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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2-18 10:22
  • 자투리에 문패달기
  • 정동호 수필가
  • 애틋한 부부 수필집
  • 2013-04-15
  • 신국판
  • 978-89-93506-73-0
  • 12,000원

본문

펴내는 글

새봄에 쓰는 편지

앞가림에 쫓겨 아등바등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서로 손 잡고 걸어온 40여 년, 낙엽을 밟으며 부스럭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파도에 휩쓸리는 몽돌처럼 자그락거리면서, 어느 새 붉게 물든 가을 산에 들었습니다.
태어날 때 그분께서 허락하신, 끝 보이지 않던 머-언 길을 다 날려 보내고 지난날이 가슴 아련히 그리움으로 돌아올 때는 자투리가 돼버린 모퉁이 한 자락만이 손에 잡혔습니다.
자투리로 남은 길, 비록 ‘남도 삼백 리’도 못 되는, 걸어서 반나절이면 맞닿을 산일지라도 우리는 그 여정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 꽃 두어 송이 피어나기를 염원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나가고, 공직에서 물러날 즈음, 낯가림을 하며 젊은이들 틈에서 두런두런 방송통신대학을 같이 졸업하고, 수필을 배웠습니다.
더러는 수필을 아무렇게나 쓰면 된다는데, 인생길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 수필의 길이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돌아보면 뭔가 잘 못 산 것만 같고, 살아가는 길이 넓어지는 만큼 더 조심스럽기조차 했습니다. 별 고민 없이 세상을 수월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지만 우리에게는 하루하루가 힘든 여정이었고 막다른 골목 같은 것이 심통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피어날 한 송이 작은 꽃을 그리며 우린 서로 평자도 되고 격려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걸었습니다. 그 덕에 풋 냄새를 풍기며 ‘한국수필’에 부부가 나란히 이름을 올리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하여 부부요 문우이니 연(緣)치고는 보통 인연이 아닌 듯싶네요.
인구에 회자될 만큼 멋있고 맛있는 글이 아님을 왜 모르겠습니까? 철학이니 문학이니를 들먹일 여유는 더욱 없겠습니다. 살면서 가슴에 고인 투박한 그림자들을 그저 소박한 마음으로 지그재그 긁적였을 뿐입니다. 고갯마루 돌탑 쌓듯 하나 둘 모아서, 그걸 부부의 이름으로 작은 책 한 권에 엮게 되었습니다. 많이 서툴고 어줍은 줄 알면서도 이렇게 문패를 내다 거는 사연이사,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조급의 소치라 여겨 지긋이 눙쳐주시면 그보다 고마울 데가 더 없겠습니다.
우리 두 사람에게 수필의 세계를 열어주신 여러 선생님들과 문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부모의 이런 어수룩함에도 용기를 주고 웃음을 주는 우리 가족에게 은총 같은 따뜻함을 느낍니다. 내내 즐거웁기를 빕니다.
2013년 새봄에





비유와 상징의 함수/하길남(수필가, 문학평론가)

_비유와 상징의 논리

이름에서 솔내음이 풍기는가. 흔들바위 냄새가 나네... (1)
울림은 단비를 기다리는 가뭄 같아라...(2)
구름 뒤에 숨어있는 달빛 같이 희무끄레한 소리...(3)
기러기 백사장에 날아 앉듯 나붓한 가락...(4)
격한 감정을랑 연적에 담긴 물처럼 소리가 흘러나오는 그런 사람이라야...(5)
-수필, <하도롱빛 연가>에서.

수필 <하도롱빛 연가>는 사실상 비유나 상징 일색으로 창작된 수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화자는 시인으로서의 소질도 타고 났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수필가의 시를 읽어볼 날이 있을는지 모를 일이다.
‘이름에서 솔내음이 나고 흔들바위 냄새가 난다면’, 그것은 벌써 도인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소나무의 상징을 생각하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예부터 소나무를 사철에 푸르다 하여 절개를 상징하였으니 말이다.
‘울림이 단비를 기다리는 마음’이라면 그것은 어쩌면,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과 상통할는지 모를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구름 속에 숨어 있는 달빛소리 또한, 차라리 유언이라기보다. 혼을 흔드는 소리라고 해야 어울릴는지 모를 일이다.


_인정의 요람

사실상 서정수필이란 결국 인간의 정, 그 서정을 읊은 삶의 질박한 노래가 아니겠는가. 결국 수필적 삶이란 가장 인간적인 아름다운 삶을 지향하는 의지라고 볼 때, 인간의 서정성은 영원한 인간의 축복이라고 해야 하리라. 우리에게 있어서 서정의 유형(類型)이야말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 하겠다. 서정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덕목이기 때문이다.

수원에서 출발하는 진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창 쪽에 앉았다. 열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이 눈인사를 하며 옆자리에 앉았다. 젤을 발라 빗은 곱슬 단발머리가 귀엽다. 진주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어보는 억양이 진주말씨는 아니었다.
친척집에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진주가 처음 길이라 약간 긴장이 된다고 했다. 세시 사십분 출발이니까 일곱 시 이십 분이나 되어야 진주에 도착되는데, 오늘 안으로 돌아가기에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내 핸드폰 번호를 가르쳐주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전화를 하라고 할까. 우리 집에는 여유 있는 방 하나가 있지 않는가. 하루 밤 재워줘도 될 것 같았다.
-수필, <버스와 나룻배>에서.




정동호·도혜숙 부부 수필집「자투리에 문패달기」에 부쳐

개울물 건너다
_손광세

개울물 건너다
발 담그고 앉아
지나온 길 돌아본다.

자투리 모아
사슬뜨기 하던 아내랑
만들어 놓은 문패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지아비랑

따가운 햇살 아래
땀방울 파종하며
칼바람 행간에 한숨도 섞으며
쉬임없이 걸어온
40년 기인 여로.

그동안 참 고생했다고
동행이 되어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두 손 잡고 눈물 글썽인다.

이제 그만
무거운 짐 내려놓고
풀밭을 만나면
네 잎 클로버나 찾아보자고,

뻐꾸기 소리
드나들게
귀를 활짝 열어 두자고
도란도란 풀어내는
은빛 물살.

템버린을 흔들며
미루나무들이 환호를 한다.
언덕빼기
뭉게구름도
고개를 끄덕인다.

목차


정동호

가치와 가격

맛 좋은 수박 16 / 가치와 가격 19 / 군자란 23
달밤의 목련화 25 / 담쟁이 28 / 모기지론 31
도심에 핀 꽃 35 / 문패 38 / 오십 보 백보 41
지룡이 43 / 손에 손 잡고 46
바다보다 넓은 그대 49
나는 어떤 돌인가 52


날몰

날몰 58 / 고향 앞 정자나무 62 / 남강물 65
어느 농사꾼 할머니 이야기 68
아버지의 소 판돈 71 / 어머니의 머리 75
인생길 78 / 참새 떼 이야기 82
아름다운 틈새 85


천왕봉

천왕봉 90 / 마라도 단상 93 / 몽돌의 노래 97
선운산 천마봉 100 / 아! 순천만 102 / 염원 105
동토의 땅 108 / 미완성의 돌탑 111
상하이 114 / 골동품 117 / 종묘 120




도혜숙

봄이 오면

봄이 오면 126 / 구겐 베리아 128 / 하나에서 하나로 131
봉숭아 꽃물 134 / 꽃샘 바람 137 / 어머니의 봄 140
소금 민들레 144 / 이야기 쌈지 146


날을 세우며

날을 세우며 152 / 자투리 155 / 삼베적삼 158
벙거지모자 161 / 주름 펴기 165 /
소통언어 169 / 박쥐 172 / 복숭아 유감 176
하도롱 빛 연가 179


숭늉 이야기

숭늉 이야기 184 / 이름 없는 사람 187
시원한 바람 191 / 도투마리 195 /
지돌이 198 / 버스와 나룻배 200 / 고추장 204
김치 207 / 아리랑 210


서평 216 / 230

정동호(아호 : 多士)
진주농림고등학교 졸업
한국방송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농촌지도공무원 39년
하동군농업기술센터소장 역임
녹조근정훈장
한국수필 신인상
한국수필가협회운영이사. 진주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부회장. 경남수필문학회 부회장

도혜숙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국수필 신인상
한국수필작가회. 경남수필문학회 회원
진주수필 회원
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 할머니

*마흔이 넘도록 이름값도 못한 것이 서랍 구석에서 나왔다.
이 동네 저 동네 이집 저집 십여 차례나 이사 다니면서 버린 것도 많고, 언제인지도 모르게 없어진 것도 있지만 끈질기게 붙어 다닌 것이다. 집안 정리를 하던 중에 큰 연필통 모양의 퇴색한 골판지 박스 하나 들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 속에 갇혀있는 검붉은 바탕에 해서체 나의 이름 석 자, 포마이카 칠을 한 탓에 아직도 금장색이 반짝거린다. 결혼하고 첫 살림을 사글셋방에서 시작하던 70년대 초반의 일이다. 방세가 더 싼 집은 어딜까. 부엌이 따로 있는 반듯한 셋방은 없을까. 직장이 가깝고 심성 좋은 주인이면 더 좋을 텐데……. 아내와 둘이서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기웃거리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요즘도 내 집 마련을 소원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 당시 내게도 그게 가장 큰 소망이었다. 감히 꿈도 못 꿀 때임에도 남의 집 대문 앞에 걸려있는 문패를 볼 때마다 부러움이 솟구쳤다. 언제쯤 나도 저런 문패를 달아볼 수 있을까.
내 이름 석 자 붙어 있는 작은 대문 안에 들어서면 철따라 아름다운 꽃이 피고 예쁜 정원수가 어우러진 아담한 나의 집. 그 시절 사무실에는 잡상인들이 심심찮게 들락거렸다. 월부 책을 팔고 양복을 주문 받는 사람, 구두를 맞추라거나 심지어 도장도 파고 문패도 만들어 주는 이들이 직원들을 골라가며 귀찮게 굴었다. 더 이상 꾐에 걸려들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필요치 않은 것까지 흥정에 응하는 일도 있었지만, 때로는 긴요한 것도 없지 않았다.
꿈 때문이었을까, 충동이었을까. 문패 하나를 선뜩 주문하였다. 시집도 가기 전에 기저귀 장만한다는 웃음거리가 될까봐 다른 사람들 눈치 못 채게 은근살짝 만들었다. 물론 아내에게도 비밀이었으니 그의 은둔 생활은 처음부터 시작 된 셈이다.
_정동호 ‘문패’ 중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전부터 해오던 산딸기농사에 더 집착하셨다. 먼동이 틀 때부터 땅거미가 앉을 때까지 어머니의 호미는 땅에 떨어진 풀씨가 뿌리 내릴 틈을 주지 않았다. 팔순을 바라보는 휘진 몸으로 일에 매달리다 보니 일철이 지나고 찬바람이 나면 다리야
허리야 하며 병원 출입이 잦았다. 이젠 저 위 산비탈에 있는 ‘삐딱밭’은 버리고 텃밭 딸기만 재미 삼아 가꾸시라고 몇 번이나 말씀 드렸지만, 그래도 딸기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이 피기 시작하면 아파서 고생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밭에서 하루해를 보냈다. 딸기 수확이 끝나면 두툼한 쌈지를 꺼내 보이며 손 놓고 놀면 이게 어디서 생기겠냐며 좋아하셨다.
그렇게 서너 해가 지나갔다. 그 해에도 찬바람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허리가 뻐근하다며 벽을 기대고 눕더니만 일어나지를 못하셨다. 허리에 힘이 가중되어 척추에 이상이 생겼다는 의사의 진단이었다. 비탈진 밭고랑을 오르내리느라 무리해서 생긴 탈일 것이었다. 한 달이나 입원을 했다. 절대로 힘든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의사는 당부했다. 이제는 딸기농사에서 손을 떼라고 병실에 누어있는 어머니를 설득했지만 내말은 귀를 스치는 바람일 뿐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퇴원하기 전에 ‘삐딱밭’ 딸기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렸다.
퇴원을 하고, 며칠이 지났다. 어머니의 표정을 살피며 이야기를 꺼냈다.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혈육을 잃은 듯이 통곡을 하셨다. 민망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방문을 닫는 나를 따라 나와 하염없이 내 귀를 잡아 당겼다.
_도해숙 ‘어머니의 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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