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출판사

소설 종태 > 전체신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고객센터
상담시간 : 오전 09:00 ~ 오후: 05:3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02.2612-5552
FAX:02.2688.5568

b3fd9ab59d168c7d4b7f2025f8741ecc_1583542148_9783.jpg 


작성일 : 2020-02-18 10:00
  • 소설 종태
  • 변경섭 소설가
  • 청소년 성장소설, 내 어린 시절이 이 책에 있다
  • 2013-03-31
  • 변형신국판
  • 97889-92506-72-3
  • 12,000원

본문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다

이 작품은 오래전에 써 놨다가 다시 꺼내어 손질하던 중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신 시대의 아픔들이 다시 들춰지기 시작했었다. 굳이 이 작품이 유신 시대를 정면으로 다루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묻어뒀던 문제들이 새롭게 제기되면서 그 시대를 배경으로 썼던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면서 고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작품을 구상할 때 두 가지 관점에서 구상했고 쓰기 시작하자 불과 한 달여 만에 단숨에 써 내려갔다.
우선 한 가지는 성장소설이라는 점이다. 기성의 소설가들이 쓴 성장소설을 많이 읽어봤는데, 특히 이승우의『생의 이면』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좀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다. 물론 이승우만이 아니라 여타 다른 소설가들이 쓴 성장소설 대부분 그렇지만 이승우의 생의 이면은 더욱더 도드라져 있었다. 유년의 그 주인공은 너무나 성숙하고 철학적이고 지적 수준이 대단히 높고 고민이 많은 사람으로 그려져 사실 이러한 주인공의 설정이 현실적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그럼에도 나는 이승우의 소설들을 매우 좋아한다.) 물론 소설이란 게 그 당시의 나이, 지적 수준 등을 생각해서 그것에 맞게 쓰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하고 나이에 맞는 그리고 과장되지 않게 성장소설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한 가지는 내가 어린 시절을 유신 시대를 겪으면서 지내왔는데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초등학교 몇 학년이었는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10월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기 얼마 전에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의 가정방문을 다니면서(우리 반만의 일이 아니라 전교가 모두 오전에 수업하고 오후에 가정방문을 다녔다.) 부모님과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가정방문이 무척 싫었던 기억이 있었다. 물론 그 가정방문이 싫었던 이유는 단순히 지지리도 구차하게 사는 내 가족과 나의 모습들을 보여주기 싫어서였지만,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던 그리고 나중에 그 가정방문이 왜 이루어졌는지 알게 된 10월 유신과의 관계를 알고부터 시골 소읍의 말단 행정기관인 모세혈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던 국가 폭력을 곰곰이 생각해 왔었다.
그 당시 시골 소읍에서 주인공과 관찰자를 둘러싼 사람들의 행동이나 사고, 제도적 운용 그리고 폭력적 분위기 등이 어디에서 근원하는 것일까 많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유신이라는 국가적 폭력과 이데올로기의 점령이 시골 소읍에 불과한 조그마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폭력적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한 인간을 어떻게 파괴해 가는지 그려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주인공 종태는 두 번째 관점에서 가공의 인물로 살아나온 것이고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 제도, 폭력은 그렇게 그려졌다. 그리고 관찰자인 나는 주인공 종태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해가는 나의 모습을 상당 부분 투영시킨 성장소설이다.
이제 그러한 국가 폭력으로 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었던 지난날의 과거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당시를 살아왔던 나의 어린 시절 삶을 들여다보면서 이 사회가 더는 과거로 후퇴하지 않고 서로 공감(Compassion)하며 소외된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고 또한,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나와 내 이웃들이 어두컴컴한 벽장 속의 추억인 시간의 감옥에서 나와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2013년 붉은 해
를 가슴 속에 맞아들인다.
몇 년 전 황망 간에 아버님을 잃고 혼자되신 어머니, 무척 그 부존재와 외로움을 참기 어려워하며 슬퍼하셨던 어머니를 멀리에서 안타깝게 바라보며 정말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다. 이제 조금은 안정을 찾으며 잘 견뎌내신 어머니께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었는데 졸작이나마 나의 어머니께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바친다.

2013년 정초 눈 쌓인 관악산을 바라보며
변경섭

목차

작가의 말 _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다

1. A읍의 부고 10
2. 이상한 만남 23
3. 아카시아 나무 숲속의 이야기 38
4. 용마름이 사라지다 53
5. 금빛 노을 속으로 들어간 소년 72
6. 두 개의 권력 91
7. 이상한 나라의 풍경 110
8. 관음증 129
9. 한여름 밤의 충격 154
10. 금지된 장난 178
11. 넘을 수 없는 벽 200
12. 상실의 아픔 227
13. 종태의 눈물 254
14. 시간의 감옥 277

1961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였다.
중앙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대학 졸업 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민족민주운동연구소, 전교조 참교육실천위원회 등 재야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며 청년 시절을 보냈다.
이때부터 어린 시절 앞마당의 밀짚자리에 누워 보았던 검은 하늘 속의 반짝이는 수많은 별빛을 그리워했고, 한편으로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몸으로 부딪치며 고통스런 나날들을 보냈다.
그 불면의 나날들 속에서 별빛 속에 누워 잠들고자 하는 막연한 그리움과 미래의 불안정한 신분과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무질서의 상태에 대한 분노와 불안감들로부터 싹튼 것이 글쓰기 작업이었고, 글쓰기는 곧 청년의 민주화를 위한 열망과 함께 했다.
이 시기 그에게 문학은 곧 운동이었으며 문학운동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민족문학운동에 관심을 기울여 「민족문학운동의 올바른 편제를 위하여」(『정세연구』), 「문학적 욕구의 능동화, 그 시민적 범주와 민중적 범주」(계간 『문학』)등 여러 글을 발표하였으며, 동인활동을 하면서 동인지등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제 그는 많은 시간들을 뒤로 하고 멀찍이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면서 또 다른 글쓰기를 하고 있다. 과거의 불면의 고민들을 끈처럼 붙들고 있으면서 새로이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몸짓의 하나로 시집 『새는 죽었다』(화남출판사, 2011년)를 묶어 출판하였다. 앞으로 더욱 풍부한 삶의 풍경들을 그리기 위하여 사람들과 부대끼고 시야를 넓혀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민족민주운동연구소 『정세연구』 상임연구원
문학계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의 편집위원 역임
현 환경복원 전문회사인 아름다운환경건설(주)에 재직 중

그 이튿날부터 영태의 가방은 늘 불룩했다. 책 이외에 풋복숭아가 빠짐없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태는 풋복숭아를 아이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줌으로써 그들로부터 그만큼의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이전에는 따돌림은 아니더라도 본 척도 않던 아이들이 영태에게 관심을 갖는 척했으며, 그 관심은 풋복숭아로 돌아가게 되었다. 풋복숭아가 없을 땐 다른 과일이 영태의 무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후로 영태의 가방에는 때에 따라 종류가 다른 과일이 담겨 왔다. 자두가 가방에 담겨올 때도 있었고 살구일 때도 있었다.
어쨌든 영태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교활함을 터득해갔다. 이제 풋복숭아를 아무에게나 무작위로 나누어주는 일은 없었다. 자기 마음에 영 탐탁지 않거나 그 아이를 사귀는 것이 아무런 이득이 없을 거라고 판단이 드는 아이에게는 여간해서 풋복숭아가 건네지는 일은
없었다.
영태는 마침내 반장인 영천이에게도 접근하게 되었다. 특별히 영천이가 영태에게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음에도 영태는 모자라게도 풋복숭아를 영천이에게 갖다 주었다. 그것도 제일 크고 깨끗한 복숭아를 말이다. 처음에 영천이는 영태의 그런 호의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아마도 선생님의 말이 생각나서 일지도 몰랐다. 어느 날 종례시간인가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었다.
_본문 중에서


화를 꾹 참고 있느라 일부러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오늘 저녁 집에 일찍 가긴 다 틀린 것이다. 운동장을 토끼뜀으로 돌고 있다든지, 엎드려뻗쳐서 엉덩이에 몽둥이세례를 무참하게 받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던지. 종례 시간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더욱더 불안했다.
그렇지만 종례 시간도 무사했다. 불안한 하루가 다 지나고 집에 돌아갈 때도 우리가 무사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각자 집으로 헤어져 갔다. 너무나 긴장했다 풀어진 나머지 모두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은 다행히 무사했지만,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그것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은 채였다. 하지만 그 다음 날도 역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혹시 오성여관 할머니가 학교에 연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제발 할머니가 우리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단정을 내리고 보니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그래도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 언제 예상할 수 없는 청천벽력이 떨어질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생님 눈치를 살피며 전전긍긍하는 사이 여름방학이 왔다. 그리고 후딱 가을이 찾아왔다. 그 사이 오성여관의 일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_본문 중에서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