된 사기열전(史記列傳)*의 소진열전(蘇秦列傳)에서 사기3가주 중에 하나인 사기정의에서 “소의 항문은 비록 크지만 똥(糞)을 배설한다”라고 밝힌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한편 나무위키(namu wiki)에 글을 작성한 이는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 사람 99.99%가 ‘우후(牛後)’를 소의 ‘꼬리’로 잘못 알고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따라서 소의 ‘항문’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견해를 강력히 펴고 있다.


이 고사성어의 유래 요약이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낙양(洛陽) 출신 소진(蘇秦)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섯 나라(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礎))에서 ‘진(秦)나라의 동진(東進)을 막기 위한 계책’인 합종책(合從策)을 설파하고 다녔었다. 그러다가 한나라 선혜왕(宣惠王)과 대담 과정에서 나왔던 말이라고 전해진다.


선혜왕과 소진의 대화 내용은 대충 이렇지 싶다. “전하! 비록 작지만 성군 밑에 충성스런 강군을 보유한 까닭에 여섯 나라가 힘을 합쳐 남북 즉 종(從)으로 방어벽을 구축하는 합종책을 펴면 아무리 진(秦)나라가 강하더라도 주변의 나라를 함부로 겁박하거나 침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합종책이 이루어지면 모든 나라가 국태민안을 구가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러하오니 “합종책을 성공시키는데 진력해 주십시오” 라고 건의했다. 그 과정에서 예로부터 전해오는 “비록 닭의 부리가 될지라도(寧爲鷄口), 소의 항문은 되지 말라(勿爲牛後)’는 말을 상기하셨으면 좋을 듯 하옵니다.”라고 했다. 그렇게 성사된 합종책은 15년 동안 지속되며 관련 국가들은 진나라의 위협을 받지 않고 나라를 다스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학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갈고 닦으며 식견을 충실하게 쌓으며 수련했다면 ‘뒤 후(後)자’가 ‘꼬리’를 뜻하는지 아니면 ‘항문’을 지칭하는지 명쾌하게 판단했으련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부끄럽다.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다양한 자료를 들춰 확인해 봐야할 숙제가 되었다. 어찌되었던지 이는 ‘큰 조직의 말단보다는 비록 작은 조직일지라도 우두머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한편 인터넷의 일부 글에서 ‘용두사미(龍頭蛇尾 : Better be the head of a dog than tail of a lion)’를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열거하고 있는데 이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으로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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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namu.wiki/w//계구우후

* 사기열전(상, 하), 송도진, 글 항아리, 2023년


2024년 1월 7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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