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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2-11 18:13
  • 7080_칠공팔공
  • 김은미
  • 해드림
  • 2012년 8월 9일
  • 변형신국판
  • 978-89-93506-44-0
  • 10,000원

본문

그리워서 고맙습니다

늘 내가 중심이 되어 살줄밖에 몰랐습니다. 어떤 인연도 내 선택이었다는 오만이 사실은 무지였다는 걸 깨달은 건 더 많은 배움이 아니라 나이가 일러주는 겸손이었습니다.
부모님, 형제자매, 친척들, 벗들, 심지어는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었던 애인들, 그저 눈으로 스치는 존재였던 이웃들, 당연하게 여겼던 자연현상들, 태어나고 자라 딛고 서 있는 땅, 그리고 거쳐 온 시간들까지 누구나 어느 것이나 어떤 시간이나 의미가 없는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긴 시간이건 짧은 시간이건 나를 키우고 성숙시키며 겸손하게 하는 데 나름으로 역할을 하여 내가 여기 있게 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고 할까요.
때로는 늦게 깨달은 것에 대한 자책과 후회도 있었지만, 그것까지도 오만이었던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어느 것이나 무르익어야 나무에서 떨어지고 제대로 쓰이게 되는 법. 내 그릇이 그만하다는 걸 인정하는 게 왜 그렇게 힘든 일이었는지요.
그러고 보면 나를 이 나이에 이만큼이라도 키워낸 건 그리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워하고 더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고 다시 그리워하면서, 그리운 그 모두를 찾기 위해 목을 길게 뽑고 까치발을 들어 조금씩 자란 겁니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된 겁니다. 평생 자라지 않을 줄, 그래서 결코 늙지 않을 줄 알았던 이기적이고 오만하기까지 한 내게 그리움이 그리 깊은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움을 갖고 있다는 것조차 수치로 생각한 때가 있었으니, 어리다는 건 어리석다는 것과 통한다 했던가요. 그러므로 나는 지금 살짝 늙은 내가 좋습니다. 조금은 더 현명해진-심지어는 지혜로워진 것도 같으니 말입니다.
그리워할 것이 많다는 것은 잃은 것이 많다는 뜻이며, 한편 사랑한 것이 많았다는 뜻일 겁니다. 열정을 사랑으로 착각했던 그 뜨거움 말고, 연민하고 감싸 안는 헤아림 말입니다. 그것들이 모여 그리움을 싹틔우는 겁니다. 목을 꼿꼿이 세우고 피곤함을 감추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의무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힘들다고 조금 눈물을 비쳐도 흠이 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립다!”고 말을 하게 되면 문득 기대고 싶어집니다. 아이 적 어머니 가슴에 얼굴을 묻듯이, 그리고 내가 가슴을 열어 누군가의 얼굴을 받아 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용서의 시작입니다. 내 영혼은 아직도 키가 자라는 중입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턱을 괴고 꽃이 피어 열매 맺기를 기다렸던 키 작은 꽈리가 그립습니다. 그 꽈리가 있던 마당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움이 거기에서 시작입니다. 기억 제일 안쪽에 자리한 꼬마꽈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리워서 고마워!” 어머니가 옆에서 웃고 계십니다.
2012년 7월 김은미

목차

펴내는 글 그리워서 고맙습니다 04

1 아직은 슬퍼할 때
아직은 슬퍼할 때 14
벌써 1년! 17
크리스마스 선물 20
어머니와 학교 바자회 28
더 이상 추가할 게 없는… 38
아프니까 45
겨울, 그 살아가던 이야기 50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 62



2 은행나무 한 그루
달밤 69
하늘로 보내는 팩스 77
책상 82
아버지, 다녀가셨습니까 85
은행나무 한 그루 91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96
우산 필요 없나요? 101




3 장마가 지나는 자리
봄이 쓸쓸한 까닭 106
제비 111
생명 120
친구 131
단비 134
장마가 지나는 자리 138
가을비 145



4 마침표
별비를 기다리며 150
산다는 것은 154
조촘조촘 157
마침표 163
눈물겹다, 군밤 167
추위 173
관여의 결과 177





5 꽃과 눈 맞추다
가슴에 잦아들었으니 다시 사랑 있었겠는가 183
아마도 쪼끔은… 191
만날 수 없는 얼굴 198
사랑을 한 적 있을까 203
너, 그 207
비, 비, 비 210
꽃과 눈 맞추다 216
우리도 한땐 젊고 멋있었단다 220
묵은 책 225




5 꽃과 눈 맞추다
가슴에 잦아들었으니 다시 사랑 있었겠는가 183
아마도 쪼끔은… 191
만날 수 없는 얼굴 198
사랑을 한 적 있을까 203
너, 그 207
비, 비, 비 210
꽃과 눈 맞추다 216
우리도 한땐 젊고 멋있었단다 220
묵은 책 225



6 미안해
빼빼로를 들고 간 딸에게 234
내 딸이어서 고맙습니다 238
사랑은 말이다, 얘야 242
우리들이 기른 너희들 245
덮으면 더 뚜렷한 것 251
거미가 사는 법 255
미안해 261
시험, 그 과정에서 취해라 266

서울 종로구 충신동 생
건국대 공예과 졸
수필가
문학세계 등단
테마수필 필진
작품집: 『꼬실이』(해드림)
『7080』(해드림)

emghim@gmail.com

*연탄을 나르다 보면 떨어뜨려 깨뜨리는 적도 있고 또 혼자서 저절로 깨지는 것도 있었다. 그것들을 고스란히 모아두었다가 연탄 찍는 사람이 오면 동네는 분주해졌다.
이 집 저 집에서 열심히 불렀다. 꼭 연탄처럼 생긴 틀을 가지고 아저씨는 들어와서 깨진 연탄을 그 속에 담고 위에서 꾸욱 눌렀다. 그러면 신기하게 멀쩡한 연탄이 그 아래로 쏘옥 나오는 것이다. 연탄 공장에서도 그렇게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그 많은 연탄을 다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그래서 기계로 찍는다고 했다. 나는 공장에서 연탄을 찍는 것이 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진가 내가 지나다니는 길에 연탄 공장이 있었다. 그러나 꼬불탕 양철 담 위로 산처럼 쌓인 석탄가루는 보일지언정 아무리 문가에서 기웃거려도 연탄 찍는 기계는 보이지 않아 끝내 그 바람은 바람으로만 끝나 버렸다. 나는 지금도 한 번 그 기계가 연탄을 찍어내는 것을 보고 싶다.
또한, 누구나가 기억하는, 찹쌀떡과 메밀묵을 파는 목소리. 그 구성진 목소리는 언제나 오밤중에 났기 때문에 어린 내가 볼일은 없었다. 언젠가 외할머니가 한 번 사주신 적이 있었는데, 방안에 있던 나는 목소리만 들었을 뿐, 나이가 많은 사람인지 학생인지 알 수 없었고, 맛도 별로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겨울, 그 살아가던 이야기- 중에서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믿어 기다리고자 했지만, 더위 속에서도 어느덧 곤한 몸은 잠에 빠져 반가운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걸 지키지 못했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 눈을 뜨자마자 얼른 현관부터 열었다.
툭툭 홈통을 타고 떨어지는 빗소리가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들렸다. 현관 밖 계단이 번들번들 젖어 있다. “와, 드디어 비가 오시는구나.” 갑자기 눈앞이 확 밝아지는 것 같다.
초봄부터 16각 무지개 우산 타령을 하는 딸애에게 한 달쯤 전에 드디어 그걸 사줬으나 봄 내내 사흘돌이로 지겹게 내리던 비가 정작 우산을 사는 시점에서 딱 멎어 버렸다.
딱 한 번 또각또각 마지못해 내리던 비에 그 우산을 조심스럽게 쓰고 갔다가 오후에는 덜렁덜렁 접어들고 온 것 빼곤 여태껏 현관 모서리에 세워두었었다. 그 우산이 있다는 것조차 잊었는지 그냥 맨몸으로 집을 나서려는 딸아이한테 우산을 가리키니 신이 나서 활짝 펼쳐든다. 차에서 내려 교문을 향해 가는 아이가 펼친 열여섯 빛깔 우산이 어찌 그리 화사하던지.
-생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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