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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카이사르와 나사렛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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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춘봉 댓글 2건 조회 322회 작성일 23-05-1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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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 (14) 카이사르와 나사렛 예수 YouTube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로마와 유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보나마나 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원으로 하는 <서력>을 사용하지 않고, <율리우스력>을 사용했을 겁니다.

 

로마인들은 예로부터 태음력을 사용했습니다.

12달 중에서, - 31일 큰 달 4, - 29일 작은 달 7, - 윤달(28) 1번이고, - 1년은 355일이었습니다.

정월은 지금의 3월에 해당하는 마르티우스 달이었습니다.

이처럼 정확하지 못한 역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밤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비롯하여 절기가 맞지 않았습니다.

수석대제관이 부족한 날짜를 계산해서 22, 또는 23일을 추가한 새 달력을 연말에 공표했습니다.

로마인들과는 달리, 이집트인들은 1년이 365일 달력을 사용했습니다.

우기 때마다 나일 강이 범람하면서 토사가 떠 내려와 삼각주를 덮었습니다. 거름을 주지 않아도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었습니다. 파종 시기를 알아내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고대 문명을 주도했던 이집트인들은 파종 시기를 계산할 수 있는 달력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시리우스 별은 70 여 일 동안 보이지 않다가 강물이 범람하기 전, 태양보다 먼저 지평선 위로 올라왔다가 이내 태양에 가려 보이지 않곤 했습니다.

기원전 2500년 경, 이 사실에 주목한 무명의 어느 천문학자가 시리우스 별이 뜨는 시점을 첫째 날로, 1년을 365일로 짠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이 달력으로 파종 시기를 계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류가 만든 달력 중에서 가장 지성적인 달력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카이사르가 기원전48년 폼페이우스가 살해당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갔다가 이집트 달력을 보고, 로마로 돌아와서는 천문학자 소시게네스로 하여금 4년마다 윤달이 들어가게 하고, 춘분을 323일로 고정시킨 <율리우스력>을 만들게 한 다음 기원전45년을 문명시대 원년으로 새 달력을 공포했습니다.

이 때, 공화정이 시작된 기원전509년을 원년으로 하자고 말한 이가 있었습니다. 로마의 최초 도서관장이었던 마르쿠스 테렌티우스(BC116~BC27)였습니다. 카이사르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럽인들은 16세기 무렵까지 <율리우스력>을 사용했습니다.

가톨릭 교황 그레고리우스13세가 부활한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새 달력으로 바꾸라고 지시했습니다.

가톨릭이 동방과 서방교회로 나뉘고, 서방교회의 53대 교황 요한1(470~526)가 동방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매년 바뀌는 부활절 날짜를 간단히 계산할 수 있는 교회력을 주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에게 만들게 해서 이미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유대 총독 빌라도 재임 중에 예수 사건이 있었고, <율리우스력>으로는 75년이었습니다. 엑시구스가 거기서 예수 나이 30을 뺀 달력이었습니다.

그레고리우스13세가 교회력 명칭을 <서력>으로 바꾸고, <율리우스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율리우스력> 1627104일이 - 하룻밤 사이에 45년이 사라지면서 <서력> 1582년이 되고, 날짜도 1015일로 바뀌는 소동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 처형으로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서기30년을 교회력 원년으로 하지 않고, 출생일을 기원으로 했기 때문에 인류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달력> 만큼은 '둘러치나 메치나매일반이 되는 겁니다.

 

문명시대 여명기에 살았던 카이사르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문명의 선각자였습니다.

예수가 말한 천국은 문명세계의 비유적 표현이었습니다.

유사한 질문을 다시 해봅니다.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누구나 한 번쯤 호기심을 가졌을 만한 의문이지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그동안 발설하지 못했다고 봐야 합니다.  

인류문명사를 되돌아보면 도약의 시기가 몇 번 있었고, 선각자들도 있었습니다.

문명세계는 당연히 인류가 가야할 열린 길입니다.

인류는 빈곤에서 풍요로, 지상에서 우주로, 삶의 터전을 넓혀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인류의 상상력은 끝이 없고, 문명세계도 한계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원전44년 카이사를 암살은 개인의 생사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명시대 여명기 먹구름이었고, 재발의 여지가 있는 악성 종양처럼 서기30년 유월절 예수사건으로 비화되었습니다. 카이사르 암살과 예수 십자가처형은 반문명적 반인륜적 범죄가 급증할 것이라는 불행의 전조였습니다.

 

중앙일보 2006519일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가 기독교 억압의 역사를 여는 프롤로그였다면, 영화 <다빈치 코드>는 기독교 억압의 역사는 이제 끝났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에필로그다. 이제 그 누구도 예수가 인간이었고,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자녀를 낳았고, 그 자손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과 같은 - 반 기독교적 주장을 해도 교회로 부터 핍박을 당하거나 종교재판을 받거나 화형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개적 선언이 된 것이다.”

콘스탄티누스의 니케아 공의회로 변질되기 시작한 기독교가 인간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고 향상시킨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유와 인권을 극도의 나락으로 빠뜨리고 인류를 커다란 불행과 재앙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란 역사적 진실이 상식화되는 도화선이기도 하다.”

 

예수가 문명의 선각자였다는 생소한 이야기는 겨자씨 비유에서 비롯된 가설입니다.

물증이 없으면 이론적 가설을 가지고 논쟁을 시작합니다.

이론이 도출되고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서 타당성을 입증하면 진리가 됩니다.

예수가 당신들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저리로 가라하면 갈 것이요 못할 것이 없다고 말 할 때, 바리새파 랍비들은 많은 자선이 평화를 가져온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이 있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처럼 말장난에 불과한 현학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잠언인 양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고, 예수를 볼 때마다 랍비들은 선험적 열등의식에 빠지곤 했습니다.

예수의 천국은 자아발견과 정신력 무한 신뢰이고, 깨달음에서 오는 거듭남이었습니다. 랍비 니고데모는 거듭남의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늙은이가 어떻게 두 번 모태에 들어갔다가 출생할 수 있느냐?”면서 음충맞게 능청을 떨다가 마침내 기회를 잡았습니다.

무고한 예수에게 십자가 처형을 지시한 빌라도 총독이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 시신을 매장할 것처럼 총독을 속이고, 동굴무덤에 방치했습니다.

그리스도 부활과 같은 허망지설을 유포하는 이단의 무리에게 예수를 넘겨준 꼴이 되는 겁니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 시신을 동굴무덤에 넣었다가 곧바로 어딘가에 숨겨놓고, 여인들이 나타났을 때 마태복음에 보면, 형상이 번개 같고 흰 옷 입은 천사, 마가복음에 보면 흰 옷 입은 청년, 누가복음에 보면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 요한복음에 보면 동산지기 같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여인들이 나타나니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살아났느니라. 그의 누웠던 자리를 보라!”

이따위 거짓말에 속은 여인들이 달려가서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갈릴리로 돌아갔고, 그로부터 50일 지난 오순절, 베다니 사람들이 다시 다락방에 모여 그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예루살렘 시가지 거점 확보 성공 자축행사를 했습니다.

오순절 사건은 사도행전에만 있는 스토리이고, 거기 등장하는 12제자는 사복음서 캐릭터를 공유한 다른 사람들 이야기라서, 우리가 그것을 논하는 것만으로도 난센스 코미디가 됩니다.

 

그 후, 서기34년 스데반 사건과 서기35년 이단자 체포 선봉에 섰던 사울이 다메섹에서 40인 랍비 특공대 이탈, 3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행적이 묘연하다가 바울로 개명을 하고, 서기38년 예루살렘에 나타나서는 예수가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주재했다는 근거 없는 말을 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살아생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다가 12제자 명단에도 이름이 오르지 못한 제3의 인물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기가 다락방에 있을 때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주재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처럼 서기55년경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 사 축사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은 허위사실을 유포하니까 -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서기65~70년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마가복음에서는 <예수신화>에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추가했고, 그 후에 나온 마태와 누가복음에서는 예수 탄생과 부활에 대한 세부 내용을 윤문했으며, 마지막에 나온 요한복음에서 기독교 신학이 견고해졌기 때문에 랍비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의 예수시신 동굴무덤 방치와 - 바울의 거짓말 <최후의 만찬>은 문명의 선각자 예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딴 세상 이야기였습니다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김춘봉님의 댓글의 댓글

김춘봉 작성일

아무 죄도 없으면서도 십자가 상에서 죽임을 당한 나사렛 예수가
문명의 선각자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제가 유일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하려고 작가 수업을 했습니다.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도 구입하고, 제작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