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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턱도 없었던 단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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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683회 작성일 23-05-0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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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도 없었던 단견


기억하고 싶지 않은 설익었던 지난날의 회상이다. 어린 시절 모든 게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마치 봄이 오면 새싹이 나고 묵은 등걸에서 움이 트고 꽃이 피며 가을이면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것처럼 말이다. 우매한 생각의 틀에 갇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얼마나 크고 작은 마찰이나 문제가 발생했었는지 지혜롭게 헤아려본 적이 없다. 지극히 좁고 얕은 눈에 비췬 세상은 관견(管見)*으로 들여다 본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주위에 얼마나 많은 불편과 누(累)를 끼쳤을까.


미욱한 때문이었을 게다. 서른이 넘어 결혼해 두 아이를 얻어 기르며 교육을 시키기 시작하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이 태어나 성장하고 교육을 받는 이면에 보이지 않는 부모의 정성과 땀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이전까지는 태어나면 스스로 성장하면서 각자가 타고난 운명에 따라 자신의 길을 가는 것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떨쳐내지 못했다.


농사는 씨앗을 뿌려 놓거나 모종을 심어두면 그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자연(날씨)과 맞서며 무더운 여름날 김매고 거름 주며 쏟는 농부의 피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전제되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미처 몰랐었다. 이는 어쩌면 세상사에서 겉으로 보이는 단세포적인 사실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웅변하는 단면이지 싶다. 모든 사물이나 이치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정신이나 거기에 담긴 뜻이 더욱 크고 범접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측면에서 현명함과 거리가 먼 내 자신이 미덥지 못해도 어쩌겠는가. 타고난 본성이 그랬던 때문에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게 자연의 이치이다. 그럴지라도 전적으로 자연에 맡기면 사람이 원하는 곳으로 맞춰 흐르거나 물길을 바꾸지 않는다. 이 때문에 때로는 댐(dam), 인공수로, 보(洑), 겉도랑(명거(明渠)), 속도랑(암거(暗渠)), 수도관(水道管) 따위를 축조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물길을 돌리거나 양을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조차도 자연 그대로 두면 소용이 닿거나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없어 적정한 조치는 어쩔 도리가 없는 불가결한 대응인 셈이다. 이는 마치 홍시(紅柹)가 먹고 싶을 때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려도 원하는 대로 입으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에 적합한 노력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 원리가 아닐까. 


어린 시절 어리석게도 인품은 연륜의 길이와 정비례한다고 믿어왔다. 그런 관점에서 내 자신의 젊은 날의 실수나 흠결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예사였다. 그 이면에는 아마도 세월 따라 고매해지게 되면 지난날의 잡다한 흠결은 자연스럽게 묻혀 깔끔하게 해결되리라는 가당치도 않은 교만이 그리 부추겼지 싶다. 그런 생각은 크나큰 착각이고 돌이키기 어려운 오판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낼 모레이면 산수(傘壽)*에 이른 지금 그렇게 되기는커녕 젊은 날에 견줄 때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이런 이유에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품성이 변한다는 생각은 어불성설로 어처구니없는 희망 사항에 불과했지 싶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대부분 모자라거나 어리석음을 면키 어려운 경지에 머물렀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스무 해 이상을 동네 뒷산의 같은 등산로를 오르내린 것은 건강을 지키는데 가장 빼어난 결정이었지 싶다. 야트막한 산의 정상(323m)을 오가는 노정으로서 왕복 10km 남짓한 거리일지라도 말이다. 매주 5~6회 씩 오갔던 세월이 어언 스무 해를 훌쩍 넘기고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식으로 마음도 잘 다스리면 행복이 자연스럽게 따라 오리니 밝아 온 오늘을 보람되게 보내고 또 다른 내일의 희망을 그려보련다.


오랜 경험의 축적으로 선인들은 세상에 공짜로 되는 일이 없다는 지혜를 깨우치고 “땀을 흘리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하여 “무한불성(無汗不成)”이라고 일렀던가 보다. 이 말은 중국의 송(宋) 나라 학자인 여정덕(黎靖德)이 편찬했던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실린 글이다. “양기가 발하면 금석(金石)이 뚫어지며(陽氣發處 金石亦透), 정신을 한 데 모으면 어떤 일이라도 이루어진다(精神一到 何事不成)”는 말에서 무한불성(無汗不成)이 비롯되었다는 전언(傳言)이다. 이를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에 해당하지 싶다. 한편, 아무리 편법이나 술수가 난무하는 물질 만능의 세상이라고 해도 진정한 땀과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게 없음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그럼에도 험한 세파에 휘둘리다 보면 이런 단순한 진리를 망각하기도 해 패가망신에 이르는 경우가 숱하게 많다. 따라서 어떤 경우일지라도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얻음이나 이룸은 사상누각이며 신기루 같은 허상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비껴서는 삶이라면 더할 수 없는 축복일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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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견(管見) : ‘대롱 구멍으로 사물을 본다’는 뜻으로, 좁은 소견이나 자기의 소견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다. 이는 장자(莊子)의 추수편(秋水篇과 사기(史記)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 산수(傘壽) : 80세를 이른다.  여기서 우산  산(傘)자를 약자(略字)로 쓰면 여덟 팔(八) 밑에 열 십(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八 + 十⌟은 80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칭이다.


춘하추동, 창간호, 2023년 3월 25일

(2022년 10월 19일 수요일)


댓글목록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선생님처럼 원하는 바를 다 이루시고 반평생을 후학양성에 온 힘을 다 쏟으셨는데 단세포적인 생각이라고 하심은 부당합니다. 매사 최선을 다해 사신 분이 선생님이니까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장삼이사 갑남을녀의 삶이 아닐진대  말이지요.
그러면 저희 같은 특히 저같은 사람은 평생 직업에 종사하는 경제홟동  한번  한 적이 없으니까요. 얼마나 세상을 탱자탱자 살았는지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만약 스무 살로 리셋팅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값지게 살것 같습니다. 자기주도적인 삶 말입니다.

선생님, 철쭉과 연산홍이 참 예쁜 계절입니다.
운동 많이 하시며 건강 잘 다지십시오^^

김춘봉님의 댓글

김춘봉 작성일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게 자연의 이치이다. 그럴지라도 전적으로 자연에 맡기면 사람이 원하는 곳으로 맞춰 흐르거나 물길을 바꾸지 않는다. 이 때문에 때로는 댐, 인공수로, 보, 겉도랑, 속도랑, 수도관 따위를 축조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 물길을 바꾸는 토목공사에 종사했습니다.
신수를 넘어 선 지금도 - 물길을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