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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뜬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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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언홍 댓글 2건 조회 122회 작성일 23-12-18 10:30

본문

단편                 뜬 구름

 

 

 

 

퇴직금 외에 주는 상여금이라며 전무가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을 때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눈앞이 캄캄했다

 

오 년 째 요양원에 누워 마른침을 쿨럭이는 노모와 식당 개수대 앞에서 그릇을 덜걱거릴 아내를 떠올리자 절로 목이 꺾였다.

 

 

조짐을 느낀 건 두 달 전 부터였다.

 

가뜩이나 비좁은 사무실 한쪽에 사무용 탁자 하나가 자리를 잡더니 이틀후 머리가 벗겨진 오십초반의 사내가 헛기침을 앞세우며 상무 뒤를따라 들어왔다.

 

"인사하시게.

 

상무 뒤에 서있던 사내가 뒷짐진 손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에 이번에 새로 발령난 제 2부장 오갑석입니다. 잘 지냅시다."

 

순간 누구라 할것 없이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2부장이라니? 그건 나를 몰아내기 위해 부린 술수라는 걸 모두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날부터 사무실 한켠을 자치하고 앉은 오부장앞으로 결재서류들이 나를 비켜가기 시작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력감이 뒷목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원인은 따지자면 지피는 바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여름 장마때 자재창고뒷산이 흘러내리면서 창고가 무너지는 참사가 있었다. 마침 휴가 중이라서 미처 전해받지못했고 나중에 돌아와 보니 모두 휴가도 반납한채 복구에 매달리느라 땀께나 흘린 모양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윗선의 눈최가 매서워진 것이.

 

단도직입적으로 나가라는 말만 내뱉었어도 이렇게 뭉그적 거리고 있진 않았을것이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듯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끄덕했고 사무실 밖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험, 헛기침 한번 하고 지나치면 그만이었다. 입이 바작바작 타들어갔다. 입맛까지 달아나서 무얼 먹어도 소태씹은 기분이었다. 슬금 슬금 눈치만 살필뿐 말한마디 건네오는 사람도 없었다 온종일 좌불 안석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 안팍이 들썩거렸다. 무슨일인가 싶어 두리번 거리는 내게 회계부 직원 추미연이 뒤로 다가와 재빨리 속삭였다.

 

" 환송회 한데요."

 

환송회? 앞뒤 뚝 잘라먹은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누가 누굴 환송한다는거야? 새로 들어온 2 부장이란 작자가 실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어험! 간만에 뱃속에 때좀 벗길려나..

 

추미연이 다시 속삭였다.

 

"부장님 오늘 주인공인건 아시죠?

 

눈치는 이미 채고 있었지만 짐짓 딴청을 부렸다.

 

"뭔 소리야? 무슨 주인공?

 

"아이 부장님도 그렇게 센스가 없으세요

 

추미연이 입을 비죽했다. 출입문이 스르르 열리며 짙은 눈섭의 영업부 직원이 고개를 빠끔히 디밀었다. 부서가 달라 평소엔 대면대면했던 직원이었다. 그렇게 느껴서일까. 그의 눈에 비친 안스러움을 느끼자 알수 없는 비애가 목젖을 치밀고 올라왔다. 눈앞이 뿌애져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그가 재촉하듯 손짓했다

 

"부장님 어서 나오세요.

 

곁눈으로 슬쩍 제 2부장이란 작자를 돌아다 보았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아니란걸 진작에 알고있었다는듯 책상에 코를 박고 서류철을 뒤적거렸다.

 

 

"어서요. 어서 나오세요. 요 앞 일정 부페 아시지요? 그리로 가시면 되요.

 

"나만?

 

"아뇨 모두 갈겁니다.

 

안내방송이 스피커를 타고 윙윙울었다.

 

"임직원 여러분 오늘은 임호연 부장님의 환송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모두 요앞 일정 부페로 가셔셔 부장님의 그간의 노고와 수고를 위로해 주셨으면 감사 하겠습니다.

 

써놓고 읽는듯 거침없는 여직원의 목소리가 뒤통수를 후려쳤다. 직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기만 했다. 유리창 너머로 노을을 보며 자리애서 일어났다. 쇠뭉치를 단 것처럼 걸음이 무거웠다 문을 나설 때 경비실 노씨가 벌떡 일어나 거수 경례를 부쳤다. 지난 세월이 꿈처럼스쳐갔다. 문득 책상 위에 놓였던 사각 봉투 생각이 떠올랐다.

 

사무실로 되돌아 갈까 하다가 그대로 걸음을 옮겨 부페 일정으로 들어섰다. 예약실로 안내 받아 들어서니 박수 소리와 함께 종이 폭죽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부장님 그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튀어나온 그 말에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하는 체념과 아쉬움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못먹는 술을 고주가 되도록 마셨다. 누군가 흔들어 눈을 떠보니 직원들은 모두 가고 혼자 남아 식탁에 코를 박고 있었다.

 

 

정년은 아직도 이년이나 남아있었다. 명예퇴직이라니...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설움이 왈칵왈칵 밀려왔다. 손안에 무언가 들려있어 보니 사무실 책상에 놓고 나왔던 봉투다.

 

' 이게 발이 달렸나''

 

실없는 농담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며 봉투를 슬며시 들여다 보니 만원짜리 묶음 두 다발이 도끼눈을 하고 올려다 본다.

 

"그건 사장님이 따로 주신 거에요. 그 동안 애써준데에 대한..."

문앞에서 지켜보던 직원이 한마디 던지고 간다. 직장생활이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회사에 충성한 댓가가 겨우 이백만원밖에 안되는 거였다니. 욕심 많던 사장의 툭 불거진 입술을 떠올렸다 회사 사옥의 실루엣이 꿈결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집으로 돌아오니 텅빈 집이 마치 무덤처럼 고요하다. 입은 채로 쇼파에 쓰러져 잠든 나를 들여다 보며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릇 두어개가 개수대 안에 뒹군다. 어쩌면 오늘부터 내자신의 차지가 될른지도 모르겠다. 그릇을 덜그럭 거려본다. 꿈인듯 생시인듯 떠오르는 지난 밤의 기억.

 

"아니 뭔 술을 고주 망태가 되도록 마셨데. 쯔쯔. 늙어가면서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 이이가..

 

아내가 들어댜 보고 그렇게 중얼거렸었지...골이 깨질듯 아프다.

 

재작년에 명퇴를 당한 그 친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한동안 전화걸기도 뭣해 소식이 뜸했던 친구 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친구 지용의 목소리가 이내 튀어나온다 두번도 안울려 냉큼 받는걸 보니 꽤 심심했던가 보다.

 

"날세."

 

"? 어 웬일인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만.

 

"나올수 있나? 차나 한잔 하지.

 

그가 말한 동네 어귀의 작은 카페로 들어섰다. 중년의 여자가 카페 구석에 앉아있다가 퍼뜩 일어선다.

 

커피 라떼 두잔을 시켜놓고 마주 앉았다.

 

"웬일이야?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그냥 갑자기 자네 생각이 났어.

 

"솔직히 말해 너 회사....

 

입에 침이 마를새도 없이 그가 뒷말을 이어간다.

 

"난 말이다 버얼써부터 알고 잇었어. 너희 회사 상무동생이 나와 고교 동창 아니냐.

 

"뭐어 그럼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거네?

 

"지지난달 인가? 동창 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듣게 됐지. 그렇지만 차마 입이 안떨어지더라. 너희 회사에선 네가 자발적으로 나가길 바란 모양이야 새로 사람을 들였으면 네가 눈치 챌줄 알았는데 영 아니더란 거야 그래서 두달간 네게 기회를 준거지..

 

"그랬군.

 

.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멍충이가 아닌 다음에야 그걸 눈치못챘을리가 있겠는가. 설마 날? 하는 한가닥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회사를 위해 그만큼 애썼는데..내 청춘을 다 받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냐.

 

"알지 나도...너희 회사 특허낸 공로도 사실은 네덕 이였잖아.

허허 그렇지 내덕이지.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냐. 실컷 부림당하고 쫒겨나는 판에.

어쩔수 없지. 우리같은 사람이 물러나야 젊은 사람들이 들어갈수 있는 거니까.

그래도 억울하다. 내 청춘을 몽땅 도난당한 것처럼...

커피잔을 들었다 뽀오얀 밀크와 검은 커피가 서로에 석여 들며 빙그르르 돈다. 그것을 들여다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인생도 이런거지

뭔소린가 하여 친구가 나를 힐끔 쳐다봤다.

자낸 어떻게 지내?”

? 나야 뭐 자알 지내지.”

다행이군 질 지낸다니.”

다행은 무슨 다행.. 못지낸다고 할수 없잖아. 직접 겪어봐, 그래야 내 심정 알지.”

그의 얼굴위로 씁쓸한 미소가 잠간 스쳐갔다.

그럼 온종일 무얼하며 지내시나?”

글쎄다...퇴직하고 처음 일년은 좀 바빴어. 등산도 가고 낚시도 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지냈지, 그런데 그것도 일년쯤 되니까 그만두게되더라구. 다 돈들어가는 일이잖아. 마누라 눈치도 보이구...”

난 아직 말도 못꺼냈어... 어떻게 말해야할지..

절로 목이 꺾였다.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육신은 소멸해 버리고 두 다리만 살아움직이는 것 처럼 흐느적 거렸다.

인생이란 말이야 뜬구름 쫓기지.’

친구가 독백처럼 내뱉던 말이 자꾸 뒤떨미를 잡아 챘다.

 

 

댓글목록

김언홍님의 댓글

김언홍 작성일

하도 오랜만에 올리는 글이라 철자도 건너 쓰기도 엉망 일겁니다. 가끔 들여다 보고 고쳐나갈게요.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이제는 시의 영역보다 소설에 더 익숙하신 것 같아 응원합니다. 그런데 매우 오랜만에 오셨네요. 별고 없으시고 잘 지내시지요? 저도 그럭저럭 지내며 소일 하고 있답니다. 언제 한 번 뵙게 되길 기원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