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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화암사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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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48회 작성일 24-04-1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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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의 봄

윤복순

 

마음이 합쳐졌을까. 날씨도 설레는 마음도 봄 햇살 만큼이나 눈부시다.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가 커지고 웃음소리 그치지 않는다. 이 기분 그대로 익산 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그녀들도 나만큼 환하게 도착했다. 공자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먼데서 친구가 찾아오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안도현 시인이 잘 늙어가는 절이라고 쓴 화암사를 간다. 작아서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누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나 혼자만 두고두고 찾아가 보고 싶은, 가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될,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라고 썼다.

40년도 훨씬 전, 미국 갔다 온 O에게 초콜릿 선물을 받았다. 상자를 열어보니 하나하나 포장 되어 있고 2층으로 담겨있다. 너무 귀하고 고급스러워 며칠 동안 농속에 넣어두고 한 번씩 꺼내 보기만 했었다. 안도현 시인도 화암사의 인상이 그랬나 보다.

후배가 약사 문인 세 명을 초대하면서 나도 끼워주었다. 모든 일정을 짜고 답사를 하고 식당도 알아보고 운전까지 맡아하니 나는 공으로 먹는다. 평일 약국에서 나를 탈출시켜주고 나이 많은 나와 놀아주는 것도 고마운데 새로운 사람과 친분을 갖게 해줘 더욱 고맙다.

화암사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두어 번 가 보았다. 아마도 내가 안도현 시인보다 먼저 갔는지 잘 늘어가는 절, 화암사내 사랑 화암사란 시는 그 당시 어디에도 걸려있지 않았다.

한가하고 조용하고 일요일인데도 우리식구 네 명 밖에 없었다. 단청이 다 벗겨져 아예 흔적조차 없다. 절까지 올라가는 길도 고즈넉하다 못해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니 포도주통에 살면서도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라.”라고 말한 디오게네스를 떠오르게 했던 절이다. 지금, 주차장도 있고 데크와 철재계단을 놓았다.

꼬장꼬장한 선비 같은 맛이 다 없어져 어디에서 불명산 화암사의 맛을 찾아야 할까. 말도 웃음도 없어져 갈 때 노란 꽃들이 보였다. 민들레가 벌써 피었을까? 복수초가 군락을 이루며 손짓을 한다. 실물을 보는 것도, 한꺼번에 많이 보는 것도 처음이다. 눈 속에 요염하게 샛노랗게 올라온 한 송이 복수초를 사진작가들이 올려놓은 것을 봤을 뿐이다.

사람 마음은 똑같아 다시 말이 말아지고 감탄사가 터지고 그것들을 담으러 자세를 낮추고 숨을 죽였다. 꽃에 벌이 날아와 앉은 모습, 꽃술을 살린 모습, 군락을 이룬 모습, 무엇인들 예쁘지 않을까. 서로서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예쁘게 나온 걸로 저장하자며 카톡소리 요란하다.

채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데 얼레지 꽃들이 나도 있는데요.” 말을 건다. 이 꽃들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꽃대만 올라와 수줍어 얼굴을 들지도 못하는 소녀, 봉곳이 꽃잎을 벌린 처녀, 꽃잎을 뒤로 발랑 까 벌린 첫애에게 젖을 물린 산모, 꽃들의 생애를 연출하고 있다. 이런 모습도 처음이라 화암사 최고를 외치고 말았다.

우화루 계단 옆에 80살 된 모란의 새싹과 요사체 마루에 앉아 봄의 빛을 온몸으로 보듬고 있는데 어약사가 모란이 피기까지는시를 낭송한다. 찬란한 봄을 화암사에서 맛보았다.

화암사 극락전은 하앙식 건축양식으로 우리나라에선 유일해 국보다. 하앙식은 처마와 지붕의 무게를 고르게 받쳐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한 구조로 앞쪽 하앙에는 용머리 조각을 뒤쪽은 꾸밈이 없다. 중국과 일본에는 많이 있는 양식이다. 일본이 중국에서 한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하는데 화암사에 유일하게 이 양식이 있어 일본 주장에 반박을 할 수 있다.

극락전 구경을 하고 나오니 홍매화가 절정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홍매화를 보는 순간 홍약사와 겹쳐졌다. 그녀는 오늘 초면이다. 단톡방에서 최근에 읽고 있는 책 소개를 해 준다. 그녀의 재치와 매력에 홍진희, 조르바, 등의 닉네임이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워낙 재미있게 본 터라 그녀를 보고 싶었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기도 했다.

봄을 제일 먼저 알리고 존재감이 확실한 복수초 같은, 시 잘 쓰고 해설 잘하는 어약사, 얼레지처럼 들꽃인 듯 화려하고 소녀 처녀 새댁을 다 가지고 있는 소약사, 왼손으론 수필을 쓰고 오른손으론 그림을 그리며 최고의 자태를 잃지 않는 모란 같은 성약사, 봄 하면 화암사가 떠오르고 우리 약사들과 같이 한 봄 소풍을 추억할 것이다.

봄놀이는 모든 존재하는 것에 접하여 항상 봄과 같은 따듯한 정을 일으킨다. 아침에 들떴던 가슴에 화암사의 봄기운과 그녀들의 기운이 들어와 천운과 기수가 크게 트여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될 것 같다. 화암사는 잘 늙어가는 절이 아니라 복수초, 얼레지, 홍매화, 모란이 웃고 조잘대고 손짓하는 온통 봄이다.

초콜릿을 먹지 못하고 농속에 넣어 두고 한 번씩 꺼내 보았듯, 화암사에서 약사들과 함께한 시간을 바로 글로 쓰지 못하고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꽃과 그녀들의 몸짓 사진들만 보며 일주일을 넘겼다.

 

2024.3.21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화암사 순례길 저도 마음으로 동참하며 즐겼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다양한 여행 이력 무척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