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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처가 실패한 역사적 예수 탐구 > 자유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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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슈바이처가 실패한 역사적 예수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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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춘봉 댓글 1건 조회 115회 작성일 23-10-14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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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  https://youtu.be/IYyzV8tK7_M?si=D_n_8fmay_pVC_eW


슈바이처가 56세가 되었을 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차원에서 저술한 자서전에 -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여러 가지 곤궁에 빠져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직도 진정한 문화에 도달하지 못한 채로 - 문화란 지식과 능력이 이룩하는 업적에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것은 외면적인 진보에 불과하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선량하고 가치 있고 인자 한 인간이 되기를 바랄 수 있는 정신적인 진보가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이때야 비로소 외면적인 진보도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슈바이처는 루터교회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계몽주의를 상징하는 볼테르가 사망한 해부터 스웨덴의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의 유산을 기금으로 인류 문명 발달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상금을 주는 노벨상이 제정된 1901년 사이에 출간된 600여 건의 예수 생애에 관한 책을 종합 분석하고 1906년 예수의 생애 연구사를 발표했습니다.

예수의 생애 연구사의 보면 

예수가 정확히 무엇을 가르쳤는지 증명하기가 어렵다. 성경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모순을 해소하려면 온갖 추측과 상상을 동원한 기발한 해석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한 다음, - 신원을 알 수 없는 신약성경의 사복음서 저자들이 자신들이 갖고 있던 생각과 시대 배경을 예수에게 투사했다면서 이상적인 이미지일 뿐 예수에게는 참된 가르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슈바이처는 최초로 예수의 생애 연구를 한 학자입니다. 그런데도 예수의 핵심 키워드 <천국> 비유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천국> 비유를 말할 때마다 - 귀 있는 자는 들으시오 하면서 뒷귀가 먹은 사람처럼 못 알아듣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3, 마가복음에서는 2번 누가복음에서는 1번 나옵니다. 아마도 수백 번은 더 했을 겁니다.

예수 연구를 했다는 학자 대부분은 슈바이처와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이상적인 이미지 일 뿐, 예수에게는 참된 가르침이 없다고 말한 슈바이처의 <생명의 경외>에는 모든 생명을 보존하고 촉진하는 일은 선이고, 생명을 부정하고 방해하는 일은 악으로 규정한다. 그리스도는 오직 한 계명만 주셨다. 그렇다면 - 슈바이처가 말한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슈바이처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니체도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성경 구절을 기가 막히게 잘 외워서 꼬마 목사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며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배우다가 중도에 신학을 포기하고 세상에 그 어떤 말보다도 혹독한 말로 기독교를 고발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니체는 성경을 읽을 때 장갑을 낀다고 했습니다. 추잡스러워 만지고 싶지 않지만 예수가 누구이고, 무엇을 가르쳤는지 밝혀내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1888년에 발표한 <안티 크리스트>에 보면,

예수는 하층민과 외톨이 범죄자들을 부추겨 유대교가 지배하는 사회를 공격한 무정부주의자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예수는 정치범으로 형무소에 들어갈 만한 말들을 하고 있는 셈이고 그런 죄목이 있었다고 한다면 예수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었다. 예수가 다른 이들을 위해 죽었다는 말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루돌프 불트만도 독일의 루터교회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대학 교수가 된 다음 1926<예수>를 발표했습니다.

거기에 보면,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찾으려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찾아야 할 필요가 없다 말했습니다. 그 후, 초월적인 예수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예수의 역사성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도덕적인 원리를 인격화 한 이념일 뿐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학자들은 하나같이 예수의 역사성을 부정하거나 참된 가르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인문학적으로 파고 들면, - 예수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문명사회가 목전에 왔음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예수는 문명사회의 여명기에 살았던 선각자였습니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날씨가 궂겠다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예수가 한 말입니다

그 당시 지중해의 강자였던 로마는 도시 문명의 꽃을 활짝 피웠던 시기였습니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퇴행의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로마인들은 공존을 위한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위치에 있었습니다.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정점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원로원 의원을 비롯하여 키케로가 작당을 해서 카이사르 암살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로마인들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었고 퇴행의 첫 번째 주자로 나선 사람이 아우구스투스 황제였습니다.

그 무렵유대에서도 문명의 맹아(씨앗)를 말한 예수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슈바이처, 니체, 볼트만은 - 문명 시대 여명기에 진입한 로마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 저들은 로마가 문명 시대에 진입했다는 역사적 진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한 사람이 프랜시스 베이컨입니다.

1620, 베이컨이 발표한 <신기관>에 보면, 인간이 지식을 추구할 때 범하는 네 가지 오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에 장치되어 있는 우상으로,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생겨난다.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좁은 소견에서 빚어지는 착각들, 시장의 우상은 인간의 언어가 빚어내는 여러 가지 해석과 애매한 말 때문에, 극장의 우상은 나보다 앞서서 성립한 철학체계의 도그마 속박으로 생겨났다.”

이와 같은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는 네 가지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사람을 잘못된 오류로 이끄는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 고유의 감정과 의지 때문에,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특수성과 주관 성향 때문에, 시장의 우상은 언어에 현혹되기 때문에, 극장의 우상은 그릇된 전통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발생합니다.

인간의 두뇌는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주입식 학습에는 속수무책입니다.

슈바이처가 무지했기 때문에 예수의 <천국> 비유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고정관념 때문이었습니다. 슈바이처가 찾아본 600여 작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굳어버린 고정관념과 모식은 이처럼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동영상에서 계속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청맨과니이지만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뭔가 조금이라도 알면 나름대로 의견을 표했을 터인데 유감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