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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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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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드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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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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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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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5634-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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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0원
본문
37세부터 53년 동안
어머니는 무슨 내용을 일기에 썼을까
삶이란 일개인이 살아온 것을 너머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기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라고 한다.
‘어머니의 불’, 이 책은 저자의 친정 엄마가 갓 서른일곱이던 1962년 1월 1일부터 53년간 썼던 일기를 토대로 엮었다. 막간에 저자의 단상을 넣어 두 모녀의 모놀로그로 직조한 글이다. 한데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후 저자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자문자답을 해야만 했다. 대체 왜 출간하려는 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저자를 물고 늘어졌다. 친정어머니가 남다른 인물이기 때문인가? 집안이 자랑스러워서 인가?
아니, 그건 아니었다. 엄마의 일기는 숨기고 싶은 내용들로 점철되어 있었으며 비루하고 침울한 삶의 기록이라서 드러내기엔 너무나도 부끄러운 가족사라는 게 저자 생각이다. 친정 부모님은 결함도 많고 자식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으며 훌륭하지도 않았다. 저자의 출간 결심을 굳힌 것은 어머니가 기록해온 흔적들이 비록 개인사이긴 해도 그 시대 공유의 풍경을 담고 있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이 책에는 여권(女權)이란 개념조차 전무하던 시대, 가난이 일상이던 남루한 시대를 살아온 힘없는 인생들이 유사하게 겪어내야 했던 시대적 아픔과 공통분모가 담겨 있다.
배움이 많지 않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의 기록을 남겼다는 것도 그러하고, 문학을 전혀 배우지 못한 엄마의 글월에서 이따금 번쩍이는 문장이 그러하고, 주변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엄마의 따뜻한 시선도 저자 가슴을 훈훈하게 적셔왔다. 천양희 시인은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고 읊었는데 엄마의 마음이 저자에겐 절창으로 다가왔다.
저자가 엄마의 일기를 책으로 엮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당시 자신의 가족이 처했던 상황과 오늘날의 어려운 삶들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저자 가족이 살아왔던 지난 이야기를 그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고난은 고난끼리, 슬픔은 슬픔끼리 마주할 때 서로를 보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절망 속에 죽음을 준비하던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경탄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간접체험 자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종길 박사는 ‘어머니의 불’을 마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나는 지난 30여 년을 자살예방운동에 종사한 일이 있는데 무력감의 정체를 터득하였다. 어린 민혜는 엄마가 준 선물의 한 마디를 되돌려줌으로써 엄마에게 힘을 넣어주었고 그들은 함께 살아남았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지어 세상에 내놓을 때 작가는 이미 치유의 힘을 얻은 후였을 것이다. 아플 때는 말할 수 없기에. 보통 사람들은 삶이 어려워질수록 마음의 옷을 두껍게 싸매는데 이 책은 거꾸로 벗어던졌다. 절망 속에 죽음을 준비하던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경탄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간접체험 자료가 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 용기는 수많은 밤의 고뇌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탄생되기 어려운 일이다. 삶이 하도 다양하기에 보편성을 말하기 쉽지 않지만, 공감의 보편성이 발견되는 순간은 가능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신선한 충격이나 동일화의 눈물을 흘리는 마음이 얼마나 발생할까? 한 마디로 충격적 감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살아남는 자가 가장 강한 자라고 하지 않던가. 작가는 버티고 살아남아서 자신은 물론 어머니까지 빛나게 만드는 역작을 탄생시켰다. 어머니의 음덕을 입었다. 세상 어떤 것이 이런 모녀의 사랑보다 장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 | 4
추천사 | 6
프롤로그 | 10
에필로그 | 317
1. 유머레스크를 불렀다 | 19
2. 남폿불 아래서 | 75
3. 이통훈 외과 원장님 | 125
4. 가뭄과 대홍수 | 177
5. 어머니, 왜 나를 살리셨나요? | 223
6. 그래도 해피엔딩 | 273
서울에서 평생을 살고 있다. 네 살 때 명동성당에서 영세를 받았고, 초등학교 1학년 때 학년 대표로 교내 미술대회에 나가봤고, 교지에 내 작문도 실렸다. 4학년 때는 학교 합주부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며 클래식에 맛 들였다. 그 세계가 내 삶의 기저를 이룬 셈이라 전 생애를 그 안에서 헤엄치며 살아간다.
1992년 <창작수필>로 등단. 초기엔 <한국 문학>지를 비롯해 단편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학의 현실 참여를 위해 1990년대엔 재소자들에게 편지쓰기 봉사를 했고, 1995년~2002년까지 신경정신과 환자들의 재활 프로그램인 ‘문예치료’ 담당자로 일했으며 디지털 조선일보에 <힐링 에세이>를 연재하기도 했다.
수상경력으론, 2013년 목포문학상 수필 본상 수상. 2014년, 2015년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수상, 2018년 가톨릭 출판사 신앙서적 독후감 공모 당선.
2020년 월간<좋은 생각>문예공모 금상 수상. 2020년 해드림출판사 기획수필집 공모 당선. 2021년 가톨릭 평화방송 평화신문 신앙수기 공모 당선.
저서로는, 『장미와 미꾸라지』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어머니의 불』 외 5~12인의 공저 『꿈꾸는 역마살』 『내가지나가는 소리』 『그대로 계세요, 어머니 아버지』 『우리 기도할까요』 등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에세이스트 문학회 회원
1962년 3월 12일
쌀도 다 먹어가고 연탄도 떨어졌다. 가난한 집은 밥그릇만 크다더니 우리 집이야 말로 밥그릇이 큰 탓인지 쌀이 헤프다. 근심에 지친 탓인지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듯 가끔 악마가 내 심정을 스쳐간다.
열이가 독감에 걸린 지 나흘째다. 몹시 여위었다. 못 먹인 탓도 있겠지. 미안하다.
저녁 일찍 먹고 성당에 강론 들으러 갔다가 오는 길에 열이가 좋아하는 군고구마를 사 왔다. 싸게 파는 집을 찾아 회현동까지 가서 100원어치 사다 주니 열이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책상 위에 놓인 어항의 금붕어들은 자기 세상인 듯 좋아라고 논다.
나는 정신적 육신적 피로를 항상 느낀다. 오늘도 피로한 몸, 잠이나 들어 꿈나라에 이 몸 실어 태산 같은 소원이나 이루어 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여, 영원히 안녕.
1962년 3월 13일
돈암동 언니한테 분 값 받으러 갔다. 돈을 받고 그 길로 재관 네 집으로 갔다. 재관 엄마는 왜 이제 오느냐며 분 값 200원을 깎고 3000원만 준다. 나는 몹시 기분 나빴다. 고맙다는 소리도 안 했다. 자기 맘대로 돈을 주니 그건 잘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 낮에 형부가 거주증을 해달라고 부탁하시며 100원이면 되는데 1000원을 주신다. 기마이(선심)다. 그 돈으로 처음 반찬을 사고 중국 빵을 사다가 네 식구가 잔치를 했다.
재관 엄마라는 분은 부자였다. 살집 좋은 얼굴엔 윤기가 흐르고 웃으면 금니가 번쩍여서 어린 내 눈에도 부티 나게 보였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정은 빈자들이 더 잘 아는 법.
1962년 3월 14일
아침부터 날씨가 푸근하다. 애들이 벗어놓은 속내의를 하나하나 빨기 시작했다. 찬물에 손을 담가도 손이 시리지 않은 걸 보면 날씨가 퍽이나 푸근한 모양이다.
숙이가 들어온다. 독감으로 휴학한다고 공부도 안 하고 왔다. 점심때가 되고 보니 내 것은 없다. 애들만 먹이기 위해 충무로 사는 덕자 네로 분 값을 받으러 갔다. 고모가 왔다고 우동을 시켜줘 점심은 얻어먹은 셈이다. 돈을 받아 집으로 왔다. 날이 점점 흐려진다. 바람이 불며 굵직한 비가 우수수 쏟아진다. 오랜만에 오는 비다. 내 마음속에 있는 눈물처럼 쏟아진다. 내 억울한 눈물 대신 빗물이 내리는 건지 모른다. 숙이와 열이가 싸운다. 가만히 있으니 서로 때리고 욕을 하여 나는 오랜만에 매채를 들고 몇 번 때렸다. 잘 먹이지도 못하는 어린것을 때리기가 애처로웠다. 그러나 매를 안 들 수가 없었다.
막내이며 아들인 동생과 나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는데 육탄에 육두문자까지 날리며 싸웠단다. 무슨 일이었을까.
1963년 6월 1일 토요일
내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나 죽겠다는 소리만 내질렀다. 무슨 병인지 숨이 턱턱 막히고 수족이 뻣뻣해진다. 혼수생태다. 영우 어머니가 오고 정숙이네 식구들이 오고 진이는 학교도 못 갔다. 부축을 받아가며 차에 올라 충무로 이통훈 외과에 갔다. 차가 뛸 때마다 아픔은 말할 수 없었다. 의사는 진찰하더니 수술이 급하다 말하고 나를 수술대로 옮겨간다. 내가 평소에 제일 무서워하던 게 수술이다. 나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를 수술대에 누이고 팔을 십자 모양 벌린 다음 끈으로 맨다. 주사 한 대 놓고 코에 산소호흡 줄을 끼는데 완전히 마취가 되어 다섯 시간 잠들어 있었다.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누군가 나에게 애처로운 소리로 정신 차리라고 눈 좀 떠보라고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처음엔 이제 수술하나 보다 하고 있었더니 이미 수술이 끝난 후였다. 겨우 눈을 떠서 보니 여러 사람들이 눈이 빨갛게 울고 있다. 내 양팔엔 링거 주사와 피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다. 배를 더듬어 보니 붕대와 고무호스 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진이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내가 불쌍하다고 울고 있다. 나는 이제 죽으면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 있으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병명은 ‘자궁외 임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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