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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무딘 면도날 - 정재연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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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공모전 [동상] 무딘 면도날 - 정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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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779회 작성일 19-11-2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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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딘 면도날

-‘어머니를 준 男子’를 읽고 나서


아버지, 하면 내게 너무나 마음 무겁게 하는 단어다. 이번 주제가 ‘아버지’라는 것을 듣고 난 아마 지금 이 글을 적지 못할 거로 생각했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북받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게 늘 애증(愛憎)의 대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 꿈은 아버지와 떨어져 독립해 사는 것이라고 당차게 얘기하곤 했다. 아니 당차다기보다는 설움에 북받친 어린 마음의 작은 반항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그리고 술이 잔뜩 취해서 오시는 날엔 자주 행패를 부리셨다. 그럴 때면 난 방안에서 혼자 난 두려움과 분노에 떨며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몇 번 보게 되자 다섯 살 꼬마인 내게 어머니가 하시는 결정은 늘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어머니의 성품은 늘 곧고 올바르시다고 생각했다. 그에 반해 아버지는 원망스럽고 무능력한 분이었다. ‘호랑이 또 호랑이’에서 필자는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말한다. ‘아! 그러고 보니 호랑이를 닮은 아버지는 호랑이띠다.’라고. 하지만, 난 아버지가 무슨 띠인지도 아직 모른다. 생신도 일부러 까먹곤 한다. 이제 대학교 2학년이 된 어른 딸내미의 소심한 복수가 계속되나 보다.

이런 내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용기가 되었던 건 글 대부분에 공통으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서려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삶의 응어리로 남겨둔 채 살아가더라도 나이가 들어 자신이 아버지가 되거나 아버지가 된 남편을 보게 되는 것은 아버지를 가슴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분의 부재가 있고 나서야 깊은 후회는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후회는 곧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이어졌다. 대부분 사람이 사람의 빈자리를 느끼고 나서야 더 그리워하지마는 자식이 아버지를 그분의 부재 후에 그리워하는 것은 세상의 다른 그리운 마음보다 더 깊게 사무치는 것 같았다. ‘소월 시인의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시구는 어찌 임을 향한 애절한 사랑만이 가당타 할까. 아버지를 그리는 딸의 심정인들 그에 못하랴.‘라는 필자의 절절한 그리움이 내게도 어느새 전해졌다.

‘그날이 오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내 맘에 일침을 가하였다. 평생을 아버지를 일부러 배척하고 부정했던 필자는 시간 앞에 무기력해지며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간다. 그동안 아버지를 일부러 밀어냈던 자신을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후회하고 반성한다. 그렇게 해서 마음의 얼음 덩어리를 햇빛으로 조금씩 녹여 가고 있었다. ‘몇 달이고 집을 나가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기다리기보다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성모상 앞에 기도하던 날도 여러 번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수없이 잠들기 전 눈물을 쏟아내며 하늘에 기도했었다. 가족들에게 염치없게도 나의 코 묻은 용돈을 당당하게 족집게처럼 찾아 자신의 용돈으로 쓰시던 것이 분하고 억울하였다. 어머니께 늘 자신의 술값으로 쓰일 용돈을 채근하시는 것도 내게 원망과 분노로 응어리져 아직도 남아있다. 어젯밤 술이 만취 되셔서 어머니께 행패를 부리시고도 아무렇지 않게 누워 하루 온종일 쉬는 아버지를 보면 여름날 아스팔트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숨이 퍽퍽 막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하루에도 수만 번 하늘에 아버지가 차라리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약한 분이 되어 계셨다. 그리고 시간 앞에서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내 모진 마음까지도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예전에 갈았던 복수의 칼을 다시 날카롭게 세워보려 하여도 그럴 수가 없다. 아버지도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가족은 네 사람이 모여 있을 때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네 사람을 흩어지지 않고 함께 끌어안고 지키기 위해 아버지가 단 한 번의 표현도 없이 지금껏 묵묵히 버텨 오신 세월을 생각하니 성인이 되어 아버지를 이길 수 있을 때가 되어도 난 분노의 칼을 꺼내 들 수가 없다.

‘아버님의 걸음’을 읽으며 나는 못되게도 조금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아직 내 옹졸한 마음속에 무뎌진 면도칼이라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남동생과 내가 크면서 가끔 아버지의 횡포에 힘을 모아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니 네 식구가 밖으로 나가면 난 어색하기만 하다. 가족끼리 길을 걷다 보면 늘 아버지는 혼자 떨어져 걸으셨다. 늘 앞서서 홀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는 점점 연세가 드시고 나와 동생이 커가면서 아버지의 태도도 내가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런데도 아직 가족 모두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지 아버지 홀로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시고 1,2m 보폭을 아직도 맞추지 못하고 있다.

요 며칠 동안 아버지와 나는 화해 아닌 화해를 했다. 버스 운전을 하시는 아버지가 내게 편지 한 통을 써달라고 부탁을 하신 것이다. 직장일로 바쁘신 어머니께 부탁하기에는 곤란하셨을 터이고 무뚝뚝하고 공부한단 핑계로 바쁜 남동생에게도 부탁하기도 어려워 내게 말씀을 꺼내신 것 같았다. 이야기인즉슨 버스를 운행하시던 중 모르는 분에게 책 선물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내가 무슨 책 선물이냐고 하니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수필집을 받으셨다고 했다. 아버지가 버스를 운전하시면서 손님에게 베풀었던 친절을 한 손님이 자신의 수필 책에 이야기로 쓰신 것이다. 그러면서 그 작가 분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고 싶으시다는 말씀이셨다. 아버지께서 자신의 일에 노력하시는 것을 알게 되자 내게 아버지가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귀한 책 선물에 작가 분에게 편지 쓰는 일을 도와드리고 나니 편지 한 통으로 아버지와 나 사이가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글을 읽고 나자 ‘그동안 난 얼마나 엄살을 부려왔나.’ 하며 사뭇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렸을 적 ‘난 커서 아빠랑 결혼할 거야!’라고 말하던 또래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부럽고 얄미운 맘에 남몰래 애꿎은 눈물만 흘리곤 했다. 아마 다른 친구들은 다들 좋은 아빠, 부자 아빠랑 지내고 있는데 나만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뛰었던 것은 세상은 모든 아버지가 다들 우리 아버지 같은 것을 모르고 혼자서 엄살을 부렸다는 생각에 후회가 들었기 때문이다. 새벽녘 라디오를 듣다 보면 간혹 아버지에 대한 가슴 찡한 사랑과 감사를 담은 라디오 사연이 흘러나오곤 한다. 그럴 때면 어찌나 내 가슴을 쥐고 먹먹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게 되는지 모른다. 아마 내게 아버지가 없다며 부정해온 시간이 서럽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원망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내 소심한 복수는 계속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칼날이 무딘 만큼 소심한 복수는 곧 끝이 날 것 같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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