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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찌 초등학생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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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371회 작성일 23-06-10 13:51

본문

어찌 초등학생이 되는 걸까

윤복순

 

퇴근하면서 우편함을 보니 도로공사에서 보낸 편지가 있다. 나와는 영 상관이 없는 편지라서 잘못 넣은 줄 알았다. 확인해 보니 분명한 내 이름이다. 통행료 납부 확인 안내문이다. 날짜를 보니 청와대 갔다 온 날이다. 참말 여러 가지 딱지가 날라 온다.

남편이 반창회에서 청와대에 간다고 한다.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간다는 것을 잊어버렸는지 토요일이라서 내가 약국 때문에 같이 갈 수 없어 아쉽단다. 나는 반창회 회원도 아니다. 어느 해 청산도 갈 때 한 번 따라간 적이 있다. 나는 약사들끼리 가는데 날은 아직 잡히지 않았을 때다.

가는 날 일주일쯤 전에 남편이 운전을 하고 간단다. 여기서 서울이 어디라고? 당신 나이가 몇인데? 왕복 몇 시간을 운전해야 하는데? 세 살 먹은 애기도 웃겠네. 아무리 초등학교 반창회에서 결정한 일이라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몇 명이나 가는지 모르지만 익산에서 서울까지 KTX가 연락부절이고 시간도 한 시간 남짓이면 된다. 서울에선 지하철을 이용하면 빠르고 편하고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다.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남편에게 운전을 하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 쥐어뜯어 주고 싶다.

운전까지 하면서 갈려면 가지 말라고 했다. 집에 올 때까지 나는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 한다고 했다. 남편은 동창회라고는 반창회가 유일하다. 이번 참에 좋은 일 한 번 하겠다며, 조심해서 잘 갔다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운전이 나 혼자 잘 한다고 사고가 나지 않던가. 최하로 왕복 7~8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한다.

70대 노인들이 사고라도 나면 회복은 느리고, 좋은 마음으로 한 청와대 여행이지만 친구 간에 의 상하고 노년에 얼마나 고생을 하겠는가. 백 번을 양보해도 이건 아니다. 나만 걱정이지 남편은 탐탐이다.

여행자보험을 들라고 했다. 우리 차에 타는 사람 이름과 주민번호를 받고 보험사에 연락해 1일 보험을 들었다. 그거라도 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알탕갈탕 노후준비 해 놓은 것 한 방에 다 날리지 말고, 친구들도 편안하게 치료 받아야 한다고 설득을 했다. 사실 보험료도 얼마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가는 날, 비가 내린다. 더 웃기는 것은 한 회원이 자기 집까지 데리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우리 집에서 가는 데만 20분이 걸린다. 집결지까지는 자기 차를 타고 오더니 택시를 타더니 해야지 화가 팍 났다. 하루 종일 운전 할 사람에게 데리러 오라고 하다니, 아무리 초등학교 동창들이라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더니 초등학교 동창은 초등학생이 되는가 보다.

남편이 중간 중간 전화할 테니 그리고 천천히 잘 갔다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전쟁터에 보내는 마음으로 보내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침 운동도 나가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자신감을 잃게 한다. 자신감이 없으니 불안하고 그 불안이 걱정으로 이어진다.

서울까지 잘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구경하는 동안은 별 일 없을 테니 절반의 성공이다. 3시쯤 고속도로에 진입했다고 연락이 왔다. 복잡한 서울을 빠져 나왔으니 5분의3은 성공이다. 보통 익산에서 서울까지 3시간 잡는다. 넉넉잡고 7시 안에 집에 올 줄 알았다.

6시부터 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운전 중에 전화 받다 사고라도 날까 전화도 못하고 안전부절 왔다갔다만 하고 있다. 인내심을, 인내심을 발휘하다 결국 전화를 눌렀다. 논산을 지났단다. 다 왔다고 생각하다 토요일이란 것을 알았다. 4월말 7시는 깜깜하다. 여태도 기다렸는데 1시간 못 기다릴까.

8시가 넘어 도착했다. 새벽 6시에 출발해 지금 온 것이다. 지옥에서 살아온 것만큼이나 대단하다. 엄지손을 치켜들고 당신 최고라고 칭찬하다 보듬고 둘이 방방 뛰었다. 정말 운 좋게 아무 일 없이 남편이 청와대에 다녀왔다.

다음날 남편이 무얼 내 놓는다. 주차위반 딱지다. 청와대 주변에 다른 차들도 주차해 놔 자기도 했단다. 구경하고 나와 보니 이게 있더란다. 남편이 아무 일 없이 살아왔는데 이게 뭐 대수겠는가. 종로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자진납부하면 할인해 준단다. “여보 나 오늘 만원 벌었네.” 호기롭게 딱지비도 내 줬다.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천안논산고속도로 딱지가 날라 온 것이다. 통행료 납부 확인 안내문이다. 남논산상에서 풍세상, 서울에서 풍세하, 풍세하2에서 정안, 통행료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딱지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다닐 일이 없으니 하이패스가 없다. 그런데 왜 하이패스 구간으로 지나갔을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참 초등학교 동창 여러 명이 모이니 초등학생이 되었는가 보다. 남편은 5~6년 전 광주 농협으로 포도 출하할 때 하이패스를 만들었고 돈이 남아있는 줄 알았단다. 그때가 언제라고.

나한테 혼날까봐 말하지 않았는데 사실은 그날 우리 차에 아홉 명이 다 타고 갔다는 것이다. 우리 차가 포도밭에 일하러 다니는 아주머니들 출퇴근용이라서 9인승이다. 말이 9인승이지 뒷좌석은 접고 펴는 식이라 뒷좌석에 앉는 사람은 여간 불편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날 보험은 여섯 명만 들었다. 내 눈이 치켜 올라가고 입이 옆으로 쭉 찢어졌다. 그래도 익산 다 와서는 동창들이 잘 갔다 온다고 그 좁은 차안에서 노래까지 불렀단다. 참 아이구~ .

남편은 중 고 대학 동창회는 다 놔두고 왜 초등학교 반창회만 나갈까. 나는 아내를 책임지고 보호해 주는 남편의 슈룹 안에서 사는 게 아니라, 초등학교 6학년 천방지축 아들 같은 남편, 사고 뒷감당이나 해주며 살고 있다. 제 날짜에 내지 않으면 고객전용 입금계좌로 입금이 불가능하다고 해 점심시간에 고속도로 통행료 내고 왔다.

그리고, 오늘 도로공사에서 또 딱지가 날라 왔다. 이번엔 서울 올라갈 때 미납된 통행료다. 한꺼번에 와야 한 번 혼나고 마는데 왜 따로따로 와서 각시한테 또 혼나게 하냐고 댑대로 남편이 짜증을 낸다.

 

2023.5.25

 

댑대로- 도리어의 전라도 방언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고희를 넘긴 처지에도 초등학교 동창들과 어울리면 자연스럽게 초등학생으로 변하게 마련인가 봅니다. 저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석사와 박사 동창들과 어울리면 항상 예의를 깎듯이 차리지만, 웬일인지 초등동창 몇과 만나면 완전히 어린시절로 돌아간답니다. 체면이나 자존심은 집의 빨랫줄에 널어놓고 온 사람처럼...... 그렇게 사고를 쳤어도 마음 속으로는 엄천 좋았을 것입니다. 눈 질끈 감고 너그러히 넘겨 주시면 더더욱 좋아할 것입니다.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나이가 들어도 사람은 적당한 긴장감이 있어야 더욱 건강하게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삶은 누가 봐도 행복 이상입니다. 지금처럼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