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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피붙이들의 애환, 그리고 동생의 기도 -송현정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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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공모전 [동상] 피붙이들의 애환, 그리고 동생의 기도 -송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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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600회 작성일 19-11-2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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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붙이들의 애환, 그리고 동생의 기도


대 뜸 몽둥이는 들어가 그 볼기짝을 후려갈겼다. 아우는 모로 몸을 꺾더니 시나브로 찌그러진다. 뒤미처 앞정강이를 때렸다, 등을 팼다. 일지 못할 만치 매는 내리었다. 체면을 불구하고 땅에 엎드리어 엉엉 울도록 매는 내리었다… 쓰러진 아우를 일으키어 등에 업고 일어섰다. 언제나 철이 날는지 딱한 일이었다. 속 썩는 한 숨을 후 하고 내뿜는다. 그리고 어청어청 고개를 묵묵히 내려온 다.                                                                                                                                    -김유정, <만무방>


이상하게도 수필을 읽는 내내 김유정의 소설 <만무방>의 마지막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치열하게 속고 속이는 사람들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순수함의 끝자락을 놓지 못하는 동생을, 형이 몽둥이로 철썩철썩 때려 들쳐 업고 길을 내려온다. 학창시절, 이 소설을 읽고 펑펑 울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만무방인 못난 형이지만 동생을 지키기 위해 몽둥이로 때려야만 하는 그 마음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 때 날 울렸던 형의 마음이 『띠앗머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형제들의 이야기에 ‘흥부놀부’가 아니라 <만무방>이 떠오른 건 책 한편의 글귀처럼 피붙이들의 애환이 숨쉬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부모 때문에 묶여 함부로 끊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지만(<꿈에 잡혀서>), 설사 끊는다 해도 그들은 함께 아프고 함께 기뻤다.


『띠앗머리』에는 병상에 있는 아우를 향한 눈을 거둘 수 없는 형이 있는가 하면(<아우>), 방황과 곤궁 속에 살아온 누이의 세월에 한없이 회한을 느끼는 오라버니가 있고(<누이의 세월>), 매섭게 잘려버린 동생의 손가락 한마디를 어머니만큼이나 대신하고픈 언니가 있다(<아픈 손가락>). 그리고 부모를 잃어 세상을 함께 저버리고자 했던 일이 있었음에도 장성해 준 형제들을 향해 느끼는 감사가 있고(<아픈 슬픔이여 이제는 안녕>), 한창의 나이에 돈을 벌어 아무 걱정 없이 살게 해주었던, 지금은 함께 늙어가는 언니들을 향한 존경이 있고(<파란대문>), 상해버린 오빠의 오장육부에 새살이 돋길 바랐던 기억에 눈물지으며 오빠의 앞날에 한없이 보내는 축복이 있다(<녹두죽>). 이렇게 수필 속 별의별 관계도, 별의별 감정도 결국 ‘애환’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함께 한 슬픔이 있었기에 기쁨으로 지난날을 함께 혹은 추억하며 살아가는.


그 중에서도 나에게 참 많은 질문을 던져준 이야기들이 있다. <오라버니>에는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존재하는 조금은 역설적인 띠앗이 드러난다. 오라버니가 온다는 말에 맛있는 생선을 사 대접하면서도 혹시나 돈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 누이의 모습. 이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은, 우리 또한 각자의 삶과 사정이 순수한 그 무엇과의 괴리감을 일으키곤 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모든 상황을 제쳐두고 위하는 맹목적인 관계는 이젠 부모자식 간에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니 말이다.

그런데 ‘장님이 청맹과니 걱정하듯’ 자신이 더 아프면서도 누이를 걱정하는 오라버니의 모습에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그때 누이가 떠올린 어머니는 노름만 하던 외삼촌에게 계속 돈을 건넨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제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더불어 <얘들아 너희에게 물려줄 가보는>에서 자식보다도 당신의 동생에게 더 헌신하는 아버지를 통해 세상의 이해(利害)관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순수한 띠앗’의 모습을 조금 더 구체화한다. 돌이켜 생각하니 소설 <만무방>의 형제들에 내가 눈물지었던 것도, 정말 힘든 현실이지만 그래도 같이 잘 살아보자고 몸과 마음으로 끌어안는 애틋한 띠앗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반면, <꿈에 잡혀서>는 솔직한 고백으로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를 ‘솔직하다’고 느낀 것은 내가 토해낼 수 없었던 죄책감을 여실히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것이 있다면 수필 속의 언니는 변덕스럽고 고집스러운 동생을 온전히 감당함으로 꿈속에서 동생을 버렸던 죄의 대가를 묵묵히 치른 반면, 난 계속 도망을 다녔다는 것이다.

동생이 내 자리를 빼앗는다고 느끼고 미워한 시절이 꽤 길었다. 내 꿈속에서 동생은 항상 아팠고, 내가 그린 가족 그림에서는 이상한 얼굴로 있었다. 결국 이를 다스리지 못한 탓에 유달리 혹독했던 사춘기 시절엔, 옆에 있는 것조차 이유가 되어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뒤틀릴 대로 뒤틀렸다. 정말 끊을 수 없어 이어온 형제의 연이었는데 나보다 한참이나 먼저 철이 동생은 이 못난 누나를 위해 기도를 한다. 우리 누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달라고. 사람이 철이 들면서 수치심이라는 게 생겨서 난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데 참 용감한 우리 동생 때문에 많이도 울었다. <나도 이젠 저런 언니이고 싶다>처럼 단순한 고백이 이 순간에도 혀끝에 맴돈다.


치기어린 시절에 겪는 한때의 우애가 아니라 애환을 함께 한 뒤 성숙한 자리에서 고백하는 작가 개개인들의 이야기가 참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내 마음 속 가시를 숨기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훈이’들이 많았던 시절(<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과 비교하면 너무 많은 것이 변해버린 지금이지만, 여전히 형제자매들은 존재하고 저마다의 띠앗을 가지고 있다. 수필 속 형제들처럼, 어떤 삶이든 그 삶을 나눌 수 있는 성숙한 띠앗이 나의 마음에도 자리 잡아 이를 솔직하게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내 마음 속 한 줄기 피어난 용기를 빌어 세상 누구보다 착한 동생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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