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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얼음과 숯의 관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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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100회 작성일 24-02-1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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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과 숯의 관계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은 양립 즉 공존이 불가능함을 뜻하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물과 불이 그러한 경우로서 직역(直譯)하면 ‘얼음(氷)과 숯(炭)이 상호 수용하지 못하다(不相容)’라는 의미이다. 모든 것을 삽시간에 집어삼킬 듯 강한 불이 물을 만나면 맥을 못 추고 백기를 들고 눈 깜짝할 사이에 멸(滅)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위력적인 물이 된불을 만나면 순식간에 수증기로 자취 없이 사라지는 게 자연의 이치이다. 마찬가지로 물의 또 다른 형태인 얼음과 불의 재료인 숯도 공존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상호간에 수용하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를 비유할 때 사용되는 고사성어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유의어(類義語)는 다음과 같다. ‘개와 원숭이의 사이라는 뜻으로, 사이가 매우 나쁜 두 관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견원지간(犬猿之間), ‘얼음과 숯은 나란히 하지 못한다’는 빙탄불상병(氷炭不相竝). ‘하늘(天)을 쓰고 있는 원수(讐) 즉 적대감이 크고 깊다는 뜻으로 강렬한 감정이나 복수심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대천지수(戴天之讐), ‘원래 장자(莊子)의 열어구편(列禦寇篇)에 나오는 말로서 숯의 사이라는 뜻으로서 서로 맞지 않아 화합하지 못하는 관계를 이르는 말’인 빙탄지간(氷炭之間), ‘하늘(天) 아래 함께(俱) 있지(戴) 못할(不) 사이’를 의미하는 불구대천(不俱戴天) • 대천지수(戴天之讐) • 불공대천(不共戴天) • 대천지원수(戴天之怨讐) •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讐) 등이 있다.


이 고사성어는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았다고 알려져 유명한 동방삭(東方朔)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전한(前漢) 사람으로 해학(諧謔)과 변설(辯舌)에 능했을 뿐 아니라 박학다식한 명신(名臣)이었기 때문에 수시로 한무제(漢武帝)에게 불려가 말동무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언행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다는 이유에서 교활한 신하들은 은근히 비웃고 헐 뜯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던지 주위의 사람들까지도 기인(奇人)이나 실성한 사람 취급을 했어도 조금도 개의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던 그는 자신이 흠모해 온 초(楚)나라의 우국 시인이었던 굴원(屈原)의 처지와 흡사하다고 여기며 ‘칠간전(七諫傳)’이라는 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冰炭不可以相並兮(빙탄불가이상병혜)

五固知乎命之不長(오고지호명지부장)

哀獨苦死之無樂兮(애독고사지무낙혜)

惜餘年之未央(석여년지미앙)


얼음과 숯은 상호 함께 할 수 없음에

내 본디부터 목숨이 길지 못함을 알았네

홀로 고생하다 죽어 낙이 없음을 슬퍼하며

나이를 다하지 못했음을 슬퍼하노라


이 칠간전은 훗날 굴원의 글과 함께 그(동방삭)를 추모한 글을 펴낸 초사(楚辭)*의 자비편(自悲篇)에도 나온다고 한다. 한편 초나라의 굴원은 이소(離騷)*라는 시로 유명한 사람으로 간신들의 모함으로 귀양을 갔다가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해 자진(自盡)했던 인물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거친 말이 스스럼없이 횡행하는 동네가 정치판이 아닐까 싶다. 특히 최근에 이르러 여야가 극한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된 상태에서 상대방을 향해 마구 쏟아내는 말 폭탄은 아이들이 배울까 겁이 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하다 싶을 경우 서로가 척을 지는 것을 넘어 같은 하늘 아래가 아닌 다른 행성에 사는 적을 향해 저주를 퍼 붓는 것 같아 섬뜩하기도 하다. 그러다가 말갈망을 제대로 못해 궁색한 처지로 몰려 허둥대는 꼴을 지켜보면서 저들이 우리 사회의 엘리트이고 지도자라는 사실에 연민을 느꼈던 경우가 하도 많아 감각이 무뎌진지 오래이다. 여야는 정치를 하는데 파트너일 뿐이지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아닌데.....


사노라면 종교적 신념, 정치적 견해, 가치관, 선호도, 사적인 원한이나 다툼 따위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으며 다툼을 피하기 어려운 경우가 숱하게 발생할 개연성은 상존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극복의 대상이지 척결의 대상이 아니기에 슬기롭게 공존의 해법을 깨우쳐야 한다. 대승적인 견지에서 충녕(忠佞)*도 함께 수용해야 할 때가 있는 게 인간 세상이다. 이는 자연에서 불이 물을 만나면 멸하고 반대로 물이 된불을 만나면 수증기로 승화되어 사라지는 자연의 섭리처럼 ‘너 죽고 나 살기(All or Nothing)’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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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사(楚辭) :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굴원(屈原)과 송옥(宋玉) 등에 의하여 시작된 초(楚)의 운문(韻文)이다.

* 이소(離騷) : 중국의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인 굴원이 지은 장편 서정시이다. 사기(史記)의 굴원전(屈原傳)에 의하면 굴원이 초 회왕(楚 懷王)과 갈등을 비롯해 간신들의 모함으로 유배를 떠나 세상에 대한 실망과 이상(理想)을 담아 지은 시가 이소(離騷)란다. 그런데 여기서 ‘리(離)’는 ‘만남(遭)’을, ‘소(騷)’는 ‘근심(憂)’을 지칭하기 때문에 결국 ‘이소(離騷)’는 “근심을 만난다”라는 뜻이라고 사기(史記)가 전하고 있다.

* 충녕(忠佞) : 충언과 아첨


2024년 1월 8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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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사노라면 종교적 신념, 정치적 견해, 가치관, 선호도, 사적인 원한이나 다툼 따위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으며 다툼을 피하기 어려운 경우가 숱하게 발생할 개연성은 상존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극복의 대상이지 척결의 대상이 아니기에 슬기롭게 공존의 해법을 깨우쳐야 한다. 대승적인 견지에서 충녕(忠佞)*도 함께 수용해야 할 때가 있는 게 인간 세상이다. 이는 자연에서 불이 물을 만나면 멸하고 반대로 물이 된불을 만나면 수증기로 승화되어 사라지는 자연의 섭리처럼 ‘너 죽고 나 살기(All or Nothing)’의 문제가 아니다.]

마지막 문단 말씀이 정말 좋습니다. 사람으로 사는 일이 힘든 것을 알겠습니다.

임영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