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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남자는 강하지만 아버지는 약하다. - 윤혜영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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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공모전 [금상] 남자는 강하지만 아버지는 약하다. - 윤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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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697회 작성일 19-11-2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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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강하지만 아버지는 약하다.



 

수필집 한 권을 손에 들고 기차를 탄다. 몇 달 만에 가는 부산이다.

“언제쯤 도착하노? 저녁은 먹었나?”

걱정스런 엄마의 목소리 뒤로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분명 어깨 너머로 내 목소리를 듣고 한마디씩 거들며 웃고 계시리라. 아버지는 좀처럼 나와 직접 통화하시는 일이 없다.


어머니를 준 남자.

책의 이름이 참 인상적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처럼 어머니란 여자보다 성숙된, 보다 고차원적인 역할이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에 아버지는 여전히 남자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왜일까? 씨만 뿌리고 홀연히 떠나버리는 말 그래도 ‘수컷’의 역할만 하는 아버지도 있겠지만 이 땅의 대부분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힘겹지만 떳떳하게 살아간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대표적 이미지는 확실히 어머니보다는 덜 희생적이고 덜 인내하며 그래서인지 더 외로워 보이는 존재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이렇게 기가 막힌 별칭을 지어준 당돌한 책이라니.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나는 어머니를 준 남자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수필 속 아버지의 모습은 다양하다.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부터 무심한 듯 속정 깊은 아버지, 술 먹고 오입질하고 난동부리는 아버지, 그리고 얼굴조차 모르지만 가슴 시린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아버지까지. 따뜻하고 소중한 추억도 많지만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고통 받은 가족들의 얘기도 많았다. 역시 아버지란, 아니 남자란, 여자보다는 조금 덜 현명하고 종종 부적절한 행동을 저지르고야 마는 존재들인 것인가.


그 중에서도 가장 ‘너무한다’는 느낌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수필은 『호랑이 그리고 또 호랑이』이다. 수컷호랑이처럼 씨만 왕성하게 뿌리고 자식들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는 자식은 굶주리다 못해 회충이 역류할 지경인데 곡괭이를 들고 돈 내놓으라며 횡포를 부린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리고 어머니마저 화병을 얻어 돌아가신 후 동생들과 힘겹게 살아온 지금, 그때의 기세 등등한 아버지는 어디 가고 매달 용돈을 타러 찾아오는 늙고 염치없는 아버지만이 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와 고통이 꽤 큰 듯 했지만 그럼에도 이 글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저자의 은근한 마음이 묻어났다. 그것은 성급한 용서나 화해가 아닌 아버지를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따뜻함이었다. ‘그러고 보니 수컷호랑이를 닮은 아버지는 호랑이띠다’라고 말하는 마지막 문장에서 아버지에 대한 복수의 칼날이 이제는 정말 무뎌져 버렸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마음은 어쩌면 아버지와 함께 남산에 올랐을 때 단 한번 느꼈다는 따뜻한 손길이 여전한 그리움으로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새벽운무』의 아버지 또한 절을 찾아 명상에 잠기고 2년 동안이나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등 평범하지 않다. 한때는 법조인을 꿈꾸었으나 평생을 병마에 시달리며 마음의 번뇌를 잊기 위해 종교에 의탁하신 아버지. 아버지의 마음에 풀리지 않는 답답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아 읽는 내내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저자의 어린시절 기억 속에서 나비처럼 승무를 추던 아버지의 모습은 펼치지 못한 꿈을 신앙으로 승화시킨 아버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었을까.


그런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무렵, 약주를 하고 오신 아버지께서 언니와 나에게 돈을 주며 과자와 음료수를 사오라고 하셨다. 신이 나서 과자를 잔뜩 사온 우리는 아버지와 파티를 했다. 무슨 파티냐고 묻자 ‘아빠가 떨어진 기념’이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도 등단에 떨어진 기념으로 파티를 한다는 아버지 말이 꽤 쓸쓸하게 느껴졌다.

청년시절부터 글을 써오신 아버지는 오랫동안 문학에 꿈을 두고 계셨다. 생계전선에서 물러선 환갑을 지나서야 등단도 하고 작품활동도 부지런히 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어쩌면 그날의 기념파티 이후로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미루신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술 먹고 난동을 부리는 아버지든, 단 한번도 정다운 말을 건네지 않은 무뚝뚝한 아버지든, 모든 아버지에겐 나약함이 있다. 그 나약함이 때로는 거친 방황으로 또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날카로움으로 나타날 때도 있지만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또한 그런 여리고 약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 때문인지 이 책의 모든 수필에는 아버지와의 따뜻한 추억이 하나씩은 꼭 있다. 그래서 읽은 내내 마음이 훈훈해지고 나 자신도 모르게 약한 아버지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남자는 강하지만 아버지는 약하다. 어쩌면 남자의 강함은 아버지의 약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강함과 약함이 공존하고 있기에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때로 거칠고 난폭하다가도 상처받고 고뇌하며 무심하지만 따사롭다.
기차는 곧 부산에 도착할 것이다. 밖이 깜깜해서 유리창엔 내 얼굴만 보였다.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때로 나 자신이 서서히 휘발되어 버리는 듯한 위기감을 느낄 때마다 같은 이유로 고민하셨을 젊은 아버지를 떠올린다. 약한 아버지, 그러나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분이고 나에게 어머니를 준 남자이며 그 남자는 강하다. 전화를 걸어도 언제나 엄마에게 넘겨버리기 일수인 수줍음 많은 아버지에게 오늘은 꼭 사랑한다고 말씀 드려야겠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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