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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절묘하게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킨 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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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춘봉 댓글 2건 조회 334회 작성일 23-05-1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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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 (19) 르네상스기행11 파리3 에펠탑 - YouTube


파리 센강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 온 나는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토대가 된 백과전서편집자 드니 디드로와 관련된 자료를 점검하면서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기상을 알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깨고 일어났다. 식당에 가서 아침 식사를 한 다음, 버스로 에펠탑 매표소에 도착했다.

안내 책자를 보니까 에펠탑 1층 전망대는 57m, 2층 전망대는 115m, 3층 전망대는 274m 높이에 있었다.

3층 꼭대기까지 올라갈 경우 성인 기준 17유로(22,000), 2층까지 이용 시 11유로, 계단으로 1층 전망대에 올라가도 7유로를 받는다고 되어 있었다.

우리는 선택사항이 아닌, 여행사 풀 옵션이라서 가이드가 입장료를 지불한 다음, 모두 엘리베이터로 3층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사방으로 전망이 탁 트인 평야지대 한 가운데로, 센 강과 파리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단말기 이어폰으로 에펠탑에 대한 가이드 설명이 있었다.

에펠탑은 돌을 재료로 쓰던 시대에서 철 구조물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기념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탑에 쓰인 철은 7300여 톤. 22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서 1889331일 준공했습니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88956일부터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역사적인 파리 만국박람회에 우리나라에서는 갓, 도포, 가마 등을 출품했고, 11년 후였던 1900년 박람회에서는 고종의 초상화가 전시되었습니다. 에펠탑은 건축 당시, 철골 구조물이라서 파리의 우아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20년 계약기간이 끝나는 1909년 해체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무렵 무선 전신전화의 안테나로 에펠탑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1916년 세계 최초의 태평양 횡단 무선통화에 성공했습니다. 곧이어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면서 에펠탑이 없어서는 안 되는 구조물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1957년에는 텔레비전 안테나를 설치하면서 탑이 더 높아졌습니다.”

가이드는 1761년 영국 런던에서 왕립미술공업상업 진흥회가 공산품을 전시한 것이 만국박람회의 시초이고, 그로부터 90년이 지난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다는 사실을 말한 다음, 또 다시 38년이 지난 1889, 프랑스 혁명 100주년이 되던 해 이곳 파리에서 만국박람회를 개최했다는 사실도 이야기했다.

나는 가이드 설명을 휴대폰 단말기로 듣다가, 문구 하나가 떠올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시대적 요구와 맞물린 발상 전환은 문명의 젖줄.”

시대적 요구와 발상 전환이 문명을 꽃피운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에펠탑이 '볼썽사나운 철 구조물'이라는 등. 비난이 빗발치는 바람에, 20년 계약기간이 끝나면 철거된 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에펠탑 해체를 주장한 사람 중에는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인들이었던 소설가 모파상, 에밀 졸라, 알렉상드르 뒤마, 시인 베를렌, 작곡가 고노 등 300명이 넘었으며, 에펠탑을 없애 달라는 탄원서에 서명한 사람 중에서도 별나게 유난을 떨었던 사람이 모파상과 베를렌이었다.

야외에서 식사를 즐기던 모파상은 에펠탑이 지어진 뒤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에펠탑 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어느 신문기자가 왜 실내에서만 식사를 하느냐고 물으니까 파리 시내에서 에펠 탑이 안 보이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시인 베를렌은 아예 에펠탑을 보지 않으려고 좁은 골목길로만 다녔다고 합니다.”

가이드가 그와 같은 사실을 말할 때 나의 뇌리가 작동하면서 부지불식간에 떠오른 문구였다.

그러니까 에펠탑 건립 반대를 했던 문인, 예술가, 언론인들은 문명시대 흐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고, 생각의 발상 전환이라는 용어조차도 몰랐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지식을 생활에 응용하는 지혜를 발휘한 사람들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기발한 발명품을 생산하면서, 세계만국박람회는 인류 문명의 창조성을 자극하는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

런던 수정궁에 전시된 증기기관차는 열을 가해, 발생시킨 증기 압력으로 실린더 내 피스톤 왕복운동 에너지를 크랭크축을 이용해서 회전 운동에너지로 바꾼 내연기관을 장착한 열차였다.

실린더와 피스톤의 흡입, 압축, 폭발, 배기 4행정 원리는 증기기관차보다 160여 년 전, 하위헌스(1629~1695)와 그의 제자 파팽(1647~1712)이 알아냈다. 처음에는 실린더 안에 화약을 넣고 폭발시켜 피스톤을 작동시키다가 화약 대신 수증기를 이용한 장치로 발전했다.

1853년 뉴욕박람회에서는 모스 전보기와 엘리베이터가 등장했다.

1876년 필라델피아박람회에서는 벨의 전화기가 처음으로 소개됐다.

1878년 파리박람회에서는 에디슨이 전구와 축음기를 출품했다.

1885년 벨기에 앤트워프박람회에서는 상용자동차가 출시됐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박람회에서는 비행기가 전시됐고, 1939년 뉴욕박람회에서는 텔레비전과 나일론, 그리고 플라스틱이 처음 등장했다.

이처럼 기발한 발명품을 만든 사람들이 문명의 씨앗이고 그들에 의하여 물질문명 발달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으며 내가 이 모든 정보를 인터넷 검색으로 알았기 때문에 고대 로마인 플리니우스 박물지와 중세 드니 디도로가 편집한 백과전서는 박물지의 개정 증보판이고 인터넷은 고대 로마에서부터 계승된 계몽주의 시리즈 완결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고대 로마는 르네상스 맹아가 분명하다.

따라서 문명시대 여명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기원전 44년 카이사르 암살은 개인의 생사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재발의 여지가 있는 악성 종양 덩어리였다.

반문명적 범죄가 급증할 것이라는 불행의 전조였고, 무고한 예수 십자가 처형 사건으로 비화된 것이라서, 예수가 말한 산상수훈 천국은 문명세계 비유적 표현이 명확하다.  

.(생락)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좋은 내용으로 공부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춘봉님의 댓글의 댓글

김춘봉 작성일

유럽 여행을 몇 년 전 다녀왔지만 지금도 가슴이 설레곤 합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