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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좌고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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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0건 조회 69회 작성일 24-03-1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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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고우면


의사결정 장애를 겪는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낼 때 좌고우면(左顧右眄)이 제격이지 싶다. 본디 좌고우면은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살핀다’는 의미로 ‘ 결정을 못한 채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망설이는 상태’로 확대 해석되어 쓰이고 있다. 이 말의 탄생 배경과 유래와 만남이다.


좌고우면의 유래이다. 이는 소설 삼국지로 널리 알려진 한(漢)나라 위왕(魏王) 조조(曹操)의 아들이며 당대 최고의 문학가 중에 하나인 조식(曺植)이 장군인 오직(吳質)에게 보냈던 서찰인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에서 비롯되었다. 유의어로 자고우시(左顧右視), 좌면우고(左眄右顧), 좌첨우고(左瞻右顧), 좌우고면(左右顧眄), 우반좌고(右盼左顧) 등등이 있다.


여오계중서의 시작은 매우 정중하고 한 수 위인 윗사람을 대하는 것 같아 비슷한 연배로서 자기를 낮추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 싶었다. 실제로 깍듯한 예의를 갖춰 이렇게 여쭈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 식(植)*이 계중(季重)* 인형(足下)께 문안드립니다(植白 季重足下 : 식백 계중족하) /


여기서 ‘식’은 조조의 아들인 조식이며, ‘계중’은 오질의 자(字)이고 ‘족하’는 ‘같은 또래에서 편지를 받는 사람의 이름 밑에 써서 존칭어로 쓰는 말’로서 여기서는 ‘인형(仁兄)’으로 바꿔 표현하기로 했다. 하지만 첫 문장만으로도 상대방인 오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충분히 헤아릴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정중하고 각별한 느낌이 짙게 배어났다. 계속 이어지는 서찰의 사연은 지난날을 이렇게 되살리고 있다.


지난날은 자주 어울려 자리를 마련했으며 비록 연회 자리일망정 온종일(彌日) 마시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격조(隔阻)하여 뵈올 기회가 드문(稀) 까닭에 괴로움이나 울적함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모임에서 인형(仁兄 : 季重)이 술을 따르는 모습을 앞에서 보면 ‘미인이 걸어가는 것(凌波)’* 같았으며, 뒤에서는 퉁소(簫)와 피리(笳)가 연주되는 듯 했답니다. 그 위엄 넘치는 당당한 모습은 봉황(鳳)이 찬탄(嘆)하고 호랑이가 우러러 볼(虎視) 정도였지요. 그래서 소하(蕭何)*나 조참(曹參)*이 맞설 수 없을 뿐 아니라 한무제(漢武帝)의 명장인 위청(衛靑(위청)*과 곽거병(霍去病)*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마치 이런 이치와 같다고 사료됩니다.


/ 왼쪽(左顧)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살펴봐도(右眄)(左顧右眄 : 좌고우면) /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謂若無人 : 위약무인) / 이 어찌 인형의 장한 뜻이 아니겠습니까(豈非吾子壯志哉 : 기비오자장지재) /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원래 좌고우면은 ‘좌우를 휘둘러보면서 상황을 파악하는 자신감에 찬 늠름한 기품’을 이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은 ‘우물쭈물하며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민망한 상황’을 나타내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좌고우면이라는 말을 남긴 조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칠보시(七步詩)이지 싶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권력에 이성이 마비되어 무자비한 형 조비(曹丕)가 제안했다. “소 두 마리가 다투다가 그 중 한 마리가 우물 속으로 추락하는 모습의 그림을 보이며 일곱 걸음(七步) 걸을 동안 그 상황을 묘사하는 시를 짓되 우물로 빠진 소가 죽었다는 내용을 포함하면 안 된다”는 조건이었다. 만일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켜 시를 짓지 못하면 당장 처형하겠다고 했다. 말없이 듣고 있다가 칠보를 걸으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 두 덩이의 고기가 길을 가고 있는데(兩肉齊道行 : 양육제도행) / 머리 위엔 툭 튀어나온 뿔이 달렸네(頭上帶凹角 : 두상대요각) / ......... /


분명히 약속을 지켰음에도 발걸음이 너무 느렸다고 까탈을 부리면서, 이번에는 조건이 제시됨과 동시에 시를 지어야 한다고 길길이 뛰었다. 그러면서 “자신인 조비와 동생인 조식의 관계 즉 형제를 묘사하는 시를 짓되 절대로 ‘형(兄)’ 또는 ‘제(弟)’라는 말을 포함시키면 안 된다”는 전제조건을 붙였다. 어불성설의 횡포이지만 시키는 대로 아래처럼 묵묵히 읊어 나갔다. 그 후 생모인 무선황후(武宣皇后) 변(卞)씨가 중개해 조식은 처형당하지 않고 변방으로 추방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기로 결정해서 어렵사리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 콩대로 불을 때 콩을 삶으니(煮豆燃豆萁  : 자두연두기) / 솥 안의 콩이 울고 있다(豆在釜中泣 : 두재부중읍) / 본디 한 뿌리 태생이련만(本是同根生 : 본시동근생) / 어찌 이리 급하게 삶아대는가(相煎何太急 : 상전하태급) /


같은 부친으로부터 태어난 자신(콩)을 형(콩대)이 지나치게 벼랑 끝으로 몰아치는 극한 상황을 한탄하며 읊었던 내용이다. 좌고우면을 살피다가 그 주인공인 조식의 다른 일화가 떠올라 엉뚱하게 칠보시에 관련 내용으로까지 생각이 미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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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파(凌波) : 미인이 걷는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 소하(蕭何) : 중국 초한쟁패기(楚漢爭覇期) 전한(前漢) 한고제(漢高祖) 시대 정치가이다. 진(秦)시대에도 관직을 지냈다. 이후 유방(劉邦)의 막료(幕僚)로 활약하며 그의 천하통일에 공헌했다.

* 조참(曹參 : 기원전 189년) 초한쟁패기에 전한(前漢) 초기의 군인이며 정치가였다. 한 고조를 따라 거병하여 전한의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 위청(衛靑) : 중국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무장이다. 흉노(匈奴) 정벌에 많은 공을 세워 대사마(大司馬)의 자리에 올랐다.

* 곽거병(霍去病) : 중국 전한(前漢)의 명장(名將)이다. 무제 때 숙부(叔父) 위청(衛靑)과 함께 흉노(匈奴)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2024년 2월 20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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