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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소소한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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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193회 작성일 23-11-0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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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즐거움

윤복순

 

일요일은 똑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즐거움이 있어 기다려진다. 포도농사도 끝나 여행을 다닌다. 이번 일요일엔 어디 갈까, 지도책을 펴놓고 이리저리 교통편을 챙겨보는 재미도 즐겁다. 가보지 않은 곳을 가고 싶은데 교류가 많지 않으니 정보가 없다.

약국에 피로회복제를 사러 온 사람에게 왜 피곤할까, 묻고 여행 갔다 왔다고 하면 꼬치꼬치 알아본다. 이번에도 무궁화열차를 탔더니 많이 피고하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완행열차다. 친정이 홍성인데 장례예식장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홍성에서 가볼만한 곳을 소개받았다. 용봉산, 수덕사, 죽도, 오서산을 알려준다. 죽도에 필이 꽂혔다. 다른 세 곳은 다녀왔다. 홍성까지 가지 말고 광천역에서 남당항이 더 가깝다고 한다. 전국에 죽도는 몇이나 될까. 내가 아는 곳만 해도 대여섯 군데다. 장항선은 전라선 호남선에 비해 차 시간이 원활하지 않은 편이고 시속도 좀 느리다. 아직 KTX도 다니지 않는다.

배 타는 시간을 맞춰야 하니 시내버스도 다니지 않는 꼭두새벽에 택시를 타고 익산 역으로 갔다. 광천에 내리니 8시 조금 넘었다. 물어물어 버스 타는 곳을 찾아갔는데 남당항 가는 것은 920분이다. 다행히 광천 재래시장이 바로 있다. 토굴새우젓이 유명하다. 이틀 뒤부터 축제가 열린다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있다.

새우젓시장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른 시간인데도 문을 열고 깎아줄 테니 들어오라고 한다. 터미널도 바로 곁에 있어 그 주변을 빙빙 돌았다. 아마 저 할아버지 할머니 집을 못 찾는가보다고 신고가 들어가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면서, 재미있어 웃음이 나왔다. 남편은 20여 년 전 호주에 갔을 때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 주변을 빙빙 돌았던 기억이 난다고 한다. 우리에게 들어와 보라고 했던 그 집 앞을 또 지날 때 하버브리지, 하며 웃었다.

브리히트의 즐거움이란 시가 떠올랐다. 아침에 처음으로 창밖을 내다보기/다시 찾아낸 오래된 책/감격에 겨운 얼굴들 ...중략, 글쓰기/ 어린 식물 키우기/ 여행하기/노래하기/친절하기// 나는 시장구경하기를 넣고 싶다.

시간 맞춰 터미널에 갔는데 남당 가는 버스가 없다. 혹 일요일이라 빼먹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딱 정시에 기사가 버스에 올라가고 번호판에 불을 넣고 승객을 태운다. 미리 해 놓으면 나 같이 소심증인 사람 걱정도 안하고 좋을 텐데. 승객은 겨우 4명이고 중간에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다.

남당 항까지는 50여분 걸리고 배는 11시에 출발한다. 대하축제가 열리고 있다. 점심을 먹기는 이른 시간이고 배를 타는 곳은 방파제 따라 한참 걸어야 한다. 표부터 사놓고 주변 구경을 하려는데 앞의 사람이 산악회 대표라며 예약을 했다는 둥, 사람숫자와 돈이 안 맞는다는 둥, 시간을 끈다.

배에 타려고 내려갔을 때 젊은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다. “잡았어요?” “못 잡았어요.” “언제부터 했는데요?” “어제 밤부터요.” “물고기야, 잡히는 것 보고 싶으니 얼른 올라와.” 그와 같이 크게 웃었다. 많은 사람들이 방파제 주변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죽도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 오랜만에 배를 탔다. 상큼한 바람과 드넓은 시야, 산악회 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며 갈매기를 부르니 내 옆까지 왔다. 흥분된 목소리들이다. 생명력 넘치는 이런 분위기도 좋다.

죽도는 조그만 섬이다. 점심은 먹을 수 있을까. 첫 번째 들어간 집에선 민박 예약 손님만 받는다고 한다. 세 번째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게장도 소라회도 새우 찜도 가리비도 우럭회도 매운탕도 밑반찬도 입에 맞다. 객지에서 좋은 식당을 만나면 여행하는 맛이 난다.

손을 씻고 나오니 남편이 우리 옆 테이블 젊은 부부에게 소주 한 병을 주문해 주었단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 하길래 회정식 맛있다고 말해 그들도 그걸 주문했다. 혹 남당 항에 차를 두고 왔을까 걱정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한다. 초로에 드니 이런 즐거움도 좋다. 같은 또래가 소주 한 병을 주문해 주면 이처럼 온 얼굴에 미소를 띠며 감사하다고 젊은이들이 받을까.

섬 일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차가 없는 것이 특색이다. 섬 전체에 시누대가 있다. 그래서 죽도다. 둘레길을 걷는데 해안 쪽이 시누대로 막혀 갑갑하다. 내 생각엔 그걸 다 배어내면 바다가 환히 보여 온 바다가 다 내 것일 것 같은데.

전망대에 오르니 올망졸망한 섬들이 보인다. ! 오륙도! 아니 열 개도 넘는다. “죽도의 자녀들이라 이름 붙였다. 흥부의 자식들 같다. 해수욕장도 흥부 집의 마당만 하다. 둘레길을 걷는 사람보다 낚시하는 사람이 더 많다. 점심식사 하면서 보니 민박 예약안내문에 1박에 1130,000원이다. 식사 세 번과 배타고 낚시 나가는 거 한번 포함된 가격이다.

동생이 회갑인데, 신시도에서 바다낚시 12일로 예약했단다. 형제들 같이 간다고 올케한테 전화가 왔다. 주말엔 예약이 안 돼 평일이라며 내 걱정을 한다. 약국 문 닫는 게 뭐 대수겠는가, 젊을 때 같으면 모르겠지만. 동생 내외 해외여행을 시켜주려 했는데 조카가 둘째를 낳아 올케가 시간을 못 내겠단다. 언제든 한 번은 같이 가자고 했다.

젊은 부부가 갑오징어 두 마리를 잡았다고 발걸음도 가볍게 물고기 담은 바구니를 흔들흔들 흔들며 내려온다. 나까지 신났다. 나는 바다낚시 때 몇 마리나 잡을 수 있을지 한 달도 더 남은 친정식구들과의 동생 회갑일이 기대된다. 바다낚시 처음이라서 지금부터 설렌다. 상상을 해보는 맛도 즐겁다.

밤낮의 길이가 날마다 다르지만 평생을 놓고 보면 한 치도 길고 짧음이 없듯, 우리의 인생도 큰 기쁨 뒤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슬픔이 있다. 소소한 즐거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슬픔, 인생 후반기 이렇게 살고 싶다.

 

202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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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전혀 모르는 곳을 지도를 보거나 지인의 얘기만 듣고 과감하게 여행에 나서는 용기가 대단히 부럽습니다. 글을 보다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떠오르며 선배 한 분이 생각 났었습니다. 지금 기억에 아마도 광천이 고향인 대학 선배 한 분이 있었는데, 꼭 시간 내서 한 번 놀러 오라했는데 지금까지 가보지 못했네요. 지금 그 선배 살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고맙게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