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에 기대어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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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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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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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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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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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9283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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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0원
본문
삶이 머문 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나이가 드니 말수가 줄어든다. 생각을 다 나누기 어려우니 입을 다물고 마는 때가 잦다. 말로 못하니 글을 쓴다. 소재나 주제를 곰곰이 생각하고, 숙성하듯 놔두었다가 간간이 들여다본다. 글을 쓰면 하나의 주제가 정리된다. 더불어 생각과 관점도 정돈된다. 글로 쓰지 않았다면 생각들은 떠올랐다가 흩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는 자가 치유 과정이다.
좋았던 기억력이 쉰을 지나며 선명하지 않다. 세세하게 기억해낼 자신도 없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 기록으로 인해 기억을 되살린다. 예전 글을 읽으면 기억과 기록의 연관이 뚜렷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산골 정서가 바탕이다. 7년 반의 서울 생활과 아들 셋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보낸 이십여 년이 사이사이 스며있을 터이다. 마흔에 시작한 공부를 박사과정까지 마쳤으니 구석구석 흔적이남았을 것이다. 9년째 일을 하며 느낀 소회와 애환도 드문드문 머문다. 그런 만큼 글의 소재와 주제가 다양하다. 그동안 쓴 글 중 48편을 추려 지난해에 수필집 『사색의 고요 너머』를 내놓았다.
책을 엮고 글이 꽤 남았다. 게다가 십여 년 간격으로 흩어져있다. 정돈하고 싶던 차에 마침 올해도 기회가 주어졌다. 처음부터 두 권으로 묶을 요량은 내지 못했다. 아쉽게도 하나의 흐름으로 꿰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작을 위해 단락을 짓는다. 저작 시기가 겹치니 지난해와 올해 책이 상당 부분 닮아있을 것 같다.
책머리에 삶이 머문 글 4
PART 1
시간이 남긴 흔적
기억의 창 12
어느 노파의 변호 18
산중에서의 여름날 34
주파수 43
사람 공부 48
당신의 MBTI는 56
명리학을 들추다 62
나를 알아가는 중 69
PART 2
시간에 기댄 사랑
엄마가 된다는 것은 78
스님의 주례사에 대하여 84
꽃과 사람 90
일주일의 고립 95
마스크 101
목욕탕 단상(斷想) 106
김치 110
집을 보존하다 116
PART 3
눈길이 머물다
꽃을 보는 시선 124
갖고 싶은 정원 129
거울 134
호모 루덴스 139
물의 여행 144
3월 149
동그라미와 네모 153
사물놀이를 배우며 158
PART 4
일과 삶
귀를 씻다 165
밥값 172
나르시시스트에 대하여 178
사랑스러운 고양이 한 마리 키우실래요? 186
정언(正言) 193
농담이란 198
녹투 PART 5
시간에 기대어
그늘 216
나무를 닮은 사람 221
유산 226
정의와 어떤 선거의 기억 232
선택권 238
아버지 기제사 가는 길 244
황금률에 대하여 251
시간에 기대어 257 203
안개 209
순천시 상사면 출생
• 2010년 《순천문학》 등단
• 순천문학・전남수필문학회・영호남수필 문학회 회원
• 순천대학교 교육학 박사 수료
• 2021년 전남문화재단 창작지원
• 수필집 : 『사색의 고요 너머』2021
목이 마를 때 한 모금의 물이 산해진미보다 맛있고 참사람이 그리울 때 번거로운 만남보다 진실한 사람 하나가 더욱 값지다.
물은 생명에게 아주 중요한 요소이지만 커다란 유기체인 지구라는 행성에서도 꽤 중요한 위치에 있다.
우리 몸의 7할이 물이듯, 지구 표면의 7할도 물이다. 물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 역동적인 몸짓으로 땅을 적시고 강을 채우고 바다를 만난다. 풀의 목마름을 해갈하고 나무의 뿌리를 적시고 고라니의 목을 적신다.
물은 가장 낮은 바다로 거침없이 흐르다가 나비보다 가볍게 날아올라 새들보다 높이 비상하여 구름 속에 노닐다가 수직 낙하하는 경쾌함을 지녔다.
무덥던 여름날, 시골 친구들은 냇가로 몰려갔다. 동네에서 물놀이하기 적당한 곳이 두세 군데 있어서 물놀이하기에 좋았다.
여름에 멱을 감는 일은 동네 아이들의 가장 흔한 놀이였는데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작은 보 끝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더불어 아래로 바쁘게 흘러갔다. 산중이었던 우리 동네의 하나뿐인 윗동네에서 내려오는 물은 꽤 많아서 우리가 놀던 봇물 위에 철철바위라는 이름의 바위가 말해주듯 우리가 놀기에 마땅한 놀이터였다.
봇물 가운데 즈음에 있던 바위 위에 올라가 다이빙을 한다며 뛰어내리면 살갗에 닿는 물의 촉감이 부드럽고도 탄력이 있었다. 입술이 파래지도록 놀다가 10여 미터 아래에 넓둥근 해바라기 바위의 뜨거움에 흡족했다.
우리 동네는 모두 옷을 입고 놀았다. 여름옷이라고 해봐야 허름하기 짝이 없는 얇은 천 조각쯤 될 성싶다. 너무 오래 물속에서 놀았든지 입술 색이 더디 돌아올 때, 가끔은 옷을 벗어 바위 위에 펼쳐 말리는 경우도 있었다.
간혹 해거름 무렵까지 물가에서 놀 때가 있는데 그럴 경우는 다슬기를 잔뜩 잡아서 온다. 다슬기는 해를 기피하는지 이른 아침과 해 저물 무렵에 많이 보인다. 아랫물 놀이터 근방에는 다슬기가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 탱자나무 가시를 여남은 개 따오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_‘물의 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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