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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2-18 15:48
  • 고구려 9백 년의 자취 소리
  • 조성원
  • 역사에세이
  • 2015년 1월 26일
  • 변형 신국판
  • 979-11-5634-063-8
  • 15,000원

본문

고구려, 그 장엄한 역사를 감상한다. 조성원 작가의 역사 에세이!!!!


고구려, 중국과 싸우며 한반도 북방에서 국경을 지킨 나라
정복의 역사를 살펴본다.

[신라 천 년의 자취 소리](2014 세종도서 선정)의 작가 조성원의 신간 [고구려 900년의 자취 소리].
얽히고설킨 역사는 자칫 복잡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조금씩 풀어가다 보면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다. 신라의 이야기를 끝낸 작가는 자연스럽게 고구려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기록서와 같은 책이 아니라 편하게 읽히는 책. 역사 이야기에서 고증의 배경까지 한 눈에 읽을 수 있게 정리해 고구려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대한민국 역사의 자긍심,
광활한 중국을 지배하였던 고구려를 읽다

세계 정복을 꿈 꾼 고구려, 지금도 멈출 수 없는 고구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고분 벽화는 지워져도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언제나 당당하였던 고구려는 한때 중국 땅 절반을 차지하였다. 땅은 잃었어도 그 땅위에 펼쳐졌던 드높은 민족의 기상은 잃지 말아야 한다. 광활한 중국을 지배하였던 힘과 찬란한 문화를 지녔던 고구려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예맥인의 기상을 되찾자. 뿌듯한 자긍심과 애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고구려가 아니더라도 부침을 이어 온 우리 역사적 국가들 가운데, 하나 정도는 특별한 애정과 섬김으로 가슴속에 담아두자.
천부적인 에세이스트, 조성원 작가의 섬세하고 유려한 필치가 이 책을 읽는 이 의 가슴을 벅차게 할 것이다. 고구려의 힘찬 기상이 막힘없이 써내려가는 붓의 힘과 만났다.


‘광개토대왕비’의 발견에 비견되는 ‘중원고구려비’ 발견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시조 동명성왕조〉를 기준으로 삼으면 신라 문무왕 8년인 668년에 멸망한 고구려는 705년간 존속한 것이 된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또 다른 기록을 보면 다르다. 668년 당나라와 고구려가 싸우고 있을 때 당나라 시어사 가언충이 “고구려의 비기(秘記)에 이르기를, ‘900년이 안되어 80세 된 대장이 이(나라)를 멸한다.’고 하였습니다. 고 씨(고구려)는 한나라 때부터 나라 가 있었는데 지금 900년이 되었고 (당나라 고종)이세적(李世勣)의 나이가 80세입니다.” 라고 한 말대로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었다면 고구려 건국 시기는 서기전 3~2세기로 앞당겨져야 한다. 때문에 저자는 [고구려 900년의 자취소리]라 제목을 정했다.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고구려는 농경이 주요 산업이었으며 목축이 발달한 국가였다. 또한 교통의 중심지로서 동해안과 요동 방면으로 진출이 가능하며, 북쪽으로는 송화강 유역으로 연결되고, 남으로는 한반도의 서북부 일대로 진출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1세기 태조왕대에 이르러 분할 되어있던 고구려 연맹체 전체를 통솔하는 강력한 국가로 발전하였다. 주몽의 건국신화로 익숙한 고구려는 아직도 낯선 부분이 많다.
본문은 최인호 소설 『왕도의 비밀』을 첫 장에 언급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처럼 # 모양이 새겨진 토기를 단서로 자연스럽게 고구려의 역사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저자와 같이 고구려에 대해 조사를 하듯 차근차근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고구려를 안과 밖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은 강력했던 나라 고구려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짚어 마무리하고 있다. 독자는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덮게 된다.
고구려를 알면 시야가 트이고 세상이 좁게 보인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옛 시대 9백 년을 호령한 고구려 역사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책머리 대한민국 역사의 기상, 고구려 4

1. 최인호의 『왕도의 비밀』 14
2. 이성산성에서 만난 井자 문양 18
3. 이성산성은 한성 백제 왕궁 터일까 25
4. 희생 제물, 백마 33
5. 井자 문양 토기가 발견된 곳은 어디 1 40
6. 바보온달 이야기 47
7. 井자 문양 토기가 발견된 곳은 어디 2 54
8. 국원성이라는 곳 60
9. 중원 땅 탑평리 7층 석탑 아래서 65
10. 小광개토태왕비, 중원고구려비 72
11. 신라 고분 호우총에서 나온 井 문양 토기 78
12. 광개토대왕 비문을 찾아서 91
13. 井자 문양이 주는 여운 97
14. 임나일본부설에 대하여 103
15. 광개토대왕비 비문 왜곡 1 110
16. 광개토대왕비 비문 왜곡 2 114
17. 광개토대왕비 비문 왜곡 3 121
18. 고구려 900년 역사에 대하여 129
19. 낙랑국은 도시국가로 우리 고유의 문화를 꽃 피웠다 136
20. 요동치는 고구려 땅 요동 벌 1 143
21. 고구려가 차지했던 땅, 서안평은 그 어디 149
22. 고구려 북경과 박지원의 북경 159
23. 시대 영웅은 혼란기에 만들어진다 168
24. 요동치는 고구려 땅 요동 벌 2 178
25. 요동치는 고구려 땅 요동 벌 3 186
26. 요동치는 고구려 땅 요동 벌 4 196
27. 초원의 길에는 고구려인이 있다 201
28. 덕흥리 고분 벽화가 말하는 광개토대왕 208
29. 고구려 군사는 세계 최강이었다 1 215
30. 고구려 군사는 세계 최강이었다 2 221
31. 고구려는 싸워야 산다 226
32. 덕흥리 고분의 견우와 직녀 234
33. 수레 이야기 1 240
34. 수레 이야기 2 247
35. 부채와 콧수염 253
36. 남북조 시대의 고구려 261
37. 고구려인의 사랑 267
38. 수나라 이야기 273
39. 소주에서 태평스런 운하를 보며 279
40. 고수 1차 전쟁의 미스터리 286
41. 고수 2차 전쟁 295
42. 금의 나라 고구려 그리고 영양왕 303
43. 팍스 고구려 그들의 무덤 313
44. 고구려 고분 속의 풍경 1 320
45. 고구려 고분 속의 풍경 2 326
46. 고구려는 다문화 국가이다 337
47. 산성의 도시 대전 346
48. 호로고루의 한탄 소리 353
49. 고구려 성은 철옹성이다 361
50. 안시성 성주 양만춘 368
51. 고구려 멸망이 주는 교훈 373
52.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 381
53.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390
54. 고구려와 우리 미래 전략 398

조성원

문단
•1957년 경기 안양 출생
•대학원 졸(기계공학 열유체 전공)
•문학저널 시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수필집
『작게 사는 희망이지만』(엠아이지)
『2천년 로마 이야기』(에세이)
『송사리 떼의 다른 느낌』(선우미디어)
『2천년 스페인 이야기』(선우미디어)
『빈가슴에 머무는 바람』(교음사)
『오후 다섯 시 반』(해드림)
『나 어릴적』(선우미디어)
『아내는 밥이다』(해드림)
『신라 천년의 자취 소리』(해드림)
『고구려 9백년의 자취 소리』(해드림)

수상
•제2회 천상병 문학제 시사문단 작가상 수상
•제2회 문학저널 창작문학상 수상
•제1회 소운문학상 수상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 아르코창작지원금
•『신라 천년의 자취 소리』 2014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한국수필가협회 제5회 인산기행수필문학상

현)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재직 중
이메일: sw206541@hanmail.net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인은 누굴까. 서정미라는 느낌에서 오는 부드럽고 감칠맛을 연상하여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용맹스런 고구려 2대왕인 유리왕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 시인이다. 이 황조가는 그가 떠나간 여인 치희를 그리워하며 지은 노래다. 유리왕은 원 부인인 송 씨가 죽자 두 여자를 후궁으로 들여 장가를 갔는데 그중 한 여인이 화희고 다른 여인이 치희다. 화희는 골천인의 딸이었으며 치희는 한나라 사람의 딸이었다. 뭐라 해도 왕을 사랑했던 두 여인은 유리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 반목하며 매우 사이가 좋지 못했다고 한다. 보다 못한 유리왕은 동, 서에 궁을 2개 지어 하나는 화희에게 다른 하나는 치희에게 주어 서로 싸우지 못하게 하지만 조금 사는 곳이 멀어졌다고 해서 싸우지 않을 두 여인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유리왕이 사냥을 나가 7일간 돌아오지 않는 일이 있었다. 마침 이때가 기회다 생각한 화희는 평소 유리왕이 총애하던 치희를 찾아가 매우 호되게 꾸짖는다. 너는 한나라 사람으로 그 신분이 미천 한데 어찌하여 이리도 무례하게 구는가? 그 말을 들은 치희는 수치심과 한스러움에 당장에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다. 사냥에서 돌아온 유리왕이 애첩 치희를 찾지만 치희의 모습은 모이지 않고 그 사정을 묻고는 단숨에 말을 달려 치희를 데리러 치희의 친가에 당도하지만 이 미 모욕감과 수치심에 화가 난 치희는 유리왕의 만류에도 결국 친가에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돌아오는 길에 유리왕은 한 쌍의 꾀꼬리를 보고 황조가를 지어 불렀다. 유리왕이 치희가 오지 않음을 슬퍼하며 지은 노래가 바로 황조가다.
고대인의 이별의 서정이 소박하게 묻어나는 황조가를 음미하다 보면 애달은 순수함도 순수함이지만 수준 높은 사회였다는 생각도 따라서 하게 된다. 변 사또같이 수청을 들라 하여 얻을 여인의 마음이 아니며 또 억지 춘향으로 여인의 마음을 산다하여 여인을 얻은 것이 아니란 것을 속 깊이 그들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왕조차도 사랑 문제 에는 차도가 없으며 가슴앓이를 어쩔 수 없이 하는 세속이라 한다면 삶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는 건강한 사회라 하여도 가히 틀리지 않는다.
천하를 호령하는 군주도 사랑 앞에서는 바람 곁에 둔 호롱불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흡족하게 한다. 감내할 내면을 가지며 그로 성찰과 용서도 같이 존재함이다. 사랑에는 왕도가 없으며 여인의 의향을 중시 하였다는 느낌에 나도 따라 그윽함으로 외로울 지경이다. 힘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힘이 능사가 아닌 고독을 말하고 있다. 심연의 고독을 말하는 건강한 사회에서는 남녀가 자율적으로 사랑하고 또한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하였을 것이다.
고구려 사람들은 무사가 대접받는 사회였다. 어느 때 전쟁터로 향할지 모르는 전사들은 그만큼 여인의 향기가 더욱 간절하였을 것이다. 승리가 곧 출세를 의미하는 나라, 평민 온달도 장군으로 등극하여 공주와 결혼을 한 나라다.
-37. 고구려인의 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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