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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공모전 대상_진심으로 대하기/정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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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949회 작성일 19-11-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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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대하기

- 테마수필 ‘친구’를 읽고 -

 


나에겐 친구가 없다. 지천명에 이르러서야 친구 소중함을 간신히 깨닫게 되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삶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나는 가난한 집안의 4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게다가 내 나이 아홉 살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그 생활의 곤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노닥거릴 시간은커녕 책 읽을 시간마저 내겐 주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두부를 만드실 때엔 조수 노릇을 해야 했고, 엄마가 두부를 팔러 나가시면 꼬맹이 동생들과 씨름해야 했다. 그나마 연년생 여동생이 내 곁에서 말동무가 되어주고 힘을 덜어준 게 유일한 기쁨이었다. 만약 내게 고향친구가 한 명 있다면, 바로 내 여동생일 것이다.

초등(국민)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나는 과감히 고향을 떠났다. 낮에는 방직공장의 여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공장 내에 있는 학교에서 졸음과 싸워가며 공부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은 내가 써볼 겨를도 없이 동생들의 뱃속으로, 입성으로 사라졌다. 빵집 한 번 가보질 못했으니, 친구들이 생길 턱이 없었다. 한판암님의 <나의 거울>에 나오는 친구처럼, 자기 자신이 더 곤궁하고 어려운 처지였는데도 친구들의 버팀목이 되어주고자 노력했던 친구는 내 곁에 없었다. 아니, 속옷조차 변변한 게 없을 정도로 가난한 게 너무 부끄러워서 늘 혼자 책만 읽었던 내 모습이, 친구들 눈에는 잘난 체하는 것으로 비쳐졌을지도 모른다. 다 똑같이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산업체학교에 들어왔음에도, 난 왜 그토록 못나게 굴었을까. 그래도 내게 손을 내밀어주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김영태님의 <티그리스 강가에서 보내온 편지>처럼 진정한 자존심과 가족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친구가 내겐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내가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애가 하나 있었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피부가 하얀 상큼한 애였다. 맨 처음 같은 방을 배정받았을 때 첫눈에 그 애한테 호감을 느꼈으나, 새까맣고 못 생긴 내 몰골이 하도 부끄러워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런데 그 애는 5명이 함께 쓰는 우리 방에서 나하고만 말을 섞지 않았다. 게다가 조장(방장) 언니와 다른 애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무시하고 조롱하려 들었다. 나는 섭섭하고 억울했으나, 그런 마음을 책 읽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그 애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드잡이를 벌이고 말았다. 나의 낡은 속옷을 들추며 모욕 주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싸움이 있은 후로 내 주위에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난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했다.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것 같다는 외로움이,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텅 빈 가슴을 할퀴고 물어뜯었다. 그 아픔을 견디기 위해, 난 무서울 정도로 책에 매달렸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책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5년여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나는 책을 읽다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진정한 친구를 얻고 싶으면 내가 먼저 그 사람의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과, 친구 사이에 가장 필요한 단어는 진심이 깃든 ‘사과와 용서’라는 말이 내 가슴속으로 아프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강경란님이 <따로 또 같이>란 글에서 밝혔듯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그런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난 그때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다른 친구들이 내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내가 타인의 삶에 있어 해바라기가 되어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만약 그 친구와 싸움을 벌이지 않고 내가 먼저 살갑게 다가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야간고등학교를 마친 나는 작은 회사의 경리로 취직했다. 공장보다 대우도 나았고 월급도 더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곳에서 거래처 손님이었던 현재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나의 첫 오빠이자 첫 친구요, 첫사랑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내게 오빠로, 친구로, 연인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세 가지 역할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은, 언제나 나를 먼저 감싸주고 배려해주려는 ‘친구의 마음’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상처입고 고통 받은 내 영혼을 항상 따뜻하게 보듬어주었다. 고현숙님이 친구를 사귀는 세 가지 기준을 ‘공통점이 있어야 하고, 신용이 좋아야 하고, 친구를 귀찮게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내 친구의 집>에서 말씀하셨는데, 남편은 그 세 가지 기준을 아우를 수 있는 ‘배려’까지 더 얹어주었던 것이다.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을 먼저 갖추지 못하면, 그 세 가지 기준은 오히려 친구의 손발을 묶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남편은 이미 알고 있었을까? 마음이 편해진 나는 남편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

남편 사업이 잘 되고 아이들이 잘 자랄 때엔 친구가 더더욱 필요 없었다. 남편과 가족이 곧 내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IMF를 맞아 남편 사업은 도산했고, 5년 전에는 간암까지 걸려버렸다. 부정(不貞)한 짓은 아니지만 가족과 먹고 살기 위해서 부끄러운 직업을 갖게 되었고, 당연히 친구들을 피해 멀리 이사하게 되었다. 임영숙님의 <늪>은 아니더라도,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칠수록 ‘인생의 늪’으로 더욱 깊이 빠져든다는 사실을 그땐 깨닫지 못했다. 하찮은 자존심 때문에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여동생과도 심하게 다투게 되었고, 나와 남편은 점점 더 꽁꽁 숨어버렸다. 스스로 친구들로부터 멀어져버린 것이다.

요즘은 더욱 힘들다. 그냥 죽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살려달라고 온 힘으로 소리 지르며 SOS를 보내던 친구를 지켜주지 못해 가슴이 아픈 김은미님의 <일단 만나자>를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생을 마감한다면, 이 세상의 누군가는 가슴 아파 할 것이 아닌가. 이 책(친구/해드림)을 읽고 얻은 것 중, 가장 값진 깨달음이다. 오늘 이후로,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볼 생각이다.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여동생에게 손을 내밀어 화해를 시도할 생각이다. 친구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모른 채, 독불장군처럼 살아온 내 인생을 참회할 생각이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그 어떤 사람도, 진심으로 대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반드시 보여준다고 한다. 동물이나 식물도 진심으로 대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정확히 구별해낸다고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임에랴. 특히, 친한 친구 사이는 근육처럼 이어져 있다. 근육은 과부하가 걸리면 손상된다. 고통스럽다. 그러나 회복되는 과정에서 그 근육은 더욱 굵어지고 튼튼해진다. 친구 사이 또한 그렇다. 서로의 잘못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용서함으로써 더욱 진실한 친구 사이로 발전할 수 있고, 또 서로를 통해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게 되며, 마침내는 세상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친한 친구가 되었을 때 세상은 더욱 밝아지고, 사람들은 행복한 삶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까. 이젠 나도 세상으로 나아가서 행복해지고 싶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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