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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돼지로 보였다가 부처로 보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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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445회 작성일 23-05-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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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로 보였다가 부처로 보였다가                             


절대란 진정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일까. 왕사(王師)로 알려진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했던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豚眼只有豚),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佛眼只有佛)’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는 동일한 대상이 상황의 변화에 따라 돼지로 보이는가하면 부처로도 보이는 모양이다. 덜떨어진 얼간이이거나 잇속에 매몰된 정상배(政商輩)가 아닐 경우 같은 것이라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든 시종일관 한 가지로만 보여야 정상일 터인데 말이다.


그 옛날에도 지금처럼 거짓말이 꽤나 많이 횡행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우스갯소리로 떠돌던 말이 떠오른다. 세상에 믿을 수 없는 세 가지의 큰 거짓말이 있다고 했다. 그 첫째는 ‘노인이 일찍 죽어야지’라고 하는 것이고, 둘째는 ‘장사가 남지 않는다’라는 것이며, 셋째는 ‘처녀가 시집  가지 않겠다’는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러한 관점은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세상을 정갈한 눈으로 간파했던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학의 단면으로 애교 같은 친근함이 배어난다. 이에 비해서 현대는 첨단과학 문명이 만개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되레 악의적인 거짓의 조작과 유포의 폐해가 임계 수준에 이른 게 아닐까.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폐해 때문일까. 사회 구석구석에서 이런저런 허위 사실이 횡행하고 있다. 허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코 정치판이지 싶다. 특히 최근에 이르러 정권 쟁취를 위해서 못할 말이나 행동이 없는 것 같이 비춰져 외면하고픈 때가 숱하다. 여야 모두가 처지가 뒤바뀌면 뉘랄 것 없이 태도가 하루아침에 표변하여 정반대의 주장이나 괴변을 토하는 철면피로 둔갑해 어이가 없어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게다가 툭하면 가짜뉴스, 노이즈 마케팅, 퍼 나르기, 편 가르기, 흑백논리, 벌떼 같은 펜덤 정치의 폐해에 빠져 이전투구 하는 모양새는 목불인견이다. 나라를 위한다고 큰소리치지만 민감한 정치적 현안에 맞닥뜨리면 대의보다는 소리(小利)에 얽매이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일쑤이다. 그런 때문일 게다. 대부분의 정객들은 지역 이기주의인 님비(NIMBY : Not In My Back Yard : ‘내 뒷마당에는 안 돼’)나 핌피(PIMFY “ Please In My Front Yard : ‘내 앞마당에 두세요’) 현상에 대해서 뚜렷한 소신이나 줏대가 없더라고 야박하게 평한다면 크나큰 결례로서 망발일까.


험한 세파를 잘도 이겨내고 출세 가도에서 승승장구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의 후당(後唐) 때 ‘오조팔성십일군(五朝八姓十一君)’을 모셨다던 재상 풍도(馮道)가 아닐까 싶다. 얼마나 처세술이 능했으면 ‘다섯 왕조에 걸쳐서 여덟 가지의 성(姓)을 가졌던 열 한 명의 임금을 섬겼을까’. 불가사의 한 일로 변신의 귀재이거나 천하제일의 책략가가 분명하다. 그가 남긴 처세관(處世觀)을 담은 시(詩)가 전당서(全唐書)의 설시편(舌詩篇)에서 전해지고 있다. 어느 하나도 허투루 할 내용이 없는 천금 같은 내용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간이나 쓸개가 없는 것처럼 처신했을 노회한 그의 가슴속 깊이 꽁꽁 감춰두었던 속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라는 의문은 영원히 풀 수 없는 화두같이 느껴짐은 왜일까.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舌是斬身刀)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閉口深藏舌)

가는 곳마다 몸이 평안하리라(安身處處牢)


원래 말이란 사용하는 이의 인품을 가늠할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 논리에 따라 감탄고토(甘呑苦吐) 식으로 배설물 쏟아 내듯 직설적으로 마구 내뱉는 언어폭력은 정상적인 사람이 할 일은 아니다. 아무리 상황의 지배가 불가피해도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는 엄연히 다른 게 참이며 진실이다. 또한 정치판에서 동일한 사안이나 문제의 경우는 여야로 처지가 뒤바뀌었다고 일조일석에 이전과 정반대로 돌변한다는 것은 괴변으로 언어도단이다. 이런 맥락에서 삼척동자도 실소를 금할 수 없는 함량 미달의 어릿광대는 공공의 적으로 몰려 퇴출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되새긴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형편 무인지경의 모리배들을 향해 중국의 송나라 시절에 편찬된 태평어람(太平御覽)*에서 준엄하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가고(病從口入),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禍從口出)’고. 지금도 깊이 되새김질 해볼 가치가 충분한 금언이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옛말로 이름 없는 민초들이 즐겨 입에 올렸었다. “말이 고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는 말은 아무리 곱씹어 봐도 오그랑장사를 할 위험이 어디에도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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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어람(太平御覽) : 중국의 송나라 시절에 이방(李昉) 등이 황제의 명을 받아 펴낸 백과사전이다. 고금의 사실을 널리 옛날 책 따위에서 구하고 1,860종의 서적으로부터 발췌하여 형법(刑法), 예악(禮樂), 의식(儀式) 따위의 55개 부문으로 분류하여 기술되어 있다.


한맥문학, 2023년 5월호(통권 392호), 2023년 4월 25일

(2023년 3월 18일 토요일)      

댓글목록

김춘봉님의 댓글

김춘봉 작성일

현대 사회의 문제점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물질문명과 동반성장해야 하는 정신문화의 침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 문명은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했습니다.
정신문화도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문인들이 - 국제 민간 환경보전단체 <그린피스>처럼
거짓과 진실 이야기를 경쟁적으로 하게 된다면, 발전할 수 있습니다.

“허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코 정치판이지 싶다.”
이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