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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2-11 13:11
이미지 없음
  • 방패연
  • 임병식
  • 해드림
  • 2009-09-07
  • 무선
  • 978-89-93506-12-9
  • 10,000원

본문

가을 같은 삶의 질감 「방패연」

1. 미질의 감성

작품을 대하는 일은 그 작가를 대하는 일이다.
작품을 읽다가 서로 정서가 다르면 온색을 띠기도 할 것이요, 정서가 맞으면 원고를 읽는 내내 청안을 띠기도 할 것이다. 저자에게 원고를 건네받은 지 거의 한 달이다. 날마다 불비가 내리는 듯한 가운데 저자의 수필은 서염 아래 드리운 팽나무 그늘 같았다. 휴가도 없는 한여름 내내 더위를 잊을 만큼 서늘한 저자의 감성(感性, sensibility)을 맛보았다는 이야기다.
‘예술을 이해하며 즐기’는 영역은 창조와 감상(感想) 즉, 저자와 독자의 감성을 아우르는 말일 것이다. 이처럼 서두부터 저자의 감성을 시비하는 이유는, 그 본바탕이 무구하면서도 숭고해서 저자의 작품을 논하는 데, 이 미질(美質)의 감성을 놓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의 남다른 감성, 달리 표현하면‘솔잎을 빗는 바람’같은 감성이 저자의 작품세계를 구축하여 그 맛과 색깔을 내는 것이다. 따라서 감성은 임병식 수필의 엘랑 비탈(elan vital)같은 존재이다.

2. 물상(物象)의 의미 찾기

「방패연」은‘자기만의 발견’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이 ‘자기 발견’ 의 품격이 높은 작품집이다. 저자는 대부분 작품에서‘자기만의 장치’를 해두었다는 표현을 종종 쓴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만의 장치가 바로 자기 발견 내지는 물상(物象)의 의미 찾기라고 보는데, 자류적 소재를 작품화하는 미적 탐구인 것이다.
수필에서 상상이 허용되는 범위나 허구와 문학성 문제를 아울러 짚어볼 수 있는‘단원이 그렸음 직한 풍경’, 묘사의 진수를 함께 보여주는‘나무 이미지’와‘… 땅거미질 무렵’, 저자의 섬밀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목에 대한 단상’등 주로 작품집 전반부를 차지한 작품이 대부 분 그 유형이다. 또한 이들은 어쩌면 저자만이 쓸 수 있는 수필이기도 하다. 예컨대‘낫과 지게’, ‘대엽풍란의 뿌리’, ‘꿩이 밝혀준 본성’처럼 이미 자신의 미적환경(美的環境)이 조성되어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3.작품의 숙부(熟否)

「방패연」의 작품들은 한철 익은 과실이 아니다. 수필론에서 흔히 쓰는 표현 하나가 작품의 성숙도이다. 수필의 연륜과 성숙도가 비례하기는 일부일 수 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저자의 작품을 가까이 접한 나로서는, 적어도 저자의 수필 연륜과 성숙도는 주저 없이 비례 이상으로 본다. 「 방패연」의 작품들 또한 가슴을 서늘케 하는 서정이 골마다 흘러 수필로서 고아(高雅)한 감동이 깃들어 있다. 수필가로서도 완숙한 단계인 그다. 이 완숙을 떠나서, 만일 저자가 어떤 물상에서 어리비치는 심상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쫓아 수필 한 편을 써냈다고 해서 바로 그 숙부를 판단해서는 곤란한 문제가 있다.


4. 아름다움을 탐찰(探察)하는 훈련

「방패연」의 작품을 통해 보면, 소재를 수석처럼 골라서인지 참눈이 돋보일 만큼 피시스(physis)를 밝게 헤아리는 저자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물을 쏘아보는 눈씨나 눈심지가 깊어 파적거리가 될 만한 것도 그에게는 오색필(五色筆)로 나타난다. 지불생무록지초(地不生無名之草), 즉‘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쓸모와 제 역할이 있다.’는 철학이 저자에게는 깊어 보인다는 이야기다.
저자의 작품에는 빼놓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하나 더 있다. 작품마다 문장을 나열할 수는 없지만‘표현 근성’이 배였거나 문학적 혼이 씌어 있다 예컨대 문장 안에서 저자가 진저리를 치면 읽는 이도 진저리를 치듯 으스스 몸을 떨게 된다. 순간순간 작품 소재가 읽는 이에게 빙의처럼 달라붙었다가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문장 자체가 화려하거나 섬세한 것도 아니면서 섬뜩하게 표현이 살아 있는 이 마력은, 저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석 생활에서 비롯된 미적 탐찰(探察) 덕분이 아닌가 짐작한다.

<목차>
펴내는 글 - 생각 밖의 생각으로 그려내다 / 저자 | 04
작품해설 - 솔잎을 빗는 바람을 보다 / 이승훈 | 300


1‥‥ 솔잎을 빗는 바람을 보다

나무의 이미지 | 14
낫과 지게 | 17
기러기 | 20
대엽풍란의 뿌리 | 23
둥지를 잃어버린 까치 | 27
고구마 순과의 씨름 | 30
도깨비바늘을 떼어 내며 | 34
동틀 무렵과 땅거미질 무렵 | 37
시골집 풍경과 아파트풍경 | 40
그림자 | 43
꿩이 밝혀준 본성 | 46
뜬모용 모 | 49
단원이 그렸음직한 풍경 | 53
목에 대한 단상 | 56


2‥‥ 장구배미 농막

눈 내린 날의 서정 | 61
감나무에 관한 두 생각 | 64
문고개 | 68
삼베이야기 | 72
당신의 형제애 | 76
물방앗간 다녀오던 날 | 79
방패연 | 82
농막 | 85
뚝새풀 | 88
장구배미 | 92
청량한 소리 | 96
추억으로 남은 봉숭아 꽃물 | 99
쓴나물 | 102
올게심니 | 105
지게 | 108
고향의 방죽 | 111


3‥‥억새 울음소리

말의 중독 | 117
언뜻 스쳐간 생각 | 120
우연히 얻어들은 인생철학 | 123
금실은 구구비둘기 | 126
하루만 활짝 피는 꽃 | 129
어떤 공감 | 133
바위 이끼 | 135
울음울기 좋은 곳 | 138
간장종지 단상 | 141
내 생활의 살얼음판 | 145
노모가 받은 조양군상 | 148
내 발길이 자주 향하는 곳 | 152
노모의 유품 | 155
무기력증 탈출기 | 158


4‥‥오래 머문 시선

어떤 망향가 | 162
길눈과 글눈 | 165
어떤 봉변 | 168
착각과 오해 | 172
운수 사나운 해 | 175
역지사지 | 179
흑염소가 유린한 보리밭 단상 | 182
늦가을에 생각하는 유종의 미 | 185
채송화 가꾸기 | 188
텃새 | 191
소음의 해석 | 194
아름다움을 보는 훈련 | 196
무상한 세월 | 200
궁금한 그 사람의 안부 | 203
팽나무를 바라보며 | 207


5‥‥인연의 순환

벼랑 끝에 서 있는 나무 | 212
나의 밸러스트수(水) | 216
인연의 순환 | 219
바람의 단상 | 223
호두알 한 쌍 | 226
시력(視力) | 229
가을 나무의 단상 | 232
간이역 풍경 | 235
비좁은 창공에 뜬 달 | 239
간묘단상 | 243
잃은 것과 얻은 것 | 246
효도 이야기 | 249
소통 | 252
형수 생각 | 256
뱀딸기를 보고 느낀 것 | 259


6‥‥돌에도 피가 돈다

돌담 우물 | 265
끝없는 돌 사랑 | 269
비록 계륵 같은 돌이지만 | 272
촌석 | 275
돌확 | 279
돌의 사상 | 282
조약돌 몇 개 | 288
놓일 자리 | 291
나의 30대의 관심과 60대의 관심 | 294
돌담 | 297

전남보성에서 태어났다. 소싯적부터 글쓰기에 매달렸으며 학창시절에는 학원문학상과 대학 공모전에 다수 입상하였다.
등단은 직장관계로 다소 늦은 1989년에 한국수필을 통해 했으며 한국문인협회 여수지부장, 한국수필가협회 공영이사를 역임 했다.
현재는 한국수필작가회 회장으로 있으며, 수필전문 계간지 '수필界' 주간으로 있다.
수상으로는 2003년 제21회 한국수필문학상을 탔다.
지금까지 펴낸 수필집으로는, 「지난 세월 한 허리」(1990) 「인형에 절 받고」(2003) 「동심으로 산다면」(2005) 「당신들의 사는 법」(2002)이 있고, 수필이론서로는 「막 쓰는 수필, 잘 쓰는 수필」(2007)이 있다.
작품 경향은 잊혀가는 풍정과 사물의 본질 탐구, 삶의 의미 찾기에 두고 있으며 남과 다른 수필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솔잎을 빗는 바람을 보다
이승훈․수필가/「수필界」발행인



1. 미질의 감성

작품을 대하는 일은 그 작가를 대하는 일이다.
작품을 읽다가 서로 정서가 다르면 온색을 띠기도 할 것이요, 정서가 맞으면 원고를 읽는 내내 청안을 띠기도 할 것이다. 저자에게 원고를 건네받은 지 거의 한 달이다. 날마다 불비가 내리는 듯한 가운데 저자의 수필은 서염 아래 드리운 팽나무 그늘 같았다. 휴가도 없는 한여름 내내 더위를 잊을 만큼 서늘한 저자의 감성(感性, sensibility)을 맛보았다는 이야기다.
철학 용어로‘감성일원론(感性一元ㅤㄱㅒㅇ)’이라는 말이 있다. 예술은 곧 감성에서 비롯됨으로 예술을 이해하며 즐기는 데도 감성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예술을 이해하며 즐기’는 영역은 창조와 감상(感想) 즉, 저자와 독자의 감성을 아우르는 말일 것이다. 이처럼 서두부터 저자의 감성을 시비하는 이유는, 그 본바탕이 무구하면서도 숭고해서 저자의 작품을 논하는 데, 이 미질(美質)의 감성을 놓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의 남다른 감성, 달리 표현하면‘솔잎을 빗는 바람’같은 감성이 저자의 작품세계를 구축하여 그 맛과 색깔을 내는 것이다. 따라서 감성은 임병식 수필의 엘랑 비탈(elan vital)같은 존재이다.
저자의 작품세계 특장(特長)은 한둘이 아니다. 따라서 이것저것 천착하기보다는 감성을 하나의 바탕천으로 깔아두고자 한다. 또한 작품집을 대하는 독자에게 이런 멋진 감성을 전이하여 감동을 배가하려는 욕심이기도 하려니와 수필 문학의 참다운 멋과 가치를 되새겨주고자 함이다.

저자의 문학적 감성은 탄탄하다.
나팔꽃의 감열성(感熱性)처럼 민감하게 흔들리는 주정적 감성이 아니라, 예순 중반의 난숙(爛熟)한 연륜에서 세상 이치의 미립이 트인 주지적 감성이라고나 할까. 사실「방패연」의 감성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어지럽게 흔들린다 해도 딱히 시비할 일이 아니다. 「방패연」의 모든 작품은 거의 10년 동안 누워만 있는 아내의 병시중을 해오며 창작한 작품들로, 허한 저자의 중정(中情)을 충분히 짐작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근래는 자신과 아내에게 큰 의지가 되던 노모마저 잃었다. 이처럼 모진 풍진 아래서도 저자의 그것은 의외로 등롱 안의 촛불처럼 절제된 미질을 지녔다. 그저 한탄조의 하급 감성이 아닌, 어디까지나 예술적 감성을 유지한 데는 그 모진 풍상을 질긋질긋 문학으로 안추르며 살아온 저자의 정신과 근성이 있어서다.
천지 사방이 떠나갈 듯 매미 울음이 들린다. 매미 울음 안에서「방패연」이 지닌 사상(事象)들이 영상 흐르듯 지나간다. 저자의 시선을 각별하게 붙들었던 이미지들 하며, 고향과 유년이며 억새 울음 같은 처연한 삶, 자의식 성찰 등이 그것이다. 정서의 동질성 때문일까. 이처럼「방패연」은 작품 전체가 어느 정도 연결된 듯한 여운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논배미를 지키는 농막 소년에서부터 어느덧 예순 중반의 성성한 세월을 관조하는 모습까지, 마치 영화를 보고 난 뒤 떠오르는 잔상들처럼 한 영역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2. 물상(物象)의 의미 찾기

「방패연」은‘자기만의 발견’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이 ‘자기 발견’ 의 품격이 높은 작품집이다. 저자는 대부분 작품에서‘자기만의 장치’를 해두었다는 표현을 종종 쓴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만의 장치가 바로 자기 발견 내지는 물상(物象)의 의미 찾기라고 보는데, 자류적 소재를 작품화하는 미적 탐구인 것이다.
수필에서 상상이 허용되는 범위나 허구와 문학성 문제를 아울러 짚어볼 수 있는‘단원이 그렸음 직한 풍경’, 묘사의 진수를 함께 보여주는‘나무 이미지’와‘… 땅거미질 무렵’, 저자의 섬밀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목에 대한 단상’등 주로 작품집 전반부를 차지한 작품이 대부 분 그 유형이다. 또한 이들은 어쩌면 저자만이 쓸 수 있는 수필이기도 하다. 예컨대‘낫과 지게’, ‘대엽풍란의 뿌리’, ‘꿩이 밝혀준 본성’처럼 이미 자신의 미적환경(美的環境)이 조성되어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전 직원이 나타나 전신주 위의 까치집을 철거시킨 것은 오늘 정오 무렵이었다. 볼일이 있어 길을 나섰더니 교회건물 모퉁이에 한전의 작업 차가 보였다. 금방 도착했는지 직원들은 차에서 내려 조립식 막대를 이어 붙여서 긴 장대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것으로 까치집을 다짜고짜로 겨냥했다. 그러자 장대 끄트머리에 달린 갈고리에 의해 까치집은 일순간에 맥없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지을 때는 힘들게 지었을 텐데 파괴되는 건 순간이었다. 작업을 마친 직원들은 적이라도 물리친 듯 의기양양했다. 그러면서 부서져 내린 나뭇가지들을 죄다 수거해 돌아갔다. 마무리 청소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시는 그것을 이용하여 또다시 집을 짓지 못하도록 아예 불씨를 없애는 조처였다. 불법건축물에 대한 자재 압수라고나 할까. 한데, 그 처사를 보니 조금은 지나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
-‘둥지를 잃어버린 까치’중에서

임병식 수필가의 작품은 대체로 분석하기가 편하다. 구성이 섬세해서 평론가가 아니라 해도 작품마다 유의미한 맛을 쉽게 끄집어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는 이미 언급한 특장 외에도 저자의 휴머니즘이 갈쌍하게 스며 있다. 저자의 휴머니즘은 미물이라 해서 단순 치장의 동정이 아니요, 또한 시혜적이거나 일방적인 것도 아니다. 마치 자신이 집을 잃어 안절부절못하는 듯한 감정이 이입된 휴머니즘으로써, 이런 휴머니즘은‘철거 위기에 내몰린 주민들’이나‘서울에서 힘겹게 쪽방이나 셋방살이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시사적 소재의 서정성 약화를 방어하기도 한다. 작품‘도깨비바늘을 떼어 내며’도 마찬가지다.
‘한국인 관광객과 사업가들이 중국에서 탈북 여성들을 만나 낳아놓은 사생아들’이나 ‘한국인 아버지를 둔 베트남의 사생아들’처럼 수필로써는 다소 미적거리(美的距離)가 있는 시사적 소재를 대비해도 저자는 늘 작품 전체를 노련하게 서정적으로 처리한다. 만일 위의‘둥지를 잃어버린 까치’가 인간에게 무참히 헐리는 까치집을 보면서 우리 삶과 공감시키지 못한 채 안타까운 마음(本質意志)이나 자연의 섭리 정도를 끌어내 작품화하는데 그쳤다면 감동은 미미하였을 것이다.
저자의 또 하나 장점은, 남들은 놓쳐버릴 수 있는 관점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수필가 이정림 선생은 ‘하나의 소재를 잡아 쓰면서 전력투구하는 모습이, 마치 호랑이가 토끼를 잡으면서도 전력투구하는 모습과도 같다.’라고 했다. 이정림 선생의 적시는 바로 위에서 예시한‘둥지를 잃어버린 까치’후반부를 보면 금세 공감할 수 있다. 이는 다름이 아니다. ‘한전 직원이 전신주의 까치집을 갈고리가 달린 조립식 장대로 와르르 무너뜨리’는 데서 표하는 애상한 정서뿐만 아니라, ‘까치집에서 부서져 내린 나뭇가지들을 죄다 수거해 그것을 이용해 또다시 집을 짓지 못하도록 아예 불씨를 없애는 조처’를 하는, 마치 잔혹하게 확인사살을 하는 듯한 데까지 시선을 끌고 가 끝내 비창(悲愴)한 정서로 작품의 성숙도를 높인다는 지적이다.

3.작품의 숙부(熟否)

「방패연」의 작품들은 한철 익은 과실이 아니다. 수필론에서 흔히 쓰는 표현 하나가 작품의 성숙도이다. 수필의 연륜과 성숙도가 비례하기는 일부일 수 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저자의 작품을 가까이 접한 나로서는, 적어도 저자의 수필 연륜과 성숙도는 주저 없이 비례 이상으로 본다. 「 방패연」의 작품들 또한 가슴을 서늘케 하는 서정이 골마다 흘러 수필로서 고아(高雅)한 감동이 깃들어 있다. 수필가로서도 완숙한 단계인 그다. 이 완숙을 떠나서, 만일 저자가 어떤 물상에서 어리비치는 심상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쫓아 수필 한 편을 써냈다고 해서 바로 그 숙부를 판단해서는 곤란한 문제가 있다.
저자에게는 스물두 살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뜬 누나가 있다.(하루만 활짝 피는 꽃) 어느 날 저자가 기르던 손바닥 선인장에서 꽃이 피었는데 딱 하루 핀 채 이울어버린 데서 저자는 젊은 날 요절한 누나를 떠 올린다. 여기서 혹자는 오래전 접근성이 단절된 누나를‘문득’떠올려 선인장으로의 환유(換喩)가 제대로 이루어지겠는가, 결국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반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스물두 살 누나의 애상은 그때 저자의 가슴에 착상(着想)하여, 세상을 떠난 이후 수십 년 세월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괴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숙성해온 것이다.
이미 앞에서 저자의 감성을 헤아리며 언급한 바 있지만 애상미(哀傷美)가 넘치는 작품들이 이번 작품집「방패연」에는 수두룩하다. 완상의 사무치는 소재들로써, 목에 줄이 매어 행동반경이 제한된 염소와 성주풀이의 가사를 자신의 처지와 빗댄‘어떤 공감’같은 작품들이 그것이 다. 이런 작품들 안에서는 방패연의 활에서 이는 풍지 울음이 내내 들리는 듯하다.

「…나는 이런 살얼음판 생활을 생각하면 어렸을 적 무서워하며 건너던‘검정 다리’생각이 난다. 다리는 학교 길에 걸쳐 있었다. 수력발전소에서 흘러나온 물이 간척지로 들어가는데, 그 물길 위로 다리가 가로놓여져 있었다. 다리는 언제 보아도 위태로웠다. 보통 다리는 낮게 놓여 있는 데 비해 이것은 덩그마니 솟아있어서 아래로는 세차게 흐르는 물이 늘 긴장하게 하였다. 다리는 폭도 겨우 한 사람이 건널 만큼 좁았다. 거기다 바닥에 깔린 널빤지는 중간 중간 떨어져 나가고 없어서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선 건너기가 어려웠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흐르는 물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그런 곳을 건너뛰자면 등줄기에 식은땀이 솟았다. 그런데다가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그런 다리를 하루에 두 번씩 건너기가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그곳을 건너다니면서 나는 스스로 노하우를 터득하게 되었다. 발끝을 내려다보면 오금이 저리지만 눈을 조금 멀리 두면 좀 낫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요령을 알고서부터는 무섬증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다리 앞에만 이르면 엄습하는 불안감은 떨칠 수가 없 었다.…」-‘ 내 생활의 살얼음판’중에서

가슴이 조각난다. 그러나 품위와 절제를 지닌 슬픔이다. 건강하지만 늘 위태로운 구순의 노모와 혼자서는‘상주좌와(常住坐臥)’를 못하는 아내 사이에서 저자는 곤혹스럽다. 다소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 역시 어릴 때 그런 다리를 건너며 오금을 저리던 기억이 생생해서 오죽하면 저자가 살얼음판 처지를 그리 비유할까 싶어 비감스럽다. 하지만 역시 임병식 수필가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그곳을 건너다니면서 나는 스스로 노하우를 터득하였다.’며 염려하는 독자를 안심시킨다. 노모와 아내 앞에서‘무섬증이 훨씬 줄어들었다.’니 다행이다 싶은데‘앞에만 이르면 엄습하는 불안감은 떨칠 수가 없다.’니 또 가슴이 아프다. 저자의 마음이 가장 애절하게 드러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그러나 미리 말했듯이 품위와 절제를 잃지 않아 수필의 격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소재가 유년이나 고향이라 해서 식상하다는 선입견을 품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글을 쓰는 사람에게 고향과 유년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구슬이며 평생 자산이다. 감성의 시원은 고향이요, 고향은 유년인 경우가 적잖다. 따라서 감성은 유년의 고향에서 가장 영롱하며, 이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 걸작이 자주 나오는 까닭이다. 고향의 원초적 서정이 우둔우둔하는‘문고개’나, 방앗간에서 돌아오며 나누는 모자간의 대화가 사람의 본능적 그리움 같은 것을 충동질하는‘물방앗간 다녀오던 날’, 풀무치 소리 안에서 유년의 여름이 고스란한‘청량한 소리’, 마지막 구절에서 저자와 함께 으흐흐 하고 몸서리를 친 ‘쓴나물’ 같은 빼어난 작품들을 저자가 설혹 습작하듯 완성하였다 해도, 이는 시간과 공간의 입체적 체험이 소재의 오랜 관조나 다름없어 가능한 것이다. 붓을 들기 전부터 잠재적인 작품행위를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재들이다.

「…어느 날 이웃마을에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인데, 머리 위에서 웬 실오라기가 떠서 너울대는 게 아닌가. 그래서 유심히 보았더니 그것은 커다란 방패연에 연결된 실오라기였다. 그렇게 큰 방패연이 대책 없이 갈팡질팡 떨어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연은 누군가가 날리다가 놓쳐 버린 게 분명했다. 나는 그 연을 보는 순간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걸 따라서 내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연은 안타깝게도 잡히지 않고 흐르는 개울에 처박히고 말았다. 아쉬웠다. 그러나 나는 비록 못쓰게 된 연일 망정 그것을 보고 얻은 소득이 있었다. 형태와 구조를 자세히 살필 수 있었던 것이다. 전에는 만들어 보고 싶어도 어떻게 만드는지를 몰라 시도를 못 했는데 실물을 보니 터득할 수가 있었다. 나는 이를 바탕으로 곧바로 방패연 만들기에 착수했다. 그 연의 크기대로 창호지를 반절지로 자른 다음 활에는 소리가 나도록 풍지를 붙이고, 꽁무니에는 커다란 수술을 매달았다. 그리고 연실도 여느 때보다 튼실한 것으로 준비했다. 그렇게 만든 연은 성공적이었다. 균형도 잘 잡히고 조종하는데 따라서 높이도 높게 떠올랐던 것이다. 점잖은 품이 예전에 촐싹대던 가오리연에 비견할 게 아니었다.
한데, 그 연이, 어느 날 돌발 사태를 맞고 말았다. 갑자기 불어오는 돌개바람에 그만 마을 앞 당산나무에 걸리고 만 것이다. 연은 얼마나 심하게 곤두박질 처박혔는지 아무리 끌어당겨도 꿈쩍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는 심정으로 실이나 수습하려고 힘껏 잡아당기니 이번에는 그 실마저도 중간에서 뚝 끊어져 버리는 게 아닌가. 얼마나 허망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걸린 연은 근 3,4년 동안을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나무에 걸린 채 매달려 있었다.…」
-‘ 방패연 ’중에서

저자의 유년 기억은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펄떡거린다. 기억 자체가 감동스러울 뿐만 아니라 까마득하게 잊혔던 사실을 재현함으로써 현대의 우리에게 왜 유년의 서정이 지켜야 할 가치인지 밝혀주기도 한다.
수구초심을 자극하는 이 작품‘방패연’의 연(鳶)은 우연하게도 사람의 인연(緣)을 연상케 한다. 날리는 연(鳶)은‘나’와 줄이 있어야 인연이 되듯이 사람의 인연에서 말하는 연줄 또한‘인연이 닿는 길(脈)’을 말한다. 날리는 연(鳶)에도 연실이 필요하듯 사람의 연(緣)에도 실이 필
요한지 한문에는 실사 변( )이 붙는다. 저자 역시 이 작품 말미에서 ‘처세문제와 경제적인 대처방법’을 들어 연(鳶)을 다루는 지혜를 따르지 못한 회한을 털어놓았다.
위의 예문을 보면 유년의 저자와 방패연의 인연이 살아가며 맺고 푸는 사람의 인연과 흡사하다. 첫 인연이 닿을지라도 그 인연을 처음부터 돈독하게 지켜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복된 인연은 나에게 거저 굴러와 맺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만큼만의 영역 안에서 연줄을 튼튼히 가꾸어 가야 서로 우러르는 인연으로 떠오른다. 저자가 겪었다는 처세문제처럼 그러나 때로는‘돌발 사태’를 맞기도 한다. 상처가 난 인연은 수년 동안‘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매달려 있기도 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4. 아름다움을 탐찰(探察)하는 훈련

「방패연」의 작품을 통해 보면, 소재를 수석처럼 골라서인지 참눈이 돋보일 만큼 피시스(physis)를 밝게 헤아리는 저자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물을 쏘아보는 눈씨나 눈심지가 깊어 파적거리가 될 만한 것도 그에게는 오색필(五色筆)로 나타난다. 지불생무록지초(地不生無名之草), 즉‘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쓸모와 제 역할이 있다.’는 철학이 저자에게는 깊어 보인다는 이야기다.
저자의 작품에는 빼놓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하나 더 있다. 작품마다 문장을 나열할 수는 없지만‘표현 근성’이 배였거나 문학적 혼이 씌어 있다 예컨대 문장 안에서 저자가 진저리를 치면 읽는 이도 진저리를 치듯 으스스 몸을 떨게 된다. 순간순간 작품 소재가 읽는 이에게 빙의처럼 달라붙었다가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문장 자체가 화려하거나 섬세한 것도 아니면서 섬뜩하게 표현이 살아 있는 이 마력은, 저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석 생활에서 비롯된 미적 탐찰(探察) 덕분이 아닌가 짐작한다.

광복절이던 주말, 디지털 카메라를 챙겨 시골스런 이미지를 찾아 문산 쪽으로 떠났다. 물론「방패연」의 이미지로 쓸 요량이었다. 이 이미지를 찾아 여기저기 장소를 옮겨 다니다 보니 통일동산 인근까지 가게 되었다. 가까운 공원에는 바닷가에나 있었을 법한 조약돌들이 깔려 있었다.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서염이 쏟아지는 하늘을 등진 채 탐석을 하듯 조약돌을 골랐다. 쪼그리고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대나무 무늬가 박힌 조약돌 몇 개를 고르면서, 문득 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뙤약볕 아래서도 자주 아름다움을 찾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상한 이미지를 찾아 카메라에 담는 일도 미적 훈련일 것이다. 녹원 이상범 시인은 ‘창작을 위해서 봇짐 하나 가볍게 짊어진 여행을 자주 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책상 앞에서만 글을 쓰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요, 여기의 여행은 미적 감정의 부흥이나 미적 감각의 반응을 키우는 여행을 말함은 물론이다.
애석 생활을 오래해 온 저자가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안목이 남다름은 이번 작품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돌을 마주한 채 사유수습(思惟修習)하는 수행이 잦으면, 고요한 자연 그대로인 돌의 숨결을 느끼고 들으며 또한 대화하고 통교하는 경지까지 이를 것이니 이를 소재로 한
수필이 어찌 달작(達作)이 아니겠는가. 저자의 수석을 소재로 한 수필은 서정미(抒情味)가 뛰어나며 사유수(思惟手)처럼 사유적인 걸작이 대부분이다. 이 애석 생활은 저자의 수필세계를 다지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 직하다.
저자가 심취한 애석 생활의 한 단면을 들여다본다.

「나는 다음 생에는 한 개의 돌멩이로 태어나고 싶다. 이는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생각해 낸 생뚱맞은 생각이 아니고 십수 년 동안 간직한 소망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누가 내게 돌이 그리도 좋으냐고 물으면 서슴없이‘그럼 세상에 돌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느냐?’라고 되묻는 것으로 나의 변함없는 돌 사랑을 표현한다. 그만큼 돌에 대한 애정이 깊고 사랑하고 아끼며, 돌 속에서 파묻혀 죽기를 소망한다. 그러니 누가 내게 석신(石神)이 씌었다고 한들 이의를 달 생각이 없다.
나의 돌멩이 사랑은 가히 맹목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서 석광답게도 나는 돌이 곁에 있어야 안심을 하게 되고, 안정을 취하며 곁에 두어야 잠도 편히 이루게 된다. 병도 예사로운 병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내 주변에는 돌이 없는 곳이 없다. 안방에는 큼직한 애무석(愛撫石)이 있으며, 서재에는 문진석(文鎭石)이 있고, 주머니 속에는 늘 촌석(寸石)이 들어 있어 언제나 만질 수가 있다.…」
-‘끝없는 돌 사랑’중에서

‘돌멩이로 태어나고 싶다. 돌 속에서 파묻혀 죽기를 소망한다. 석신이 씌었다. 병도 예사로운 병이 아니다. 맹목적인 석광(石狂)답게 주머니 속에는 늘 촌석이 들어 있다.’
이만하면 더 말해 무엇 하랴. 돌귀신이 빙의(憑依)한 것이다. 돌을 사랑하여 저자의 아호를 청석(靑石)으로 하였다는 말은 시시할 뿐이다.
우리는‘애석 생활’이라 하면, 자칫 값비싼 수석을 들여와 이를 아끼고 감상하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 생에는 돌멩이로 태어나고 싶을 만큼 돌을 사랑하는 저자는, 고상한 수석이 아닌‘돌멩이’와 ‘촌석’을 사랑하는 진정한 연하고질(煙霞痼疾)을 지녔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주목을 한다. 만일 저자가 광적으로 애석 생활을 즐겨도 사치스런 취향을 지향했다면 결코 문학적 정서와는 가까워질 수 없었을 것이다.
수석을 가까이한 옛 문인들은 한결같이 고매한 인품과 문향을 지녀, 그분들을 닮고 싶다는 저자이다. 돌을 사랑하는 한편에서 저자의 문학적 욕구가 비친다. 예컨대‘돌에도 피가 돈다.’고 표현한 조지훈 선생을 닮고 싶다면 그분의 문학적 역량도 좇고 싶다는 의미가 아닌가.
혼자 돌을 가까이하다가 돌의 미학을 스스로 터득하였다. 돌에서 저자는 듬직한 무게감과 천금 같은 침묵의 멋을 알았다. 또한 수석과의 통교를 통해 삶의 회한을 위로받고 세상의 불쾌(ㅤㄱㅔㄽ快)를 삭힌다. 그러는 사이 저자의 품성은 천유(天遊)를 닮아가며 저자의 문향은 독자들을 가까이 불러 모을 것이다.
애석 생활이 저자에게 미치는 영역이 워낙 넓어 돌에 관한 수필이 허다할 줄 아나, 기실‘돌수필’은 몇 편 아니 된다. 이는 자신의 애석 생활을 내면적으로 고요히 즐기려는 것이요, 돌 앞에서의 무한한 겸손이다.

5. 창공에 오래도록 떠 있어야 할 방패연
- 붓을 놓으며

벌써 저자와 맺은 인연의 유로(由ㅤㄱㅒㄼ)가 아득하다. 비록 사이버 공간에서 얼굴도 모른 체 만났지만 2002년 내가 등단을 하던 그전 해 즈음 첫 인연한 것으로 기억한다. 현재 저자가 회장으로 재임 중인 한국수필작가회의 그 홈페이지이지 싶다.
등단을 한 다음 해부터 지금껏 문학관련 잡지나 출판사 일을 꾸준히 해오는데 내 뒤에는 늘 저자가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생각해보면 저자는 문단 연륜이 짧은 내 역량을 보완해주었다. 한편 나는 실무적 차원에서 저자가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소소하게나마 챙겨왔다. M 문예지에서 일을 할 때와 S 출판사 그리고「테마수필」과「수필界」에서 등단 이후 지금껏 늘 저자와 함께 한 것이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M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듬직한 선학(先學)으로서 자리한 유일한 분이라고나 할까. 저자에게 직접 사사 받진 않았어도, 그러면서 나는 저자의 작품을 통해 영향을 받는 한편 그의 문학세계를 남들보다는 좀 더 잘 아는 편이다. 저자는 부족하지만 후학으로서의 나를 또한 인정해 주며 이제는 운명처럼 동도의 길을 걸어간다.

막상 붓을 놓으려니‘여기저기 아쉬운 점이 봉숭아 꽃씨 터지듯’한다. 서생문학(書生文學)은 벗어났을지언정, 나는 필력이 약해 무엇이든 일짓지 못한다. 더구나 문학평론을 전공한 것도 아니요, 연륜도 일천하여 이 해설로 일집을 벌이지 않을까 염려스럽지만 정성을 다하였다는 생각이다. 임병식 수필가의 이번「방패연」은 리리시즘(lyricism)의 진수를 보여주는 수필집이다. 그럼에도 혼자만 탐미(耽味)한 채 그 맛의 여운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였다. 예컨대 저자의 필력에 무작정 빨려들던‘인연의 순환’같은 작품들을 들춰내지 못해 무엇보다 아쉽다.
현재 저자가 겪는 풍진을 생각하면 아픈 가슴이 앞선다.
이번「방패연」이 창공에 오래도록 떠 있어서 저자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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