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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우애, 당신이라는 살아있음 - 이지안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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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공모전 [은상] 우애, 당신이라는 살아있음 - 이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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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629회 작성일 19-11-2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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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 당신이라는 살아 있음>


 얇고 가벼웠다. 띠앗머리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집어든 책이었다. 형제나 자매 사이의 우애심을 뜻하는 ‘띠앗’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했다. 우애심이라... 무심코 열었다가 닫는 것을 잊어버린 서랍처럼, 마음의 앞코가 살짝 앞으로 기울어짐을 느끼며, 나는 가만 가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다세대 주택의 조곤조곤한 온기 같은 스무 편의 수필들이 모여 있었다. 읽어가는 내내, 마치 낯선 이들 몇몇의 손을 잡고 낯익은 곳을 동반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타인의 사연들과 나의 그것들이 교직될 때 마음이 동하고 마는 사소한 순간순간들, 그 얄팍한 감정의 스밈이 얼얼한 통증이 되어, 시나브로 마음속에 둔중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빌린 삼천 원은 영원히 갚을 수 없을 것 같아 미안하다, 고 동생에게 참혹한 유서를 써야 했던 오빠. <녹두죽>의 이야기가 가장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토록 유약했던 오빠의 유서를 읽어야 했던 동생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런가 하면 동생에게 푼돈을 빌려서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각오 밖에는 할 수 없었던 오빠의 심정이란 또 얼마나 가슴 저미는 것이었을지... 그때의 오빠가 결국에는 죽음에 실패하고 아직도 살아 건재하심을 읽었을 때, 나도 모르게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동생의 눈물과 정성으로 끓여졌을 그 녹두죽이, 오빠에게는 새로운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 유서를 버리지 않고 오랜 세월 남몰래 보관했다가, 오빠에게 은밀히 돌려준 동생의 사려 깊은 마음에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곡진한 삶을 기꺼이 지켜내 준 오빠의 용기에 대해, 동생만이 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격려이자 따뜻한 감사가 아니었을까.


 <아픈 슬픔이여 이제는 안녕>을 읽는 동안에는 형의 사정이 안쓰러워 자꾸만 눈앞이 흐려졌다. 내가 비슷한 입장이었기 때문일까. 어머니를 여의고, 어린 동생들을 거느리게 된 형을 보니, 그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철없는 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자장면과 탕수육을 사주면서, 수백 수천 번 세상을 등질 결심을 홀로, 모질게 곱씹었을 그 외로운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온 까닭이다. 결국 어린 동생들을 위해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삶을 선택하기로 한 대목에서는 잠깐이었지만 울컥, 가슴이 다 먹먹해졌다. 어떻게 보면 삶이란 죽음보다 강한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죽음을 선택하는 용기보다 삶을 선택하는 용기를 목도하는 일이, 왜 이토록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겠는가,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세상의 모든 우애란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동시에 냉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늘 잘해주고 싶었지만, 마음과 달리 동생의 모든 것을 포용해주며 살지는 못했다. 어떤 때는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이해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였다. 또 어떤 때는 나의 한계를 넘어서서까지 이해해보려고 하기도 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돕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기도 했다. 동생과의 관계가 좋았던 적도, 싫었던 적도, 기뻤던 적도, 슬펐던 적도, 아름다웠던 적도, 추했던 적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의 섞여있음. 단 하나의 결론으로 일목요연하게 모여지지 않는 모든 순간의 이질적인 감정들. 돌아보니 그런 것들이 ‘띠앗’이라는 우주를 이루고 있었구나. 그 우주의 칠흑 속을 자매라는 ‘따로, 또 같은 존재’의 날개를 달고 함께 날아왔구나. 우애의 힘이 없었다면 무사히 지나오지 못했을, 지나온 인생의 많은 블랙홀들이 생각난다. 그러자 나의 자매들, 그 유목의 항적이 문득 저려온다. 그저 고맙다, 고마울 뿐이다. 살아서 함께해 준 모든 당신이...


 문득 생각에 잠겨본다. 우리에게 우애란 무엇이었을까. <누이의 세월>에서처럼, 집을 나가 손가락이 네 개나 잘려나가는 고생 끝에 7년 만에 돌아와도 다시 맞아 주는 기꺼운 마음의 보금자리였을까. 아니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다 해도 다시금 찾아갈 수밖에 없었을 마음의 고향집이었을까. 그러나 같은 피를 나누었다고 해서 모두가 완숙한 우애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날로 각박해지는 작금의 시대에는 <색깔과 성이 다를지라도>에서 보여준 것처럼, 같은 피를 나누지 않고도 존재하는 우애의 방식도 분명 있을테니까. 다만 우리에게는, 피가 섞였든 섞이지 않았든, 함께 자란 집의 <파란 대문>을 밀고 어디론가 하나 둘 사라졌을지라도,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 분명한 형제와 자매들이 있다. 윙윙, 차디찬 겨울바람 속에, 한없이 나부끼며 매운 계절을 견디는 앙상한 가지들이 있다. 그들이 제각각 뻗어 있지만 결국에는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본다.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 없다 했던가. 가지 많음으로 인해, 더 세찬, 더 많은 바람을 맞아야 했을지라도, 그 바람의 질곡을 가르며 더 구성진 노래를 만들어 낼 줄 알았던 우리의 형과 아우, 언니 오빠들... 그 모든 <아픈 손가락>들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매운 세상의 칼바람 앞에, 한 생을 든든히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단단한 가지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인간을 깊이 있게 이해한다는 것은 인류를 깊이 있게 이해한다는 뜻이라던 릴케가 스쳐간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며, 그것만이 중요한 일이었다던 그의 고백이 이 순간 명징한 이유는 무엇일까. 살아 있음, 그 자체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사람들. 괴로워도 슬퍼도, 끝끝내 살아남아 서로에게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어주기에 우리는 오늘도 조금 덜 외로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대, 누군가의 형제여, 자매여. 바라건대, 당신도 그곳에서 아름답게 살아있어 주기를. 띠앗머리라... 훗, 다시 보니 꽤나 묵직한 책이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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